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야 없어져라
"아빠, 패드 안 해?"
멍하니 가만히 앉아 있는 나에게 까숙이가 말을 걸었다. 어제, 오늘 내가 게임을 하지 않자 까숙이가 게임 안 하냐고 묻는 것이었다.
"... 응..."
나는 별로 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시무룩하게 짧게 대답했다.
평소 나는 퇴근 후 집에서 패드로 게임을 했다. 아이들은 일주일에 컴퓨터, 텔레비전, 패드 등 미디어 사용 시간을 엄마와 약속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아이들이 생각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추가로 자기 할 일을 다하면 엄마, 아빠가 미디어를 사용할 때 시간 제약 없이 옆에서 볼 수 있게 했다. 아이들은 내가 패드로 게임을 할 때 옆에서 구경하거나 나에게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게임을 대신해달라곤 했다.
"아빠가 더 이상 돈을 못 버니 우리라도 돈을 벌어야겠다. 누나들 우리 노래 만들자! 노래 만들어서 우리가 돈 벌자!"
사실 나는 어제 10년 넘게 잘 다니던 회사에서 이번달까지만 출근하라는 말을 들었다.
만우절에 거짓말 같은 권고사직을 받은 것이다.
작년에 발생한 코로나로 전 세계가 사회적 거리 두기와 지역 봉쇄 등 특단의 조치를 처하는 시기에...
나이 많고 경력 애매한 나는 솔직히 갈 곳이 없었다.
노후 준비는 고사하고 아이들 모두 초등학생이라 앞으로 돈 들어갈 일도 많은데... 막막했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라 가만히 멍 때리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이런 아빠의 무기력함에 실망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냥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까숙이는 웃으면서 누나들에게 노래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아주 좋은 생각이야. 까숙이가 오랜만에 아주 좋은 생각을 했는걸."
까순이가 까숙이 말에 동조하며 까숙이 옆에 앉았다.
"그런데 무슨 노래를 만들지?"
"요즘 코로나로 많은 사람들이 힘드니까 코로나와 관련된 노래를 만들어봐. 아빠도 코로나로 회사에서 잘리게 생겼잖니..."
까순이의 말에 아내가 기다렸다는 듯 아이디어를 냈다.
"코로나야 없어져라."
엄마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까숙이 입에서 뛰어나왔다. 그것도 음과 함께. 하지만 아이들은 '코로나야 없어져라' 이외에는 더 이상 진도를 못 내고 있었다.
"가사를 먼저 만들고 그다음에 음을 붙여봐."
나는 아이들의 행동을 신기한 듯 재미있게 보다 아이들에게 한마디 해주고 뉴스를 보러 방으로 들어갔다. 뉴스를 보면서도 아이들이 만드는 노랫소리는 들을 수 있었다.
까순이는 가사를 만들고 까숙이는 첫음절을 이용해서 계속 흥얼거리며 음을 만들었다.
그동안 가만히 있던 까돌이는 까숙이가 흥얼거리는 음을 피아노로 치면서 가락을 만들었다.
정말 노래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순간 어제부터 우울했던 기분이 거짓말처럼 확 사라졌다.
나는 거실로 나갔다.
까돌이는 식탁에 앉아 빈 종이에 오선지를 그리고 그 위에 악보를 그렸다. 까돌이가 그린 악보에 까순이는 엄마 도움을 받아 가사를 2절까지 만들었다. 이렇게 아이들이 만든 첫 번째 노래는 까숙이가 첫마디를 읊조리기 시작한 지 채 10분도 안 되어 완성되었다.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아이들의 재능을 확인했다는 것도 기뻤지만 아이들이 기죽지 않고 서로 합심하여 스스로 위기를 극복하려고 노력한 모습이 더 기뻤다. 그리고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이라도 가족들을 믿고 함께 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혼자 끙끙대지 않고 빨리 얘기하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까지 나는 나에게 닥친 이 시련에 지나치게 의기소침하며 무기력해하고 있었다. 그런 나를 아이들은 걱정해 주고 위로해 주고 심지어 직접 문제를 해결해 주려고 까지 했다. 이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이 나보다 더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다.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이렇게 귀하고 훌륭한 아이들을 내게 보내 주신 하늘에게 감사했다.
나는 아이들이 만든 노래를 아이들에게 하나의 성공사례로 만들어 주고 싶었다. 또 자랑하고 싶었다. 아내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아이들이 만든 노래를 지적재산권에 등록하고 유튜브도 올렸다.
비록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노래지만...
힘들 때 이 노래를 들으면, 그때 감정이 떠오르면서 나에게 힘을 주는 나에게 정말 특별한 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