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때문에 휴지로 혀를 닦은 날

by 까막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

하면 코끼리가 생각난다고 한다.


그 사람을 잊어야 해.

하면 절대 잊지 못한다.


생각이라는 것은 자식과 같다. 내 마음대로 되지가 않으니까.

하면 난 아직 자식은 없지만 부모님이 그렇다고 하셨다.


오늘은 생각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 자각한 날을 소개드리려고 한다. 어쩌면 이전에도 자각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날이 선명하므로 이 날을 처음으로 정하기로 한다.


정확한 년도는 기억이 안 나지만 아마 초등학교에 입학한 직후일지도 모르겠다. 티비를 보고 있었다. 아마 무서운 만화였던 것 같다. 음흉한 목소리가 티비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안녕?


음흉한 목소리가 말했다. 티비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티비를 껐다.


왜 그래?


소리는 내 머리에서 나오고 있었다.

이게 무슨 현상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의 의지가 아닌 것이 내 머릿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마 지금이라면 지랄하지마- 했겠지. 그렇지만 이 때는 지랄이 뭔지 몰랐다. 내 머릿속에서 지랄이 이루어진다는 감각만 느꼈을 뿐이었다.


하지마!


나는 소리를 질렀다. 그렇지만 목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나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화장실로 달려갔다. 돌돌돌돌. 휴지를 뽑고는 그걸로 혀를 닦았다.


왜? 고양이가 하는 행동을 이해 못 하듯이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를 이해할 수 없다. 다만 추측컨대, 내가 원치 않는 말을 했으니(실은 머릿속에서만 한 것이지만) 혀를 깨끗하게 다시 닦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지금은 더러운 말들을 잔뜩 하고도 혀 닦을 생각을 못하는 나인데 말이다. 그리고는 현관문을 열고 나가서 울부짖었다. 혀에는 휴지들이 붙어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한바탕 난리를 피운 뒤 난 잠들었고, 그다음부터는 이러한 현상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티비에 가끔씩 나오는 주인공 머리 양 옆에 천사와 악마가 나오는 장면처럼 그러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가끔은 휴지 때문에 텁텁한 입 안이 그립다.




대수롭지 않은 일을 심각하게,

심각한 일을 대수롭지 않게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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