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라고 모든 것을 함께 할 수는 없다

by 까막

사춘기 때부터 친구에게 집착이 심해졌다. 뭐든지 함께 해야만 했다. 아마 사춘기 때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못하다 보니 한 명, 한 명이 그렇게 귀중했나 보다. 이건 내 사정이다.


중학교 때는 농구에 미쳐 살았다. 여름밤, 불이 다 꺼진 농구장에서 공이 보이지 않는데도 한참을 놀 정도였다. 같이 농구하던 친구들은 6명 정도였다. 그중 M은 나랑 조금은 먼 친구였다.


M은 참 재미있었다. 말로 모두를 웃기는 재주가 있었고, 온갖 밈을 알고 있었고, 잘 나가는 친구들과도 잘 지냈다. 비가 쏟아지는 날, 잘 나가는 무리의 대장격인 친구가 M의 우산을 빌려달라며 들고 갈 때도 M은 화를 내지 않았다. 다만, 빗속에 그를 쫓아가면서 ‘에이~, 에이~’만 반복할 뿐이었다. 나는 그의 처세에 감탄했다.


사실 우리 6명은 다 비슷했다. 한 명 빼고. 그 친구는 에이가 아니라 주먹이 나가는 친구였다. 어쨌든 우리는 그렇게 중학시절을 무리 없이 보냈고, 대학 갈 때 즈음에 다시 한번 모였다. M은 한 군데만 붙었고 나는 세 군데 중 고민이었다. 알고 보니 우리 둘 다 같은 곳에 합격해 있었다.


고민 끝에 나는 M과 같은 학교를 선택하게 되었다. M 때문은 아니었지만 같은 기숙사 방을 쓰게 되었다. 이때부터 나는 M과 친해졌다. 그리고 M에게 집착했다. 나의 사교성은 아직 발전될 가능성을 모른 채 깊이 잠들어있었고, 나는 그것을 모른 채 수업이 끝나면 M을 찾았다. M은 친구가 많았다.


우리는 동반입대를 했다. 빨리 군대를 갈 수 있다는 이유여서였다. M은 가자마자 선임들에게 이쁨 받았다. 나는 그의 처세에 감탄했다. 나는 휴식시간만 되면 M을 찾았다. M을 찾는 사람은 많았다. 난 M을 찾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그에게 참았던 서운함을 토로했다. 그는 깊게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친구라고 모든 걸 함께할 필요는 없어.


나는 그 당연한 말에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그 뒤로 한 동안 M을 피해 다녔고, 묵언수행을 했다. 다만 계급상 아예 말을 안 할 수는 없어서 상황 봐가면서 했다.


전역 후, 나는 점차 M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친구는 많아지는데 친구와 같이 하는 시간은 예전보다 줄었다. 친구가 같이 무언갈 하지 못해 서운해하면 나는 스스로 놀라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친구라고 모든 걸 함께할 필요는 없어.


M과 전역 후에도 같이 살았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터 점점 새벽까지 보이스채팅을 하며 게임을 하기 시작했고, 나는 잠에 들지 못했다. 결국 크게 다퉜고, 나는 생각보다 일찍 상경하게 되었다.


20대를 모두 같이 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집을 나올 때 그리 아쉽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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