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곡선

by 깨작부인

아들은 고2다. 중학생 시기를 통째로 코로나 팬데믹과 보냈다. 긴 가정학습과 원격수업 끝에 등교하게 되었지만, 거리두기 단계가 조정될 때마다 생활은 흐트러졌고 시간은 무심히 흘러갔다.


어릴 적 아들은 밖에서 놀기를 좋아했다. 돌이 막 지나고 걷기 시작할 즈음부터 미끄럼틀에 빠지더니 모래밭에서 삽질하고 댐 만들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남편은 아들을 눈 덮인 덕유산에도 데려가고 대둔산에도 함께 갔다. 주말이면 어디든 가서 텐트를 치고 캠핑을 했다.

아들은 바깥 놀이를 좋아하고 책을 읽거나 만들기에는 금세 싫증을 느꼈다. 7살이 되어서도 글자에 관심이 없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한글을 가르쳤다. 한글을 익히는 데에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2학년이 되어서도 책을 소리 내서 읽으려고 하지 않았다. 같이 읽어보면 글자를 뒤집어 읽기도 하고 조사도 자주 빼고 읽었다. 의미가 통하는 낱말로 바꿔 읽고 싶은 대로 읽었다. 알음알음 전문가를 찾아 읽기 검사를 해보니 지능은 정상이나 읽기에 어려움이 있는 난독증을 갖고 있었다.


난독증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걱정이 커졌다. 읽기가 어렵다는 것 말고도 앉아서 하는 활동을 오래 하지 못하고 쉽게 산만해진다는 특성도 있었다. 읽기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매일 저녁 꾸준히 적당한 분량의 글을 읽게 했다. 결정적인 시기인 초등 3학년을 넘기지 않기 위해 육아휴직을 1년 더 연장했다. 쓰기와 읽기가 다르게 변하는 음운변동을 일일이 가르쳐주고 모조리 붙여 쓰는 것을 고치기 위해 띄어쓰기 연습도 시켰다.


난독증을 극복하기 위한 훈련은 지루한 반복이 많았지만,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다. 새로운 단어를 기억하기 위해서는 여러 번 읽어야 했기에 한번 기억한 단어는 잘 잊어버리지 않았다. 또 음운변동을 배우니 맞춤법도 쉽게 이해했다. 영어도 걱정이 되었지만, 한글을 낱자 소리 글자로 배운 덕분에 파닉스를 익히는 데 도움이 되었다. 난독증 진단을 받고 읽기 연습을 꾸준히 하며 거부하지 않고 노력한 것이 정말 기특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공부하는 습관도 길렀고 자신감도 갖을 수 있었다.


그러나 고학년이 될수록 학습에 어려움은 커졌다. 글의 내용이 많아지니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공부를 시작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고 막상 시작하더라도 금세 주의가 흐트러지며 자주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 어려운 문제에 막히면 한없이 시간을 보냈고 쉽게 포기했다. 아들은 책을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중학교 공부가 어려울 거라는 건 예상했던 일이었다. 다만 초등학교 때 했던 방식으로 어느 정도 극복했기 때문에 중학교 공부는 스스로 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정상적인 지능을 가지고 있으므로 연령에 따라 성장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아들은 중학교 공부에 적응하지 못했고 부모의 걱정하는 말을 잔소리로 들으며 자신의 동굴로 들어갔다.

시험에서는 매번 어떤 목표를 세우든 한참 부족한 점수를 받았고 다른 친구들처럼 스터디카페에 다녀도 성적은 오르지 않았다. 3학년 1학기 중간고사부터는 수학 시험지를 풀지 않고 같은 번호로 적어 냈고 마지막 기말고사는 준비를 거의 하지 않고 시험을 쳤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어떻게 공부가 되겠느냐며 마음이 없는 듯 행동했다. 작은 성취감도 얻기 어려웠으니 마음을 잡기 어려웠을 것이다.


내게도 어려운 숙제였다. 아들은 다니던 과외나 학원을 하나둘 그만두었다. 집에서는 아무 의욕 없이 먹고 자는 일과를 보냈다. 그런 모습을 보면 못된 말들이 목구멍을 비집고 나왔다. 마음이 무겁고 슬펐다. 어떤 이유를 대서라도 하고 싶은 대로 했고 집이 답답하면 늦은 시간에도 나가 친구를 만나고 왔다.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에 아들은 마음을 닫았고 나는 불통의 뻑뻑함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한 번씩 감정 폭탄을 터트리곤 했다.


우선 나부터 괜찮아야 했다. 아들과 거리를 두고 마음을 살폈다. 난독증은 아들이 가진 일부이지 전부가 아니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 아들 자신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기 어렵고 두려운 마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불편한 마음보다 아들의 어려운 마음을 더 헤아려보았다. 아들의 말 하나 행동 하나에 같이 널뛰던 마음이 잔잔해졌다.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작은 것이라도 긍정적인 표현을 해주었어야 했다는 반성이 되었다. 나의 욕심을 인정하며 아들에게 사과했다. 부정적인 마음을 거두니 마음이 가벼워지고 관계가 편안해졌다.


아들이 말을 걸기 시작했다. 듣기 싫어하는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고 말투도 부드러워졌다. 자기 생각을 말하며 엄마 생각도 물었다. 오랜만에 아들과 하는 대화가 좋았다. 아들은 그동안 공부할 준비가 안 되었던 것을 인정했다. 다른 친구들이 한참을 앞서 선행학습 하는 것을 보며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고도 했다. 아들의 생각을 존중하며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었다. 고등학교 진학 문제도 스스로 선택하도록 했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고 아들은 고등학생이 되었다. 고등학교 진학 후에도 성적은 그대로였지만, 학교에 빠지지 않고 잘 다니고 있다. 또 어떻게든 상점을 받으려고 노력한다. 아들은 어떤 인생을 살아갈지 가늠하느라 아주 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성장을 위한 자신만의 곡선을 그리는 중이리라.


남은 고등학교 생활을 하루하루 소중하게 여기며 자신의 그리고 있는 곡선을 이어가길 바란다. 누구보다 특별한 경험을 하는 중이므로 자신만의 특별한 곡선을 그릴 것이다. 나의 곡선도 그러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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