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자리

by 깨작부인

명절 아침이면 아버지는 가게 문을 열지 않고 옷을 말끔하게 차려입으셨다. 작은 읍의 전파사에서 파는 물건들이 명절이라고 대목이었을까 싶지만, 명절 전날 늦은 시간까지 우리 가게는 불이 환했다. 오일장이 서는 대로에 있는 가게라서 명절장을 보러 오가는 사람이 많았고 아버지는 흥겨운 목소리로 손님을 맞았다.


명절 준비는 어머니 혼자 고기를 사서 큰집에 다녀오셨다. 한창 돈을 벌어야 했던 젊은 날의 아버지는 명절 아침에만 가게 문을 열지 않았고 오후에는 서둘러 돌아와 문을 열고 다시 손님을 맞았다.


아버지는 다정한 사장님이셨다. 생계를 책임져야 할 작은 전파사는 아버지가 지켜야 할 ‘아버지의 자리’였다. 아버지는 6형제 중 다섯째였지만 큰집에 오는 아버지 형제는 많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우리 가족은 큰집에 가는 걸 거르지 않았다. 선산 가까이 사셨던 아버지는 벌초도 정성을 다하셨다. 가족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은 단단했다. 다른 형제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큰 집에 오지 않게 되었지만, 아버지는 큰아버지 곁을 지켰다.


아버지는 경제 발전을 일구었던 세대였다.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아버지의 역할을 다하셨다. 늘 바쁜 일상을 지내시며 하루의 일과를 보내셨다. 늘 바쁜 아버지였지만, 명절 아침이 되면 시계가 느리게 가듯 느껴지며 모처럼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깔끔한 옷차림, 이른 아침 온 가족이 타고 가는 자동차 안의 공기, 늦지 않게 가자고 재촉하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평소의 아버지보다 똑똑하게 기억된다. 명절 아침의 아버지는 편안하고 다정했다.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시아버지는 큰집과 사이가 좋지 않으셨다. 명절에 큰집에 가지 않고 고향 선산에만 다녀오셨다. 우리가 결혼할 즈음에는 큰댁에 다녀오기도 하셨는데 이전부터 있었던 묵은 감정들이 다시 일어나 얼마쯤 후부터는 왕래하지 않으셨다.


명절이 되면 시아버지는 공연히 부산하게 움직이며 시어머니를 귀찮게 하셨다. 비교적 평화롭던 일상에 균열이 생기며 시아버지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염려가 많아지고 고쳐야 할 집안일이 늘어났다. 챙겨야 할 것을 제때 하지 않았을까 지적하는 말로 소란이 되기 일쑤였다. 성질이 난 속을 소주로 채워야 잠이 들곤 하셨다. 매년 반복되는 모습에 가족들도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책망했다.


시아버지는 부유했던 집안의 둘째로 대학교육도 받으시고 번듯한 직장생활도 하셨다. 타지에 자리를 잡고 4남매를 모두 대학에 보내며 가족을 지키셨다. 이른 퇴직으로 무료한 일상을 보낸 시간이 길었지만 집을 손수 고치며 시간을 보내셨다. 그런 시아버지가 명절이 되면 마음에 불이 나는 듯 작은 일에도 불쑥 화를 내고 집안을 소란스럽게 만들곤 하셨다.


시댁에서 지내는 명절이 익숙해질 즈음 시아버지의 마음이 짐작되었다. 평소에는 조용히 지내셨지만, 명절에는 시아버지도 아들이고 싶고, 아버지이고 싶어 하셨다. 큰집에서 지내는 제사에 가지 않는 것이 아들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되셨을 것이다. 집에 오지 않는 큰아들이 이번 명절에는 오지 않을까 기대가 되었을 것이다. 그 어디에도 속마음을 풀어놓지 못한 시아버지는 빈속을 술로 달래셨으리라.


우리는 모두 자기 자리를 지키며 살아간다. 하지만 명절에는 평소보다 더 빛이 나는 자리가 있다. 아버지의 자리가 그렇다. 제 자리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반짝이는 명절, 잃어버린 자리가 희미한 빛을 내는 명절, 명절에는 잘 보이지 않았던 마음이 보이기도 하고 잘 모르던 내 자리가 확연해지기도 한다.


아버지들은 더 애써 삶을 살아내지만, 평소에는 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아 명절이 되면 그 마음이 성급히 빛을 내기도 한다. 지금은 곁에 없는 두 아버지와의 아쉬운 시간을 명절이 되면 떠올리며 빈자리를 살핀다. 아버지가 지켜온 일터와 가족, 사랑과 평화로운 일상이 내 자리가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