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까오스 이비 Oct 03. 2021

아이는 어른의 거울

흔히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고 한다. 하지만 내가 아이를 키우기 전까지는 그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 무서움을.


처음에는 아내와 나를 따라 하는 까순이의 모습이 마냥 예쁘고 귀여웠다. 이제 막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까순이가 수건이나 휴지를 들고 방을 훔치는 모습이나 빨래를 개고 있는 나와 아내 옆에서 같이 하겠다고 하는 모습이 어설프고 서툴렀지만 사랑스러웠다. 또 한편으로는 엊그제 갓 태어난 것 같은데 벌써 커서 나를 도와주려고 하는 것 같아 그동안 밤잠 설치며 키운 것에 대한 보상 같은 느낌도 받았다. 


그런데 과연 까순이가 한 행동이 나나 아내를 도와주려고 한 행동이었을까. 아니다. 까순이는 나나 아내를 보고 그냥 따라한 것이다. 반복적으로 보여줬기에 응당 그 상황에서는 그런 행동을 해야 하는 줄 알고 한 것뿐이다. 말하는 것처럼 일어나서 걷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이를 이용하기로 했다. 바로 아이들에게 꼭 심어주고 싶은 습관을 내가 직접 보여주기로 한 것이다.


어려서 책을 읽지 않은 나는 성인이 되고 나서 의도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 읽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 책 한 권은 늘 가방에 넣고 다녔다.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전이라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나 지인을 기다릴 때 읽을 시간이 제법 많았다. 그렇게 한 권 두 권 읽다 보니 왜 성공한 사람들이 책을 읽는지 알게 되었다. 학창 시절 책을 읽지 않았던 것에 대한 반성도 하면서. 나는 다른 무엇보다 책 읽는 것을 아이들의 습관으로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래서 틈 날 때마다 까순이 앞에서 책을 읽었다. 태아 때부터. 의도적으로.


그러던 어느 날 까순이는 책 읽고 있는 나에게 와서 내가 읽던 책을 뺏으려 했다. 심심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궁금해서 그랬는지 알 수 없었지만 까순이의 첫 번째 반응은 내가 읽고 있던 책을 뺏으려 했다. 이에 나는 바로 책을 덮고 까순이를 안아주지도, 놀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까순이에게 기다리라고 했다. “까순아, 잠깐만 아빠 책 읽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조금만 더 읽고 놀아 줄게 알았지?” 그리고 조금 있다 책을 덮고 까순이와 놀아줬다. 


그 뒤로도 까순이는 책 읽는 나에게 관심을 보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기다리라고만 하지는 않았다. 어떤 날은 까순이가 보는 책을 주면서 “너도 아빠 책 읽는 동안 책 보고 있어.”라고 하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내가 읽고 있던 책을 그냥 소리 내어 읽어 주기도 했다.


물론 아내가 틈 날 때마다 그리고 잠자기 전에 까순이에게 책을 읽어 줬다. 나도 많지는 않지만 까순이가 보는 그림책을 읽어 줬다. 그래도 아이가 책 읽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는 부모도 같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했고 아이에게 많이 보여줄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까순이는. 


피아노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피아노를 칠 줄 모른다. 단지 오른손으로 칠 수 있을 뿐이다. 그것도 계명을 외운 것만. 음악을 좋아했던 나는 어느 날 음악을 직접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집에 피아노도 없을뿐더러 다룰 줄 아는 악기라곤 리코더 밖에 없어서 음악을 만들 수 없었다. 이런 것이 늘 아쉬웠던 나는 아이들 만큼은 꼭 피아노를 배우게 하고 싶었다. 


우선 나는 중고 피아노를 샀다. 그리고 아이들 앞에서 쳤다. 그냥 오른손으로. 다행히 초등학교 때 리코더를 즐겨 불러 계명을 알고 있는 곡들이 여러 개 있었다. 애국가, 개구리 왕눈이, 나비야 등. 이런 곡들을 내가 휴일에 치고 있으면 아이들이 한 명 두 명 피아노 옆으로 와서 자기들도 치겠다고 피아노 건반에 주먹을 올렸다. 그리고 쿵.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어느 날 연년생인 까순이와 까돌이는 친구들이 피아노를 배운다고 자기들도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해서 학원에 보냈다. 그리고 피아노가 재미있었는지 집에서도 틈 날 때마다 쳤다. 까숙이도 그런 누나들 밑에서 자라 피아노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 까돌이는 초등학교 5학년인데도 계속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 더욱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피아노로 풀고 있다. 


이렇게 내가 의도했던 책 읽기와 피아노 치는 것은 아이들이 즐겨하는 취미가 되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내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보고 따라 한 것은 아니었다. 나도 모르던, 알고 있었지만 아이들이 몰랐으면 안 했으면 하는 모습들도 어느 순간 아이들의 말과 행동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부모의 역할에서 밝힌 것처럼 나는 아이에게 기회를 많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때로는 무모한 것들도 아이들이 하겠다고 하면 하게 했다. 하지만 아내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기회를 많이 줘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했지만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아이들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는 상황은 만들지 않으려 했다. 


어느 순간 까순이가 방 청소나 빨래 개는 것 등 나랑 아내를 보고 따라 했던 집안일들을 아내가 하고 있었다. 까순이는 하지도 않고. 나는 아내에게 까순이가 할 수 있는 일은 까순이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더욱이 나와 아이들이 한 약속은 아내가 도와 주지 말라고 했다. 그런 과정에서 나와 아내는 자주 다퉜고 급기야 나는 소리까지 지르게 되었다. 아내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아내가 아이들을 위해서 하는 행동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나는 그만큼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러면서 점점 아이들과의 관계는 예전 같지 않게 되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아이들이 상처를 받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마음의 상처를. 어쩌면 나는 작은 것을 얻으려고 큰 것을 잃고 있는지 모른다. 아무리 아이들에게 기회를 많이 주는 것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도 내가 더 참고 기다렸어야 했다. 책에 관심을 보였을 때나 피아노를 배우겠다고 할 때처럼...


고치려고 노력 중이다. 하지만 생각처럼 쉽게 고쳐지지는 않는다. 아이들과 약속을 했는데도 완전히 고치지 못했다. 그래서 더욱 노력중이다. 지금은 비록 아이들과 예전처럼 좋은 관계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가 노력해서 고치거나 계속해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아이들과의 관계는 회복될 것이고 아이들에게서 보기 싫은 내 모습도 사라질 것이라 믿는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니까.


이전 03화 부모의 역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