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까오스 이비 Oct 24. 2021

엄마! 나는 어떻게 태어난 거야?

아이의 질문

“엄마! 나는 어떻게 태어난 거야?”

어느 날 까돌이가 엄마에게 물었다. 비슷한 질문을 까순이도 했었는데 까돌이도 질문을 한 것이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 궁금한 모양이다. 비단 우리 아이들만의 궁금한 사항일까. 아마 여러분들도 비슷한 질문을 받았을 것이다. 어디 이뿐인가. 대분분의 아이들은 자라면서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시도 때도 없이 물어본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했다. 나는 아이들이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아무에게나 물어보는 줄 알았다. 궁금한 사항이 발생했을 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말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이는 어떻게 태어나는지’에 대한 질문은 아내에게만 물어봤다. 왜 아내에게만 물어봤을까? 분명 나도 있었고 외할머니도 있었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나나 외할머니에게 질문을 아예 안 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유독 이 질문만은 엄마에게만 했다. 


아마도 까순이와 까돌이는 경험 상 엄마가 이 질문에 대답을 가장 잘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럼 비단 까순이와 까돌이 만 그럴까. 아니 대부분의 아이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물어볼 때는 아이가 납득할 만한 대답을 들을 수 있을 때에만 질문을 한다. 마치 어른들처럼 말이다.


따라서 아이에게 질문받은 사람은 아이에게 선택된 사람으로서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아이의 질문에 성실히 답변을 해 줄 의무가 있다. 하지만 가끔 이러한 의무를 망각한 체 아이에게 무턱대고 “너는 몰라도 돼!”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가장 좋지 않은 답변이다. 더욱이 그 사람이 부모라면 반드시 고쳐야 한다.


만약 아이의 질문에 아무 이유도 없이 “너는 몰라도 돼!”라고 한다면 아이 입장에서는 ‘다른 사람들은 알아도 되는데 나는 몰라야 한다’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아이의 자존감에 커다란 상처를 줄 수도 있다.


만약 아이가 질문을 할 때마다 부모가 “너는 몰라도 돼”라고 답변을 한다면 아이는 부모와 관계 유지하기 위해 또는 부모는 지적으로 잘 모르는 사람으로 인지해 더 이상 부모에게 질문을 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주변으로부터 궁금증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아이의 지적 호기심은 점차 사라질 수도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부모는 어떤 경우라도 아이의 질문에 성실히 답변을 해 주어야 한다. 아무리 바쁘고 귀찮더라도. 또 아무리 곤란한 질문이어도 말이다. 아이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아이의 질문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질문을 통해서든 관찰을 통해서든 아이가 어떤 상황에서 이 질문을 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대답해 주어야 한다. 


하지만 부모의 지식수준이 낮거나 아이 질문에 대답한 경험이 적어서 부모가 제대로 대답을 못 하는 경우가 있다. 만약 어떤 이유에서 간에 부모가 제대로 대답하기 어렵거나 곤란할 때는 “너는 몰라도 돼!”라고 말하지 말고 아는 만큼만 대답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질문의 답을 모르면 모른다고 대답해 주고 답변을 못하겠으면 답변을 못하는 이유를 솔직히 말하는 것이 아이와의 관계 형성에 있어서 더 좋다. 


왜냐하면 부모가 아니라 세상의 어느 누구도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 아는 사람은 없을뿐더러 아이의 수준에 맞게 모든 것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 입장에서는 궁금증을 당장 해소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그보다는 부모가 성실히 답해주는 것만으로도 부모를 의지할 수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상대라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이의 질문에 대답을 못한다고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고 솔직하게 아이에게 “아빠도 그건 잘 모르겠는데. 나중에 아빠가 알게 되면 알려 줄게.”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아이와의 관계 형성에 더 도움이 된다. 아니면 "아빠도 잘 모르니 함께 찾아볼까?"라고 하는 것도 좋은 답변이다.


간혹 아이에게 아무리 설명을 해주어도 아이가 못 알아듣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지금은 이해를 잘 못해도 괜찮아. 네가 좀 더 경험을 하거나 OO분야를 안다면 충분히 알게 될 것이니 너무 조급해하거나 답답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등의 말로 지금 아이가 못 알아듣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할 필요가 있다. 


가끔 아이와 대화를 할 때 아이가 “왜?”라고 짧게 다시 묻는 경우가 있다. 보통 아이가 잘 이해가 안 될 때나 정말로 궁금할 때 또는 답변에 대해 인정하고 싶지 않을 때, 그도 아닌 단순히 장난기가 발동할 때 “왜?”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정확히 뭐가 궁금하고 이해가 안 되는지 다시 물어볼래?”라고 질문을 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어떻게 태어나는지’에 대한 질문에 예전 어른들은 "다리 밑에서 주어 왔다"라고 거짓말로 대답하는 경우가 많았다. 솔직히 나도 그렇게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내는 까순이 까돌이의 질문에 다르게 대답을 해 주었다. 그래서 그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엄마랑 아빠가 서로 사랑을 해서 너를 가지게 되었어. 엄마랑 아빠는 그 사실이 너무 기뻤단다.
그리고 엄마는 너와 40주 정도 같이 숨 쉬고 생각하며 지내는 시간이 너무 좋았어. 가끔 네가 엄마의 좁은 배속에서 발로 찰 때는 엄마가 무척 놀라기도 했고, 또 때로는 옆구리가 아플 때도 있었어. 하지만 그러한 너의 행동들이 네가 건강하게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하니 엄마는 아픈 것도 참을 수 있었어. 그렇게 엄마 배 속에서 무럭무럭 잘 자라다 더 이상 엄마 배속에서 지내기에 네가 너무 커버려서 병원에 가서 너를 낳게 되었어. 물론 너를 낳을 때는 무척 아프고 힘들었지만 옆에서 아빠가 열심히 응원해 줘서 무사히 너를 낳을 수 있었어.



이전 05화 또래보다 못해도 괜찮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