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고전문학 교과서에 나온 작자미상의 사설시조다. 이해하기 쉽게 현대어로 풀어 보았다.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맘때 '골계미'라는 어려운 단어도 배웠었다.
시조의 내용은 이렇다.
지은이는 개를 열 몇 마리나 키워봤지만 이렇게 얄미운 개는 처음이다. 지은이가 미워하는 사람이 집에 오면 개는 엄청 반가워서 야단법석이고, 지은이가 좋아하는 사람이 오면 물어뜯을 듯이 난리를 치고 짖어서 결국 그를 돌아가게 만든다. 밥이 많이 많이 남아서 쉬어서 버리더라도 그 개에겐 절대 안 줄 것이다.
고등학교 때 국어선생님은 이 시조에 대해 '본능적으로 충직한 개가 왜 작자가 미워하는 사람을 반기고 좋아하는 사람을 쫓아내는 걸까. 그것은 작자가 미워하는 사람은 그 집의 주인 즉 작자의 배우자라서 개가 좋아하는 것이고 반대로 작자의 숨겨진 애인은 개에게는 낯선 사람이라서 경계하며 쫓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껄껄 웃었다. 다소 충격적인 견해였지만 그런 상황이라면 개의 행동이 이해가 갔다.
몇 년 후 후배로부터 그 선생님이 불륜 사건으로 학교를 떠났다고 들었다. 야, 이건 뭐......
개를 키우는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텐데 아무리 가족 같은 반려견도 미울 때가 있다. 내 배에서 열 달을 키워 낳은 자식도 딱밤을 때리고 싶을 때가 있는데 개는 오죽하겠나.
아무튼 우리 열네 살 반려견은 한 달이 다르게 노화되면서 그에 따른 변화인지 안 하던 짓을 저지르며 나의 딱밤 욕구를 자극한다. 같이 늙어가는 주인은 굳이 참는다기보다는 그냥 포기하고 내버려 두기로 했다.
치뛰고 내리뛰거나 말거나, 버둥버둥 으르렁 캉캉 짖거나 말거나.
그래, 인생 뭐 있니. 맘껏 짖고 마구 싸라.
길에서 다른 개들을 만나면 정말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럽고 폭 안아오고 싶다. 말티즈는 말티즈대로 포메는 포메대로 비숑은 비숑대로 그 털 빛깔과 느낌과 체격은 다르지만 하나같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오종종 거리는 발이나 바짝 들린 꼬리나 똘망똘망한 눈이나 안 예쁜 구석이 없다.
나도 모르게 타견들을 향해 사랑 가득한 눈웃음을 발사한다. 그런데 하네스에 달린 리드줄을 잡고 걷는 개주인은 대부분 무표정이거나 피곤한 표정이다.
아니, 저렇게 사랑스러운 존재를 데리고 다니면서 무심한 표정일 수가 있지,라고 생각할 거다.
나는 그들의 표정을 보면 저절로 웃음이 난다. 우리 개를 데리고 다닐 때의 내 얼굴을 보는 듯해서다.
딸 친구들 사이에서는 우리 개가 인기스타다. 남의 집 다 큰 처녀들의 프로필 사진에 떡하니 올라가기도 하고누나들이 간식이나 용품 선물을 보내주기도 한다. 딸이 집에 와 있으면 개의 일거수일투족을 친구들에게생중계하기도 한다.
몇 년 전에 자기들끼리 우리 개 그리기 챌린지를 했다며 큰딸이 보내준 사진은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딸 친구들의 그림들
시인 김영승은 '우리 식구와 우리 개를 밖에서 우연히 만나면 서럽다'고 시에 썼다.
나는 다행히 우리 개를 밖에서 만나면 '엇, 쟤도 객관적으로 보면 꽤 귀엽네'라고 생각한다.
내 자식을 옆집 애 키우듯 하라는 육아 조언도 있던데 우리 개를 길에서 보는 남의 개처럼 대하면 좀 더 편안해 질까.
이렇게 사랑스러운 존재니까, 쉬를 아무 데나 싸고 별 것도 아닌데 목이 쉬도록 짖고 내가 화장실에 들어가면 미친 듯 문을 긁어대고 어디를 가든 헥헥거리고 따라다니며 감시해도 된다고.
하루 중 더 많은 시간의 총량 동안 쿨쿨 잘 자니까 얼마 간의 시간만은 제 맘대로 하게 두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