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사의 양말, 그리고 자유로
명품이긴 하지만 더러운 양말을 굳이 집으로 가져가는 게 맞는 걸까?
애초에 왜 하필 나한테만 이 양말의 목소리가 들린 걸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사이, 어느새 아파트 단지에 도착했다.
주차를 마치자 양말이 한 차례 더 입을 열었다.
"진짜 재미있을 거라니까?"
골치 아프게 되었다 싶으면서도, 궁금증이 귀찮음을 앞섰다.
나는 손가락 끝으로 양말을 집어 들고 차에서 내렸다.
공동현관으로 가려면 재활용 쓰레기장이 있는 골목을 지나야 한다.
그때였다.
양말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목소리가 왜 너한테만 들렸는지 궁금하지 않아?"
졌다.
나는 양말을 든 채 공동현관을 지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19층 버튼을 누르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천장은 천장 그대로였고, 거울 속 나는 조금 지쳐 보였다.
집에 들어서자 아내가 내 손에 든 양말을 보고 한동안 나와 그것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물었다.
“그게 뭐야?”
“몰라, 나도.”
아내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별다른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곧장 욕실로 가서 손을 씻었다. 그리고 양말을 빨기 시작했다.
더러운 양말에게 이야기를 듣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양말은 묵묵히 젖어갔다. 때때로 거품이 배어 나오는 걸 보니, 제법 먼 길을 굴러왔을 것이다.
건조기에 돌려도 되겠지? 그렇게 생각한 순간, 양말이 입을 열었다.
"이봐, 이래 봬도 명품이야. 자연건조 부탁해. 건조되는 동안 나도 좀 쉬어야겠어.
이야기는 내일 들려줘도 되겠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결국 베란다 건조대 위에 널어놓았다.
어둠 속에서 양말은 말없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거실로 돌아오니, 아내는 에어팟을 꽂은 채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전에 얼핏 들은 인스타 라방인가 뭔가를 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밤의 고요 속에서 그녀의 희미한 웃음소리와 이어폰 너머의 음악이 잔잔하게 섞여 흘러나왔다.
나는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냈다.
서재로 들어가 캔을 따자, 청량한 소리가 공기 중에 퍼졌다.
그리고 내일 오전 회의 자료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 전에, 달력 한쪽에 조용히 메모를 남겼다.
2023년 모월 모일, H사의 양말. 자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