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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만햄찌 Aug 13. 2020

편리함의 출처는 누군가의 고단함이다

새벽에도 로켓처럼 빠르게 당신의 택배는 배송됩니다

 쿠팡의 택배없는날 응원 광고

‘택배없는날(매년 8월 14일)’이 올해부터 시행된다. 택배사업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지 28년 만에 맞는 첫 휴무일이란다. 5만 명으로 추산되는 한국통합물류협회 소속 택배기사들은 달콤한 휴가를 얻게 됐다. 8월 14일 잠시 멈춘 택배사들과 달리 쿠팡의 배송 서비스는 계속된다. 마켓컬리도 샛별배송 서비스를 정상 운영한다. 쿠팡과 마켓컬리는 한국통합물류협회와 무관한 자체 배송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체 배송망을 보유한 SSG닷컴(쓱배송)도 마찬가지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참 반가운 소식이다. 택배없는날에도 구매한 상품을 빠르고 신선하게 받을 수 있다니.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씁쓸한 소식이기도 하다.      


쿠팡과 마켓컬리는 참 많이 닮아있다. 제품을 직접 구매해 판매하는 직매입 전략과 외부자금을 태우며 급성장하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쿠팡의 최대 주주는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로 추정된다.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는 2018년 2조 원(20억 달러) 등 수조 원대 자금을 쿠팡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켓컬리는 지난 2015년 서비스 시작 이후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자금을 유치해왔고 올해 초에는 2000억 원 규모의 시리즈 E 투자받았다. 최근에는 산업은행에서 무담보로 300억 원 대출을 받기도 했다.      



마켓컬리 팝업 공지 화면


매년 영업손실을 내고 있다는 점도 유사하다. 쿠팡은 지난해 7232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올렸고, 마켓컬리 역시 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두 곳 모두 체급을 키워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겠다는 심산이다. 투여된 자금을 고려한다면 어중간한 성과로는 투자처를 만족시킬 수 없을 터다. 다시 말해 경쟁사의 점유율을 충분히 빼앗을 때까지 출혈경쟁을 하겠다는 것. 당연히 비즈니스 모델도 공격적인 형태를 띠게 된다. 그중 하나가 로켓배송과 샛별배송인 셈이다.      


공격적인 배송 서비스는 택배기사들의 노고를 수반한다. 실제로 업무 과잉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올해 3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쿠팡지부는 서울 영등포구 공공운수노조에서 '쿠팡의 무한경쟁 시스템, 죽음의 배송' 기자회견을 열었다. 노조는 “코로나 19로 늘어난 물량과 배송을 데이터로만 표현하는 그곳에는 사람이 없다"라며 "더 이상 누군가의 편리함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자본의 탐욕 앞에 비인간적 노동에 내몰리는 쿠팡맨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두가 잠든 늦은 밤이나 이른 새벽에 배송하는 새벽배송 서비스 역시 노동 강도는 만만치 않을 터. 


그리고 이는 한 회사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업체 간 배송 서비스 경쟁이 치열해지며 당일배송, 새벽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가 늘었다. 일부 업체에 국한됐던 문제가 업계 전반으로 번져나간 것. 쿠팡과 마켓컬리, 이들의 성장세는 부인할 수 없다. 이 같은 성과를 이뤄내는데 분명 편리한 배송 서비스도 한몫했을 것이다. 하지만 ‘좋은 비즈니스 모델’인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누군가의 고단함을 기반한 편리함을 우리가 소비하고 있다는 사실이 석연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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