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를 만나기 까지의 여정
사실 까마에 대해, 까마귀에 대해 글을 적자면 10편 이상이 나올 것 같다.
시작점부터 현재의 고민까지 늘 까마가 함께 해왔다.
고민의 시작점과 현재까지를 2편의 글로 만들어보고자 한다.
까마는 까마귀일 뿐만 아니라 나의 창작 방식과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를 바꾸고 있는 유동적인 존재다.
문장으로 넘기기는 어려울테니 필자가 좋아하는 글의 방식인 숫자 메기기를 사용해보도록 하겠다.
01. 미술대학을 다니던 시절 누구나 그렇듯(?), 아니 나만 그랬을지 몰라도, 동기들 중에서 그림을 가장 잘 그려내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림에 대해서 큰 자신감이 있는 편은 아니지만 그때는 조금 심각했다. 그나마 가지고 있는 능력은 색감이라고 생각했다. 색감을 배치하고 구성하는 것과 나를 숨길 수 있는 캐릭터들이나 크리쳐들을 만드는 일을 사랑했다. 4년 내내 자존감과 싸우며, 그림을 못그린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02. 이상하게도 자신감은 없었지만 그림을 더 그리고 싶었기에, 작업실을 차렸다.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보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03. 감정과 감각을 색감으로 숨겼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과 강렬한 감정들을 숨기고 감추는 일을 해왔다.
04. 작업자로서 바라보아야 할 방향이라기보다는 내가 분노하는 부분에 집중하여 작업을 했었다. 사실 겁이 많은 사람이었기에 작업으로라도 화를 내고 싶었다.
04-1. 감정을 드러냈다고 하지만 감정을 드러냄과 숨김을 교차적으로 하는 일을 죄책감을 들게 했다. 또 다르게 주류 미술계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되었고, 과연 작가라고 불릴 만한 일을 하고 있는가를 고민했다.
물론 지금은 작가라는 느낌보다는 걷고, 느끼고, 바라보는 세상을 어떻게 표현하고 받아들이는데를 신경 쓰고 있다. 예술로 노동하고 걷는 기분을 가진다. 물론 캔버스를 짤 때 제일 노동하는 기분이다. 이 캔버스가 폐목재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05. 2019년부터 색깔로 악몽을 꿨다. 모양들이 떨어지고, 색감들이 떨어지고 감추는 형태의 꿈이었다. 그 꿈들은 솔직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환멸과 혐오감이 질환처럼 질척하게 붙어있었다. 물론 우울증약의 색깔들도 너무 아름다웠다.
06. 까마는 대체 어쩌다가 나오게 된걸까? 까마는 까마귀이기도 하지만 내가 이제까지 그려왔던 크리쳐와도 닮았다. 나는 나라는 단어를 안좋아한다. 물론 지금까지 나라는 단어를 너무 많이 썼지만. 중심적이지 않은 무언가를 그리고 싶었다.
07. 그림책 학교 워크샵에서 컨셉수업을 했다. 검정색을 그리고 싶었다. 사실 악몽들이 너무 무서웠다. 한국인들이 싫어하는 검은 동물들에 대해 그린다고 표면적으로 말하지만, 정말 직접적인 현실은 보편적인 사람들이 싫어하고 혐오하는 나같은 사람들을 닮은 무언가를 찾고 싶었다. 보편성에서 탈주된 나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물론 보편성에서 탈주된 사람은 정의가 모두 다르겠지만, 고등학생 때부터 그런 것들을 상상했다.
어떻게 보면 보편적일지도 모르는 이 에세이글에 이런 기록을 남기는 것 자체도 탈주선일지도 모른다.
08. 검은 동물들을 그리면서, 까만 새에 대해 알게 되었다. 까마귀과에 속하는 수많은 까만 새들의 성격과 치열한 삶에 대해 생각하면서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날아다니는 무언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09. 그렇게 까마귀를 만났다.
10. 까마귀를 자주 그리면서, 까마귀가 되는 상상을 하게 되었다.
(이어서, 20260119에 올라갑니다.)
나를 적기를 줄여보기 연습을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