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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Jun 22. 2023

자동차 트렁크가 훤해졌다

이제 어디든 떠나요, 둘이서

 시댁에 갔다가 싸 주신 것들을 실으려 트렁크를 열었는데 옆에서 보고 계시던 시어머니가 한 소리 하셨다.

 

 -아이고, 차에 웬 짐을 이렇게 실쿠 다니니. 죄다 싹 버려라.


 우리 차는 7인승인데 맨 뒤 3열을 접어 트렁크로 쓰게 돼 있다. 

 안 쓰는  여행 캐리어를 보관함 놓고 온갖 잡동사니들을  다녔는데 정말 '집어넣기'만 했던 것이다.

 캐리어 안뿐 아니라 그 옆에 일회용 우산들과 받침 부분이 뻑뻑해진 접이식 쇼핑 카트, 언제 거기 뒀는지 모를 소형 아이스박스까지 한 자리씩 맡드러누운 꼴을 보니 정리가 필요하긴 하다.


 아파트 주차장 구석에서 트렁크를 활짝 열었다. 비닐째 든 일회용 종이컵 한 줄에 오리털 침낭에, 어디 도망가서 살려고 했나 싶다.

 차량용품들, 세차용품들도 다 꺼내서 분류했

 그동안 쓸 일이 없어서 몰랐는데 렁크 바닥 아래 공간에 차량용 소화기와 비상 삼각대도 두 개나 있었다.


 재활용 쓰레기로 바로 버릴 수 있는 것들은 버리고 종량제 봉투로 버리거나 폐기물 스티커가 필요한 것들, 버리기 아까운 것들은 일단 집으로 가지고 올라왔다.  

 

 목 앞에서 자석으로 여며지는 귀여운 목베개는 여행지에서 예뻐서 샀는데 아이들이 거의 쓰지 않았다. 캐치볼 한다고 구비한 야구 글로브들과 배드민턴 라켓은 너무 새 거였고 고기잡이 도구와 미끼들은 쓸 기회가 없어서 포장도 뜯지 않은 상태였다.


딸들의 여행용 베개, 같이 놀던 기구들과 낚시 도구까지



 정리 중 갑자기 손도끼가 나와서 깜짝 놀랐다. 가족톡에 물어보니 남편이 비상 상황에 대비해 둔 거라고 한다.

 도대체 그의 머릿속에 상정된 '비상 상황'이란 어떤 것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차에 있으면 유용한 큼직한 인형무릎담요 세탁해서 갖다 두고 버리기 아까운 놀이도구들은 지인들에게 주거나 당근에서 나눔 하였다.

 물건의 입장에서도 차 뒤편의 어둠 속에서 묵는 것보다 잘 써 주는 집으로 가 편이 나을 것이다.


 여행용 캐리어를 가져가신 분은 감사하게도 아이스아메리카노 쿠폰을 보내주었다.

 정리의 결과가 예상 밖으로 행복해졌다.


물건들은 모두 잘 써 줄 임자를 찾아갔다




 우리 자동차 트렁크가 훤해졌다.

 곧 장마철이 오니 일회용 우산들은 그대로 두었 강제로 펴면 그런대로 쓸 수 있는 접이식 카 어머니댁에서 뭔가 더 얻어려는 흑심으로 놔두었다.


 너무 훤해져서 정말 이렇게 아무것도 없어도 되나 싶다.

 

 그동안은 왜 그렇게 잔뜩 싣고 다녔을까. 

 우리 생활 안에서 없으면 더 좋을 텐데 습관적으로 이고 지고 사는 것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다음엔 무엇이 훤해질 차례인가, 어미 황조롱이의 눈으로 찾아본다.

 


비포 사진을 안 찍은 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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