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꽃이 핀다

by 깨작부인

산 너머 남쪽에서 봄소식이 들려온다. 우리 밭에도 봄이 왔을까 궁금했다. 텃밭에 도착하니 봄볕 사이로 바람이 차가웠다. 오랜만에 보는 동네 사람들이 반갑게 인사를 했다. 하얀 목련도 얼굴을 보였다. ‘나를 기다렸을까?’ 마음이 살랑거렸다.


얼었던 땅을 뒤집고 퇴비를 했다. 분주한 봄날이어도 마음은 한가로웠다. 봄바람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일손을 멈추고 잠시 쉬기로 했다. 뒷산에 희미하게 분홍빛이 보였다. ‘진달래가 피는구나.’ 가슴이 두근거렸다.

텃밭에 심어둔 앵두, 체리, 자두, 블루베리 나무에도 꽃망울이 맺혔다. 통통하게 부픈 꽃망울이 하나둘 꽃잎을 펼쳤다. 어딘가 숨어 있던 꽃들이 가지 사이로 나온 것 같았다. 차가운 봄바람에도 꼭 붙어있는 꽃들이 기특해 보였다. ‘올해는 열매가 많이 열리면 좋겠어.’ 웃으며 인사했다.


길가에 심은 꽃잔디에도 분홍꽃이 피었다. 뒷집 할머니가 주신 것을 나눠 심었더니 한 무리의 꽃 더미가 되었다. 꽃잔디가 바람에 하늘거렸다. 할머니는 화단을 정리하고 꽃잔디 몇 가닥을 또 주셨다. 이번에는 여러 사람이 잘 볼 수 있게 텃밭 입구에 심었다. 시원하게 물을 주니 자리를 잡은 것 같았다. ‘잘 자라라.’ 꽃을 나누는 할머니 마음을 담아 다정하게 말했다.


농사일로 분주하던 4월이 지나 볕이 더워지면 이른 봄 심어놓은 완두가 하얀 꽃을 피운다. 도톰한 꽃받침이 5개로 갈라지며 말려있던 둥근 잎이 우아한 모습을 드러낸다. 두 장의 꽃잎은 날개처럼 젖혀지고 두 장은 앞쪽으로 둥글게 말린다. 소담하게 피어난 완두콩 꽃을 보면 통통한 꼬투리들이 떠오른다. 동글동글한 완두콩은 둥그런 꽃을 닮았다. ‘너 참 멋지구나!’ 완두콩 꽃을 칭찬해 준다.


감자를 심은 지 두 달쯤 되는 5월 중순이면 감자꽃이 만개한다. 끝이 별처럼 갈라진 하얀 꽃잎 가운데 노란색 수술이 선명하다. 꽃대 주위로 여러 개씩 모여 피는 감자꽃은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다. 감자꽃은 아쉽게도 오래 즐길 수가 없다. 꽃을 미리 따주어야 감자알을 크게 하기 좋다고 해서 그렇다. 감자 꽃대를 따서 모으니 풍성한 꽃다발이 된다. 예쁜 감자꽃을 그ㅁ냥 버릴 수가 없다. 유리병에 담아 꽂아 본다. 그리고 ‘미안해’ 말해 준다.


텃밭을 하면 꽃밭을 만들고 싶었다. 한여름에 보았던 알록달록한 그 꽃을 심겠다고 생각했다. 코스모스만큼 키가 크고 서로 다른 색의 꽃이 피어난다. 선명하게 핀 꽃이 무리지어 한들거리면 상쾌한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 꽃의 이름은 백일홍이다. 5월쯤 씨를 뿌리면 여름에 꽃이 피고 이름처럼 백일동안 알록달록한 꽃을 계속 볼 수 있다. 씨앗 두 봉지를 뿌렸다. 처음에는 몇 포기만 꽃을 피우더니 이듬해 꽃씨가 번져 여러 곳에 꽃이 피더니 꽃밭에 백일홍이 만발했다. 반가운 꽃들에게 ‘고마워’ 인사를 했다.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마음이 설레었다.


할머니가 마른 꽃대를 몇 개 두고 가셨다. 군데군데 씨를 뿌렸다. 비가 오고 나니 진한 초록색 잎이 여기저기 보였다. 뿌린 씨앗은 모두 싹을 틔운 것 같았다. 어떤 꽃일까 궁금했는데 주황색 꽃망울이 맺히더니 꽃을 피웠다. 노란색 테두리를 한 진한 주황색의 꽃잎이 여러 장 겹쳐 있었다. 만수국이나 서광이라고 불리는 프렌치 메리골드였다. 잎에서 나는 특유한 냄새가 벌레나 뱀도 쫓는다고 해서 봉숭아와 같이 마당에 많이 심었던 꽃이라고 한다. 특별히 돌봐주지 않아도 잘 자라는 꽃이 대견했다. 몇 포기 떠서 동생네 텃밭에도 심어주었다. ‘잘 가.’ 보내주는 마음이 흐뭇했다.


5월이 되면 어디서 날아왔는지 코스모스가 여기저기 피기 시작한다. 그냥 두면 블루베리 나무보다 키가 더 커진다. 처음 올라오는 꽃들을 자주 솎아주어야 여름쯤 핀 코스모스들이 적당한 크기로 자라 가을 하늘을 누볐다. 텃밭에 찾아온 코스모스가 마음을 부드럽게 했다. ‘참 예쁘구나!’ 어릴 적 길가에 피었던 코스모스가 떠올랐다. 옛 기억에 웃음이 번졌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아랫집 이웃에게 보라색 국화 한 포기를 얻었다. 옮겨 온 국화가 겨울을 잘 지냈을지 신경이 쓰였다. 텃밭에 갈 때마다 들여다보며 싹이 나는지 살폈다. 마른 국화가 있던 자리에서 초록색 싹이 올라왔다. 국화잎일까 궁금했다. 잘 자라 가을에 국화를 볼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어서 와.’ 보라색 국화를 기다린다.


겨울이 다가오는데 옆집 아로니아 나무에 열매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따도 될까 물으니 흔쾌히 허락하셨다. 이웃은 아로니아 나무를 우리 텃밭에 옮겨 놓으셨다. 좋아하는 아로니아 많이 드시라고 그러셨단다. 봄이 오고 아로니아 나무에 초록색 잎이 돋았다. 5월이면 하얀 꽃잎에 분홍색 꽃술이 귀여운 아로니아 꽃이 필 것이다. ‘고맙습니다.’ 아로니아 나무를 볼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몇 해 전 텃밭에 백일홍 씨앗을 뿌리며 이웃들에게 꽃씨를 나누어 드렸다. 그때 뿌린 백일홍 꽃씨가 온 동네를 알록달록 꽃밭으로 만들었다. 꽃을 좋아하는 이웃들은 그때그때 자연스럽게 꽃을 나눈다. 가벼운 나눔이 부담스럽지 않고 편안하다.


여름에는 빨간 장미도 볼 수 있게 되었다. 옆집 이웃이 예쁜 꽃 함께 보자며 잘 보이는 곳에 장미 묘목을 심고 계셨다. 웃으며 건네는 이웃들의 마음이 꽃처럼 아름답다. ‘행복해.’ 내 마음에도 꽃이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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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화를 끝으로 '멈추어 쉼' 연재를 마칩니다.

삶이 글이 되어 행복했습니다.

함께 해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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