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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오스 이비 Oct 24. 2021

친구 같은 아빠, 친구 같은 엄마

“너는 아이에게 어떤 아빠가 되길 원하니?”

“음….”

“?”

“친구 같은 아빠!”

내 질문에 한참 뜸을 들인 친구의 대답은 ‘친구 같은 아빠’였다.


내 친구처럼, 친구 같은 아빠, 친구 같은 엄마를 꿈꾸는 부모들이 상당수 있다. 아이와 부모가 친구처럼 지낸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참 기분 좋고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실제로 부모와 자식이 친구처럼 지낸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는 않다. 왜냐하면 관계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쌍방이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소위 친구라고 하는 관계도 내가 친구에 대해 느끼는 친밀감의 수준과 그 친구가 나에게 느끼는 친밀감의 수준은 다를 뿐만 아니라 나는 친구라고 생각하는데 그 친구는 나를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어려서부터 나이에 따른 서열 문화가 있어 나이 차를 극복하는 것도 하나의 장애 요소가 된다. 부모는 자식을 양육하고 자식은 부모의 보호를 받는 상하관계에서 친구라는 동등한 관계로 전환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에 아직은 우리나라에서 부모와 자식은 친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취지는 충분히 공감한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마치 친한 친구 같은 관계가 된다면 만만치 않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분명 서로에게 큰 힘이 될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럼 아이와 친구처럼 지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와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다는 친구에게 나는 물어봤다.

“너는 아이와 친구처럼 지내기 위해서 어떻게 하니?”

“응? 가끔 놀아줘~.”

“그래? 주로 뭐하면서 놀아 주는데?”

“음, 그냥 애가 놀아 달라고 하는 거. ㅎㅎ.”


내 친구는 아이와 친구처럼 지내기 위해서 그냥 놀아주면 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아니면 갑작스러운 내 질문에 임기응변으로 대답한 것일 수도 있다. 보통 친구랑 만나서 주로 하는 것이 노는 것이니. 


하지만 친구랑은 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나는 친구와 단순히 놀기만 하지 않는다. 고민도 나누고 위로도 주고받는다. 그런 것이 노는 것이라면 노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바탕에는 신뢰가 있고 믿음이 있다. 생각만 해도 의지가 되고 힘이 생기는 사람. 그런 사람이 아마 진정한 친구가 아닐까. 


아마 내 친구도 아이와 그런 관계를 원했던 것 같다. 어쟀거나 아이와 친구처럼 지내기 위해서는 부모와 자식 간의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어야 한다. 친구처럼. 


대부분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기 전까지는 아이는 부모를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한다. 따라서 부모가 자식을 믿고 의지할 수만 있다면 부모와 자식 간은 친구 같은 관계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의지하고 기댄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더욱이 부모의 능력이 좋은 소위 성공한 부모일수록 또는 자식이 어릴수록 부모가 자식에게 의지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부모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생각이 깊고 성숙하다. 또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 따라서 아이와 친구처럼 지내고 싶은 부모라면 우선 내 아이를 하나의 독립 객체로 인정하고 친구처럼 대하면 된다. 어린아이처럼 이 아닌 진짜 친한 친구처럼 말이다. 


친한 친구와 어떻게 친해졌고 또 어떻게 지내는지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하지만 친구들과 어떻게 친해졌고 어떻게 지내는지는 각자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다. 좋은 친구로 오랫동안 유지하는 방법도 말이다. 따라서 각자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와 관계를 형성해 나간다면 아이와 친구처럼 지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아이는 어려서 아무것도 못 할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무조건 도와줘야 할 것 같고 대신해줘야 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이의 상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이는 경험이 부족하고 연습을 많이 못해서 지금 단지 잘 못하는 것뿐이다. 조금만 연습하면 금방 잘할 수 있다. 따라서 조금은 서투르고 못 믿어 보여도 무조건 도와주고 대신해주지 않았으면 한다. 그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친구 사이에 무조건 해주고 대신해 주는 일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관계는 오래 지속되기 힘들다. 


개인적으로 내 아이들이 부모에게 가장 의지했으면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고민 상담’이다. 여기서 내가 부모라고 한 이유는 굳이 내가 아니어도 괜찮다는 의미이다. 물론 나였으면 좋겠지만 굳이 내가 아니어도 아내에게 아이가 스스로 고민을 털어놓을 수만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만족한다. 그리고 그런 사이를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면 아이가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부모에게 의견을 물어볼 수 있을까? 아니면 부모가 물어본 질문에  최소한 솔직히 대답을 해 줄 수 있을까? 아마도 고민을 털어놓아도 된다는 신뢰가 있다면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부모가 먼저 부모의 고민을 아이에게 털어놓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번 생각해 보자. 누구든지 자신의 고민을 선뜻 얘기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친한 친구 사이라도,  평생 희로애락을 함께 나눈 부부 사이라도 말이다.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기 위해서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평소 가지고 있던 고민을 얘기하는 경우가 있다. 바로 누군가가 나에게 고민을 먼저 털어놓을 때는 나도 덩달아 내 고민을 털어놓을 때가 있다. 


왜 그럴까? 그것은 고민을 털어놓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에, 고민을 아무에게나 털어놓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나를 신뢰한다는 확신에 나도 고민을 얘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의 행동을 보고 앞으로도 계속 고민을 얘기할지를 판단하게 된다. (이것이 신뢰를 형성하는 과정 중 하나이다.)


만약 아이가 어렵게 부모에게 고민을 얘기했는데 부모는 아이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고 부모 얘기만 한다면 더 이상 아이가 자신의 고민을 부모에게 털어놓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부모가 먼저 물어본다고 하더라도. 따라서 아이가 고민을 얘기할 때는 충분히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마치 친구처럼 말이다. 


우리가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것은 꼭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같이 공감하고 위로받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경험상 해결책이 잘 보이지 않은 문제를 타인에게 털어놓고 설명하는 과정에서 정리되거나 나 스스로 해결책을 찾는 경우도 많았다. 더욱이 고민의 직접적인 대상에게 털어놓을 때 쉽게 해결되는 경우도 많았다. 


따라서 부모 개인적인 고민이건 아니면 아이에 대한 고민이건 부모부터 아이에게 고민을 얘기해라. 꼭 고민이 아니더라도 힘들면 힘들다는 부모의 희로애락 감정이나 일상생활 등을 허심탄회하게 얘기해라. 그래야 아이도 부모에게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수 있다. 부모와 자식은 친구보다 더 가까운 가족 아닌가!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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