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네르게이아

by 깨작부인

3년 전, 도서관에서 하는 지혜학교에 갔을 땐 습한 강의실만큼이나 마음이 무거웠다. 수용하기 힘든 현실과 부정적인 과거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을 때였다. 기억은 왜곡되고 마음은 우울했다.


일주일에 한 번 조작된 스냅사진 같은 과거를 더듬었다. 교수님의 안내에 따라 한 걸음씩 위태로운 순간과 마주했다. 감았던 눈을 뜨고 다가가면 놀랍게도 다른 모습이 떠올랐다. 스스로 독자가 되어 나를 바라보고 위로하고 응원했다. 글을 쓸 때마다 무겁게 둥지를 틀고 있던 부정적인 감정이 점점 가벼워졌다.


‘양푼과 티포트’를 쓰며 오랫동안 괴로웠던 친정어머니와의 갈등을 깊은 사랑으로 이해했다. ‘나의 오랜 피아노’를 안고 쓰며 어린 시절의 나와 피아노에 얽힌 복잡한 마음을 떠나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좋아하는 커피를 소재로 쓴 ‘미드나잇 익스프레스’에서 육아에 힘들던 나를 만나 위로하고 잊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행복했다. 경험은 시간의 방해로 흐릿해지나 다시 그 순간에 몰입하면 미처 깨닫지 못한 생각과 의미에 도달하는 즐거움을 만나게 된다. 삶이 더 선명해지고 안전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그렇게 글을 쓰며 느낀 위로와 안정감은 자연이 주는 평화로움과 비슷했다. ‘삶을 가꾸는 글쓰기’는 나를 좀 더 다정하게 살피라고 말하는 것 같았고,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다른 이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라 했다. 글을 쓸수록 나에게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불편한 감정도 살필 수 있게 되었다. 옹졸했던 마음을 돌이켜 자기고백 같은 글을 쓰고 났을 때는 내가 좀 더 단단해졌음을 느꼈다. 나를 더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다.


나를 드러내는 일은 드러내지 않을 때보다 안전하지 않다. 나는 글쓰기 수업을 만나기 전까지 글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글을 쓰고 있다. 불안에 갇혀 찾지 못했던 단단함을 안전하지 않은 글쓰기를 통해 찾았다는 것은 노동이 휴식이 되는 아이러니와 같은 종류의 경험이었다.


기시미 이치로가 쓴 『미움받을 용기』에서 ‘키네시스(kinesis)’와 ‘에네르게이아(energeia)’를 발견했다. 20대에 ‘Being Doing’을 만났을 때처럼 반가웠다. 작가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완성한 이 두 가지 개념을 이렇게 소개했다. 목적지에 도달하려는 인생은 ‘키네시스적 인생’이고, 춤을 추는 것이나 여행처럼 목적의 완성보다는 과정 자체를 결과로 보는 인생을 ‘에네르게이아적 인생’이라고. 그리고 ‘지금, 여기’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어 내가 내 자신에게 의미를 주며 자유로운 인생을 살라고 한다.


자연과 글쓰기를 통해 ‘에네르게이아’를 배웠다. 세세한 자연의 변화는 과정 자체이며, 글쓰기는 지금의 나를 더 안전하게 하고 결과에 연연하지 않으며 경험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 이보다 더한 선물이 또 있을까.


이전 23화아버지의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