양심에 대하여
한동안 라디오에서 앵무새 죽이기 광고가 나왔던 시절이 있었다. 하도 오래전이라서 기억의 저편에 있는 내용이였는데, 아들이 학교에서 이번 학기 수업시간 주제가 해당 책이여서 밀리의 서재를 뒤져보았떠니 해당 책이 있었다.
소설이 있을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소설책이 아니라 그래픽 노블이였다. 아무래도 그래픽 노블이다보니 소설보다는 훨씬 빠르게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정말 순식간에 책을 읽었다. 간단한 줄거리는, 1930년대 미국 알라바마 주의 작은 마을 '메이콤'을 배경으로, 주인공의 아버지인 변호사 애티커스 핀치가 억울하게 성폭행범으로 몰린 흑인 톰 로빈슨을 변호하는 이야기다(땡큐 제미나이!).
앵무새 죽이기는 마치 양심을 죽이는 것과 동일한 뜻이다. 실제로 사람들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앵무새를 죽이는 짓을 하지 말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무죄인 흑인 톰을 무고로 몰아서 법정에 세우고 사형을 시킬려고 하는 말도 안되는 그 당시 사람들에 대한 내용이다. 그 당시 풍조는, 아무래도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극에 달하던 시점이여서 그런지, 흑인에 대한 백인의 시선은 따갑기만 하다.
편견이란 세상을 좀 먹는다. 편견은 커뮤니티안에 발생하면, 좀처럼 식지 않는다. 한 번 사람들 머릿속에 자리 잡으면, 쉽게 없어지지 않는게 편견이다. 예전에 미국 인종 차별이 심하다는 이야기는 들었가나 영화를 통해서 보고 저럴수가 했는데, 영화 히든 피겨스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화장실을 유색인종과 백인으로 나눠서 생활하고, (백인) 그 누구도 그에 대한 말을 하지 않는 세상. 마치 나와는 상관없다는 식의, 원래 그런거지 뭐 하는 그런 모습이 매우 충격적이였다.
하지만, 우리도(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회의 편견에 사로 잡혀서 언제든지 누군가를 무시하고 힐난하고 판단하고 손가락질 한다. 나와 다른 나라 사람들에 경계를 하고, 무의식적으로 특정 국가를 헐뜯는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퍼뜨렸는지는 모르지만, 우리 무의식속에 각인된 편견은 그 껍질이 벗겨지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흐른다.
또한, 그 편견으로 인해서, 내가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마치 피해의식처럼. 미국에서 살면서, 행여나 차가운 시선을 느끼게 되면 내가 동얀인이라서 그런가 생각이 들다가도, 그 차가운 시선이 인종과 상관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냥 사람마다 다르구나를 알게 된다. 인종차별이 없다고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또 막 인종차별이 있지도 않다. 불친절한 사람은 인종을 가리지 않고 그냥 불친절하게 대하는게 대부분인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두려움', '경멸' 등등 부정적인 감정들의 복합체 때문인가보다. 나와 다른 타인에 대한 두려움이, 개인대 개인이 아니라, 집단의 무의식속에 자리잡으면서 상대방에 대한 혐오나 공격성으로 나타나는게 아닐까? 그리고 집단적인 무의식도, 사실 개인대 개인으로 만나보면 많이 허무는 경우가 많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상식적이고 친절하다. 그냥 우리의 편견으로 "쟤네들은 원래 그렇잖아"라면서 재단하기 때문에 사람들간에 거리를 두는게 아닌가 싶다.
그냥 이런 저런 생각이 드는 날이였다. 세상이 항상 평화롭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