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 이야기 .3

비싼 비정규직의 아침

by 유경

아내는 여전히 자고 있는 것 같았다.
여행 동호회에서 처음 만난 그녀는 건강미 자체였다.

태양 아래서도 망설임 없이 웃고, 모래사장을 맨발로 달릴 만큼 에너지가 넘쳤다.

어딘가 우울해 보이는 구석이 있긴 했지만, 여행을 즐기는 사람답게 체력 하나는 알아줬다.

그런 아내가 난산 끝에 병을 얻었다.
사랑스러운 아이를 얻고, 덤으로 병도 얻었다.

육아로 인한 우울증에 병까지 겹쳐, 아내는 한동안 처가에 머물렀다.

정확히는 처형의 집이었다.

그때 나는 좀 멍청한 생각을 했었다.

아내와 아이가 처형네에 있으니, 안전할 것이다.
그리고 퇴근 후, 우울증을 앓고 있는 아내를 마주하지 않아도 되니 차라리 편하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나는 처형네와 내 집을 오가며 편안한 생활을 했다. 승진도 빠르게 했다.
하지만 가족과는 거리감이 생겼다.

아이는 2주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한 번 보는 나를 낯설어하며 울었다.
아내는 내게 거의 말을 붙이지 않았다.


어느 날, 처형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그럴 거면 그냥 이혼하고 살아, 제부."


그제야 알아챘다.
내가 진심으로 한심한 놈이었다는 사실을.


베란다에 널어둔 양말은 아직 덜 말랐을 것이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 보니, 녀석도 자고 있는 걸까.

아니, 양말도 잠을 자나?

내가 점점 미쳐가는 것 같았다. 냉장고에서 단백질 음료를 꺼내 들고 집을 나섰다.


약 2년 반 만에, 집으로 돌아오길 거부하는 아내를 겨우 설득했다.

그때 아내는 단 하나의 조건을 내걸었다.


“내가 원할 땐 여행을 보내줘. 혼자서도 갈 수 있도록.”


나는 그러마, 하고 약속했다.
그리고 그 약속은 지금도 유효하다.


아내는 가끔 여행을 떠난다.
아이는 어느덧 14살이 되었고, 혼자 밥을 챙겨 먹을 수도 있다.
함께 가자고 해도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출장과 겹칠 때도, 아내는 포기하지 않고 여행을 갔다.
나와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며, 집안 대소사나 아이 이야기가 아니면 아예 공유하지 않는다.
여행지도 행선지만 밝힐 뿐, 동행자가 누구인지, 무엇을 했는지는 묻지 않아도 알려주지 않았다.


전에는 여행만 다니더니, 요즘에는 시집을 읽는 모양이다.
거실 책장에는 빼곡하게 시집들이 꽂혀 있다.

최근에는 처형과 아이를 데리고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일본어도 할 줄 알았나?"

문득 궁금해졌지만, 예전에 내가 질문했을 때 아내의 반응이 떠올라 주저했다.


“당신이 나에 대해 궁금한 게 있어?”


그때의 생경한 표정.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아내를 너무 오랫동안 혼자 두었다.

처형의 경고 덕분에 아내와 아이를 집으로 데려오긴 했지만,
여전히 바빴고, 그건 변하지 않았다.


하..............................

양말 한 짝 주워오는 바람에 출근길 루틴이 망가졌다.

이래서는 능력 있는 CCO가 되기 어렵다.


"비싼 비정규직."


누군가 그렇게 말했던가.
그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임원이 되고부터는 더 노력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

출근길에 늘 듣는 마인드셋 팟캐스트.
오늘은 387회차였는데, 깜빡했다.

부드럽게 액셀을 밟으며 버튼을 눌러 팟캐스트를 재생했다.
볼륨을 높였다.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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