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등대는 왜 있는 거야?
밤에 여기가 육지라고 알려주려고?
그러면 위로해주는 거네.
툭 나온 민정이의 한마디에 할 말이 없어진 나는 괜히 바다를 쳐다봤다. 철썩철썩.
그렇지. 위로라고 볼 수도 있겠구나. 나는 왜 저렇게 생각하지 못할까. EQ가 중요하다고 아주 오래전부터 떠들고 다니던데 나는 귀머거리인가 보다.
라고 생각하던 찰나, 저기 봐!
회색빛 새 한 마리가 바다 위에 서 있었다. 바다가 얕은가? 얕을 수도. 어쩌면 다리가 긴 것이 아닐까?
다리가 긴 새를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난 저 새가 될 거야. 새가 돼서 우리 새들이 편하게 살 수 있는 지구를 만들겠어.
그렇게 말하는 민정이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고,
나는 진두지휘하는 애꾸눈 새를 떠올렸다. 그 새는 지휘를 하며 무슨 생각을 할까. 이 전쟁이 끝나면 모두가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을까? 정말?
정말. 너무 좋다 여기.
응. 철썩.
철썩? 파도가 오더니 내 신발을 적시고 떠났다. 우린 바다에서 조금 떨어져서는 자리에 앉았다.
2.
강릉의 바다는 참 예뻤다. 바닷가에서 수평선까지 마음에 안 드는 색이 없었다. 실로 바다멍하기 좋다-라고 생각했다.
아 참. 멍때리는 중이었지. 멍때리자.
아니, 생각을 멈추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아까 보았던 새가 이번엔 바다에 둥둥 떠 있다.
그래. 아마 멍때리기는 저런 것이겠지. 겉보기에는 둥둥이어도 정말 치열하게 생각들하고 있을 거야. 그렇지? 생각하고 옆을 보니 민정이는 휴대폰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 차라리 솔직하다. 차라리 저 모습이 멍때리는 것이 아닐까.
갈까? 라고 말하고는 같이 손을 잡고 숙소로 갔다.
3.
숙소는 고즈넉함만으로 숙박비의 80%는 먹고 들어가는 듯 고즈넉했다. 모래를 털었고 침대에 누웠다. 그러고는 헤어질 결심. 아니지, 커튼을 쳐야지.
촥-
영화관에서 본 영화를 노트북으로 다시 보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영화 시작.
4.
수많은 관람평들 중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라는 평이 기억난다. 시 구절이라는 걸 알지만 이 영화와 참 잘 어울리는 평이다.
특히나 낮에 바다를 보고, 숙소에서 '헤어질 결심'을 보고, 다시 손을 잡고 밤바다를 보러 나왔을 때.
특히나 새해에. 특히나 새해 강릉에, 특히나.
철썩철썩.
올 한 해도 애꾸눈 새처럼 살아야지.
대수롭지 않은 일을 심각하게,
심각한 일을 대수롭지 않게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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