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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오스 이비 Jan 14. 2023

엘리제를 위하여

까숙이가 오늘도 피아노를 친다.

아마 패드 배터리가 없던가 오늘 미디어 사용 시간을 다 했을 것이다. 


띠리리리리리리리리 리리리 리리리 띠리리리리리리리리


익숙한 멜로디 소리. 

‘엘리제를 위하여’다. 


예전에는 트럭이나 큰 차가 후진할 때 나던 소리. 


...


문득 할머니 생각이 났다.


이전에도 분명 까숙이가 ‘엘리제를 위하여’라는 곡을 연주했었을 텐데 오늘따라 유독 할머니 생각이 났다.


비록 키 작고 몸은 깡 말랐지만 어느 상황에서도 어느 누구에게도 절대 기죽지 않았던 할머니.

내가 어렸을 때는 할머니를 무척이나 무서워했었는데... 

나이 드시고 당신의 증손자를 보면서 아이보다 더 해맑게 웃던 할머니. 

설날 아침 세뱃돈을 거부하던 머리 희끗희끗한 당신의 아들, 며느리들에게 “무슨 소리, 이 돈은 복 돈이야!” 라며 기어코 손에 쥐어줬던 정 많고 고집 센 할머니. 


그런 할머니가 오늘 많이 생각난다. 



13년 전.

월요일 아침 경영진 보고를 위해 회의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전화가 왔다. 아내였다.

“오빠!”

“응, 왜?”

“할머니가 돌아가셨어...”

“?!... “

“할머니가 돌아가셨어... 차에 치여서...”

믿어지지가 않았다. 며칠 전 까순이 돌잔치 때 지팡이를 짚고 혼자 잘 걸어 다니셨는데… 돌아가셨다니…

“무슨 소리야!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니!”

“아주머니가 연락을 해 와서 봤는데... 어떻게... 할머니 너무 불쌍하게 돌아가셨어...”


같은 단지에 살고 있는 한 아주머니가 홀로 길바닥에 쓰러져있는 할머니를 발견하고 할머니 주머니에 있던 연락처로 전화를 했던 것이다.

할머니는 종이에 당신이 직접 연락처를 적었다. 아들, 며느리, 손자 등. 그리고 그 종이를 접어 늘 가지고 다니셨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내의 전화번호는 맨 마지막쯤에 있었을 것이다. 그것도 크게.

누구보다 손주 며느리를 보고 싶었던 할머니... 그리고 손주 며느리를 누구보다도 좋아했던 할머니...


나중에 어른들이 CCTV를 확인해 보니, 할머니는 후진하는 이삿짐 차에 치여 한참을 길바닥에 쓰러져 계시다... 정말 불쌍하게 돌아가셨다고 한다.


얼마나 추웠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할머니의 최후는 정말 불쌍하고 쓸쓸하고 외로웠을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원칙적으로 아파트 단지 내에 모두 차는 지하로 다녔다. 이삿짐 차 등 특별한 차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할머니는 아파트 단지 내에 들어올 수 있던 그 몇 안 되는 특별한 차에 치여 할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가셨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할머니를 친 이삿짐 차는 원래 옆 단지로 갔어야 했던 차였다.


즉, 단지를 잘 못 들어온 이삿짐 차는 옆 단지로 가기 위해 후진을 하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보지 못하고 쳤던 것이다. 그리고 이삿짐 차 아저씨는 할머니를 친지도 모르고 옆 단지에서 이삿짐을 나르고 있다 아버지, 작은아버지에게 붙잡혔다.


만약...

이삿짐 차가 단지를 잘 찾았더라면...

후진을 할 때 안내하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예전처럼 차가 후진할 때 ‘엘리제를 위하여’라는 멜로디가 흘러나왔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정말 인명은 재천인가 보다.



부모님은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10여 년 전에 할머니, 할아버지를 서울로 모셨다.

심장이 안 좋으셨던 할아버지는 스텐트 시술을 거부하셨고 서울 생활을 몇 년 하다 새벽에 주무시다 돌아가셨다.

그 후 할머니는 아파트 단지 내 노인정을 오가며 계단식 아파트 맞은편에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장모님과 눈이 맞아 아내를 나에게 소개해줬다.



그러고 보니 며칠 있으면 할머니 기일이다. 

아마 할머니가 손자 자식들이 보고 싶어서 미리 오셨나 보다. 

보름 전 할아버지 기일 때는 아이들 학원이 늦게 끝나 같이 못 갔었는데... 

그때 할머니가 많이 섭섭하셨나 보다. 

할머니 기일 때는 꼭 같이 가야겠다.


아참! 할머니. 

당신이 점지해서 맺어 준 손자며느리가 요즘 많이 아파요. 

안 아프게 좀 어떻게 해주세요.

제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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