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태어나서 자라는 동안 부모가 아이에게 해야 하는 부모의 역할은 무엇일까? 물론 아이의 상태에 따라 부모의 역할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 그 방향성과 상관없이, 또 아이의 상태와 상관없이 부모라면 반드시 아이에게 해주었으면 하는 역할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아이 스스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아마 대부분은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어떻게 아이 스스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 것인가 이다. 그것도 잘.
아이가 인생을 잘 살 거라는 기대로 많은 부모들은 아이를 일류 대학에 보내려 한다. 일부(?) 극성인 부모들은 유치원 때부터 준비를 한다. 이른바 명문대학 보내기 로드맵을 발동한 것이다. 그러면서 아이가 명문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할아버지의 재력이 필요하다는 말까지 유행처럼 돌기도 했다. 더불어 최근에는 엄마 찬스, 아빠 찬스를 이용해 스펙을 쌓고 내신을 올려 이슈가 되기도 했다.
아이가 원했을까. 아니면 이렇게까지 해서 아이를 일류 대학에 보내는 것이 부모의 역할일까. 아이는 잘 모르니 어느 정도 클 때까지 부모의 지도와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아이가 잘 모를 수 있다. 하지만 부모는 알까. 일류 대학에 가면 분명 남들보다 잘 살 가능성은 있다. 그것도 상당히. 그래서 그건 나도 인정한다. 하지만 인류 대학에 입학했다고 반드시 잘 사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부모의 과도한 지도와 도움으로 입학한 거라면 말이다.
몇 년 전 한 초등학교 교사는 교실 청소하는 방법을 몰라 교사 부모가 교실로 직접 와 청소를 대신해줬다는 얘기를 들었다. 물론 임용고시를 막 통과한 새내기 교사였을 것이고 부모가 단지 몇 번 해 주었을 것이다. 또 의사나 변호사가 되고 나서 그다음엔 무엇을 해야 할지 부모에게 물어본 사람이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누구나 선망의 직업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교사, 의사, 변호사가 되기 위해 본인뿐만 아니라 그 부모도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아마도 부모는 자기 아이를 안정적인 직업이며 선망의 직업 중 하나인 교사나 의사, 변호사로 키우기 위해 아이에게 집안일은 일체 시키지 않고 오직 공부만 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를 했을 것이다. 아이도 이러한 부모의 배려에 고마워하며 부모가 하라는 대로 또는 시키는 대로 공부만 했을 것이다. 공부 이외에 나머지 것들은 아마도 부모가 대부분 처리를 해 주었을 것이다. 너무 극단적인 사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주변의 많은 부모들이 좋은 대학을 보내기 위해 사교육에 매달리고 집안일은 일체 시키지 않으려는 것을 보면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직장을 잡을 때까지 부모의 도움을 받았던 아이가 직장을 잡은 이후에는 도움을 안 받고 살 수 있을까. 아마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던 대로 하려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언제가 아이는 부모와 헤어져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학교나 직장, 새로운 가정을 꾸리기 위해 아이가 부모를 떠나는 경우도 있고 부모가 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있다.
그럼 좋은 대학에 보내는 대신 돈을 많이 물려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물론 돈, 즉 재산이 많으면 인생을 사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재산을 물려준다 하더라도 아이 스스로 인생을 잘 살아갈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재산이라는 것은 시대나 환경에 따라 그 가치가 변해 현재의 가치가 미래에도 동등한 가치를 가진다는 보장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평생 동안 유지하는 것 자체도 쉬운 일이 아니며 설사 유지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아이 스스로 인생을 살아가는 독립 객체처럼 보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럼 무엇이 있으면 내 아이가 스스로 인생을 잘 살아갈 수 있다고 안심할 수 있을까? 아마도 내 아이 스스로 인생을 잘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안심이 될 것 같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그러한 믿음이 생길 수 있을까. 아마도 아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보면 유추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평소에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 어떠한 노력을 하는지, 또 장애는 어떻게 극복하는지 그 과정을 본다면 믿음이 생길 것 같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 스스로가 하고 싶은 것을 찾을 수 있도록 기회와 시간을 줘야 한다. 설사 조금은 위험해 보여도 또 무모해 보여도 말이다. 그런 과정들을 통해 스스로 성공사례를 만들다 보면 스스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니.
다행스럽게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특별한 장애가 없는 한 빠르거나 늦거나 하는 차이는 있을지언정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스스로 걷고 부모와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성장한다. 이는 커다란 성공사례다. 그것도 빠른 시기에 거둔 성공사례. 우리는 말하고 걷는 것이 일상화되어 너무나 당연하고 쉬운 일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다른 나라 언어를 배워 본 사람이나 다리를 다쳐 재활을 해 본 사람은 얼마나 힘든 과정인지 잘 알 것이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우리들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실패를 딛고 이겨냈기에 스스로 걷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자. 그리고 실패를 하더라도 격려를 해 주자. 괜찮다고. 넌 할 수 있다고 말이다. 만약 부모에게 의지를 하려는 아이가 있다면 아이 자신의 성공 사례를 얘기해 주며 일깨워 주자. 그리고 부모 스스로 반성해 보자. ‘혹시 내가 그 기회를 박탈하지는 않았는지.’
분명한 사실은 아이가 걷기나 말하기를 연습할 때 (의도를 했던 안 했던) 부모가 먼저 보여주고 옆에서 도와주고 그러면서 끊임없는 격려를 해주었기에 아이 스스로 걷기나 말하기를 성공할 수 있었다. 따라서 만약 현재 아이가 부모에게 의지를 많이 하려 한다면 어느 순간부터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마다 부모가 무조건 도와주었던가, 아니면 아이가 도움을 요청하기도 전에 부모가 대신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아이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부모는 아이에게 많은 기회를 주어야 한다. 설사 그 행동이 부모가 원하지 않는 행동일지라도 법의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래야 미련이 남지 않게 된다. 그래야 다른 새로운 것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만약 실패를 하더라도 부모라는 우산 아래에 있을 때 실패하는 것이 부모라는 우산이 없을 때 실패하는 것보다는 재기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부모가 방치하라는 말은 아니다. 부모는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할 수 있도록 많은 기회를 제공해야 하고 아이가 하고 싶다고 하면 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고 지지해 주어야 한다. 다만 부모가 생각할 때 위험 부담이 있거나 걱정이 되면 그러한 부분을 얘기해 주고 결정은 아이가 할 수 있도록 믿고 따라주는 것이다. 그리고 결과에 책임을 질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과정을 통해서 무엇을 배웠는지 의견을 묻고 피드백을 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가정은 학교와 함께 아이를 사화에 필요한 사람을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라는 울타리에서 보다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폭넓은 기회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