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랐던 정서적 대물림이 이어지고 있다
나의 세상이 무너진 적이 있다.
몇 살인지도 기억 안 나는 어린 시절 어느 날. 자다 깬 그때는 어둠이 짙은 때였다. 부엌과 연결된 작은 방에 불도 켜지 않고 앉은 채 홀로 울고 계신 어머니를 보는 순간 슬프고, 두려웠다. 그렇게 나의 온 세상이 무너졌다.
어머니께서 웃으시는 상황을 자꾸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늘 내가 먼저 웃어 보였고, 애교를 부리며 강아지처럼 살랑거리며 행동했다. 집안에서 어머니의 일을 대신하고는 했다. 설거지, 빨래, 동생과 같이 놀며 돌보기, 밥 챙겨 먹이기, 연탄불 갈기, 청소하기 등 잠마저 쪽 잠으로 주무시며 돈 벌고, 시부모님 공양에 집안 살림까지 하시는 어머니이셨기에 집안일을 덜어드리려 애썼다. 아마도 이런 행동에는 나의 세상인 어머니께 사랑받고 칭찬받는 느낌이 좋아서도 있을 테다.
아이였던 내가 자라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살아내는 모습이 어릴 때 보았던 어머니의 모습과 많이도 닮아있었다. 가족에게 웃어 보이고, 모든 일에 마다하지 않고 해내며, 힘겨움과 괴로움은 감춘 채 집안과 가족에 관한 모든 것에 홀로 슈퍼우먼이 되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다. 피가 강할까? 보고 자란 것이 강할까? 그렇게 내 자신이 우리의 어머니가 되어 있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머니께서 모든 것을 혼자 감내하지 않으시고, 도움을 요청하고, 나누어 같이 하는 모습을 보았다면 어땠을까? 힘들고 아픈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는 모습을 보았다면 어땠을까? 당당하게 자신이 해냈고, 해내고 있는 것들을 말하는 모습을 보았다면 어땠을까? 쉼으로 충전하는 모습을 보았다면 어땠을까? 그 시절이 어려운 시대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청소년시기부터는 어머니를 사랑해서 속상한 마음이 함께 공존했었다. 친구들과 친분을 쌓는 시기인 만큼 친구들과의 시간으로 집을 비우곤 했었다. 그러면서 그 시기의 어머니를 잘 알지 못한다. 아마도 여러 속상한 마음으로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다. 순한 아이여서 소리 없이 청소년기를 지냈나 보다.
난 감정을 억압할 줄만 알았다. 어떻게 드러내야 하는지, 어떻게 말로 설명해야 하는지, 이게 어떤 감정인 건지조차 형용해 내기 어려워했다.
아이는 홀연 단신 태어나 대부분의 양육자인 어머니가 세상 전부다. 그 양육자에 의해 아이는 유아시기 세상을 살아갈 가장 중요한 것을 터득한다. 자신의 가치, 세상의 신뢰감이 그것이다.
이것은 기억에 남지 않지만, 무의식에 남아 평생을 살며 자신의 사고패턴에 큰 영향을 준다. 이유를 모르겠는데 왠지 그러해야 할 것 같고, 모를 이유로 슬프거나 화가 나는 경험이 더러 있을 것이다. 그럴 때 답답하다. 이유도 모르겠는데 자신이 자주 왜 이런 생각, 마음이 드는 것인지.
이유를 모른 채 살다가 아이가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문제는 발생한다. 나의 무의식이 아이의 자유로움을 만나 부딪히는 감정이 생긴다. 그러면서 부딪히는 감정에 의해 알아차리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이해되고, 용서되는 순간도 생긴다. 하지만 허한 마음은 달랠 길이 없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어린 시절, 그 아이의 마음이 슬프고 속상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아이에게 똑같은 행동이 반복되며 감정의 대물림이 발생하게 된다.
나는 나의 아이에게 어떤 대물림을 하고 있는가?
감정을 억압하는 태도,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워하는 태도, 자신의 생각과 감정 표현을 꺼리는 태도, 힘겨움을 혼자 감내하는 태도, 어머니의 감정을 눈치 보는 태도, 버거운 것에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가 있을 것 같다.
나 자신을 보면 나의 어머니도, 나의 아이도 보인다. Ctrl+C 복사하기, Ctrl+V 붙여 넣기도 아닌데 무의식에 내재된 사고 패턴은 정말 쉽게 대물림되고 있다는 것을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깨달았다.
그 대물림을 해결하는 방법은 단 하나다.
내가 나 자신을 바꾸는 것이다. 나의 내면에 있는 아이를 위로해 주고, 사랑해 주고, 인정해 주며 아팠던 마음을 치유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내면아이의 마음을 느끼며 삶에서 적용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내가 어렸을 때 싫었는데 맞춰야 해서이거나 억지로 하거나 칭찬받기 위해서 하거나 어떤 이유에서든 원치 않았던 것을 해야 했던 그때의 마음을 떠올려보라. 그리고, 나의 아이가 그런 마음을 느끼며 하고 있을 것을 떠올려라.
분명, 나와 내 아이는 다르다. 하지만 아이의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다.
나도 모르게 나의 어머니에 의해 받은 영향이 내 삶 전반에 영향을 끼쳤고, 그로 인한 불편한 진실이 있음을 알아차리고, 인정하여 내 아이에게는 그와 다르게 아이의 고유성을 인정해 준다면 아이가 가지고 태어난 잠재성을 더욱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열린다.
이것이 부모와 자식 간에 일어나는 많은 어려움이고, 알지 못해 놓치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바라는 아이의 잠재성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이다.
아이에게는 부모가 세상 전부이다. 그 세상 전부인 부모가 아이에게 무엇을 전해주고 있는가? 우리는 그것에 집중해야 한다. 물질적인 지원보다 정서적인 지지가 보다 아이를 건강하고, 창의력 있는 아이로 키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