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소년과 장수풍뎅이

by 까막

과학소년이라는 잡지가 있었다. 과학에 관심이 많은 소년(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나는 부모님을 졸라 그 잡지를 매월 받아보고 있었다. 잡지들이 그렇듯 광고들이 중간중간 있었는데, 장수풍뎅이 육성키트도 그중 하나였다.


이름부터 멋있었다. 장수 풍뎅이. 광고 속 풍뎅이는 작은 나무 원통 위에 서 있었다. 우직한 듯 하지만 어딘가 우아해 보이는 뿔, 탄탄해 보이는 몸체, 광택이 나는 껍질까지. 나는 부모님을 졸라 장수풍뎅이를 받아보고 싶었다. 조그마한 입이 열렸다.


엄마-!


며칠 뒤, 택배가 도착했다.

흰색 플라스틱 원통, 흙, 알.

잘 부탁한다며 원통에 뽀뽀를 쪽 했다.


유충이 자라는 과정은 경이로웠다. 하루가 멀다 하고 쑥쑥 자랐다. 손톱만 했는데 손가락만 해졌다. 하교하면 바로 집으로 뛰어가 관찰하곤 했다. 손가락은 아기팔뚝 정도로 커졌다. 엄마한테 보여주니 기겁을 했다. 나는 나의 장수풍뎅이가 누군가를 기겁하게 만든 것조차도 뿌듯했다.


언젠가부터 유충은 더 이상 커지지 않았다. 움직임도 거의 없었다. 죽어버린 건가 싶었다. 울상이 되었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성충이 되려면 번데기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제 그럼 광고 속 그 멋있는 장수풍뎅이를 볼 수 있는 건가? 웃음이 나왔다.


시간이 흘렀다. 유충은 움직이지 않았고 색은 갈색으로 변했다. 나는 여전히 매일 들여다보았다. 집에는 종종 개미가 나왔다.


개미는 어디에나 있었다. 놀이터 모래밭, 학교 걸상 밑, 태권도장 출입문, 문방구 앞 게임기 좌석 위. 우리는 서로 다른 개미들을 싸움 붙이며 놀곤 했었다. 더듬이를 떼고 턱을 붙여놓으면 서로 물고 놓지 않았다.


그래서 집에서 개미가 나오는 것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놀다가 한 두 마리 데리고 왔구나 생각하고 문 밖으로 던져놓으면 그만이었다.


장수풍뎅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성충이 된다고 들었던 시기가 이미 지나고, 개미는 더 많아졌다. 나는 그 개미들이 흰색 플라스틱 원통에서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흰색 플라스틱 원통은 장수풍뎅이의 집이었다. 집을 열었다. 번데기를 꺼냈다. 번데기는 생각보다 가벼웠다. 이미 성충이 되어 번데기 허물을 벗어난 것처럼.


번데기를 뒤집었다. 개미들이 번데기에게 난 한 구멍에서 우르르 나오기 시작했다.


눈물이 나진 않았다. 손바닥으로 개미들을 죽이기 바빴다. 다 죽이고 나서 손을 씻고는 소파에 앉았다. 초등학생에게 공허함은 낯선 감정이었다. 껍질만 남은 번데기를 버리고, 난 개미한테 파 먹힐 것들은 사달라고 하지 않았다.




대수롭지 않은 일을 심각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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