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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Nov 21. 2022

1988년이 담긴 서랍

 오랫동안 듣고 있는 가수의 콘서트에 다녀옴

 문득, 내가 지나온 세월들이 다 어디로 간 거지? 싶을 때 그것들이 어딘가 '서랍'에 모두 담겨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한 적이 있다.

 지나간 시간들이 콤팩트한 서랍이 열 개씩 열 줄이 있는 캐비닛에 싹 정리가 되어 어딘가에 남아 있는 것이다. 내가 보낸 날들이 그렇게 소중히 보관돼 있지 않고 수증기처럼 다 사라졌다면 너무 허무할 것 같았다.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면 우주의 한 귀퉁이에 끝도 없이 빽빽하게 3차원 지구의 모든 시공간이 꽂혀 있고 주인공이 동영상처럼 과거를 찾아보는 장면이 있다. 그 씬이 내게 매우 인상적이었다.

 우리의 지나간 세월을 캐비닛이 아닌 동영상 파일로 저장한다면 귀여운 usb 하나 충분할 것이다.


 11월의 어느 일요일 저녁에 나는 1988년이 담긴 서랍을 찾았다.

 우리나라에서 뜨거운 첫 올림픽이 열렸고, 담임 선생님은 책상에 커다란 전국대학 배치표를 펴 놓고 한 명씩 불렀고, 시내의 도로들이 반정부 시위대로 봉쇄됐으니 걸어서 집에 가라는 교내 방송도 자주 나왔다.


 나는 10대의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었다.





 10월보다 따뜻했던 올 11월, 한 유명 가수의 콘서트에 다녀왔다.

 고등학교 동창이자 고3 때 같은 반에서 바로 옆에 앉아 공부하던 친구 L과 함께였다. 나는 어쩌다 보니 초중고를 졸업한 동네에 여전히 살고 있고 L은 다른 도시에서 살다가 돌아왔다. 고3이라는 인생의 첫 고난기를 가까이서 보낸 특별한 사이인 우리는 지금 가까이에서 나이 들어가고 있다.

 나는 옛날 노래 중에 '광화문 연가'를 가장 좋아하는데 내가 고3이었던 해도 광화문 연가가 세상에 나온 해도 '1988년'이었다.


 그때는 당연히 인터넷이나 OTT가 없었고 티브이와 전화기도 안방이나 거실에 하나만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유일한 유희는 밤에 혼자 듣던 라디오였다. 엄마 아빠도 밤에 '별이 빛나는 밤에' 같은 프로그램을 듣는 것을 뭐라고 하지 않으셨다.

 고등학생이 돼서는 학교에서 주말 포함 매일 밤 열 시까지 자율학습을 했기 때문에 집으로 오는 셔틀버스 안이나 내 방에서 하루를 정리하며 가끔 라디오를 들었던 것 같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고증된 그 무렵의 금성 카세트 플레이어 겸 라디오


 재미없던 날들을 위로해 주던 다정한 목소리의 디제이가 거기 있었다.  

 쉰 살이 지난 지금도 먼 길에 차를 타고 갈 때, 계절이 바뀌고 어쩐지 좀 쓸쓸할 때, 집에서 맥주 한 캔 하고 마음이 말랑해질 때 그 노래들을 유튜브 뮤직에서 찾아 듣는다.

 그의 노래라면 어떤 플레이리스트를 선택해도 거의 다 알고 있는데 정작 라이브 콘서트는 처음이었다.


  



 팬들이 주로 중년층이다 보니 시립 아트센터 안은 중후한 관람객들이 가득했다. 부모님과 함께 온 착한 젊은이들도 간혹 있었지만 대형 포스터 앞에 줄을 서 기다렸다가 사진을 찍는 관객의 나잇대는 대부분 50대 전후로 보였다.

 그들을 쳐다보다 나는 엉뚱하게도, 마침 지금 한창인 대입 논술 시험장을 떠올렸다. 부모와 함께 온 수험생들이 다 입실하고 나면 대학교 교정 안팎은 중년 부부들만 가득한 이색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물론 그때의 공기가 긴장과 불안이라면 이곳의 공기는 기대와 설렘인 점이 달랐지만 말이다.         


 

 마침내 무대에 나타난 가수의 모습과 목소리는 젊었을 때보다 따뜻하고 깊어졌다. 피아노와 첼로, 바이올린으로 꾸려진 밴드가 전주를 리드하더니 나의 최애 곡 광화문 연가로 공연이 시작됐다.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하였지만'하는 첫 소절이 공연장 안에 가득 찬 순간, 잔뜩 참아 온 눈발이 막 터져 날리기 시작하는 광화문 사거리의 잿빛 하늘 아래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사람의 노래가 감동을 준다는 사실, 내가 그것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사실 그리고 이곳에 내 오랜 친구와 함께 있다는 사실이 그저 행복하다고 밖에 할 말이 없었다.   

     

 가사와 멜로디가 아름다운 발라드 곡이 많아서 눈을 감고 마스크 안에서 조용히 따라 불렀다. 그러다가 비가 흩뿌릴 때 정도의 와이퍼처럼 천천히 좌우로 두 팔을 흔들기도 했다. 인기 아이돌 그룹이 리메이크해서 더 유명해진 신나는 곡이 연주될 때는 모두가 일어서서 박수를 치고 몸을 흔들며 함께 노래를 불렀다.

 얼마 만에 그렇게 뛰어본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두 곡을 연달아 깡충깡충 뛴 다음은 살짝 자리에 앉아 쉬어야 했다. 댄스 가수의 콘서트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두 시간이 넘게 놀라운 에너지로 이벤트를 이끌었던 가수는 예순 살이 넘었을 것이다. 하긴 칠순을 넘어 팔순을 바라보는 가수들도 왕성하게 콘서트를 여니까 10년 후 별밤지기의 콘서트에 나는 남편 손을 잡고 다시 갈지도 모르겠다.


 


 

 옛 친구를 만나면 공통의 추억이 많은 그 시절로 돌아가게 된다. 방금 전까지 아트센터 안에서 오프닝을 기다리던 과묵한 아저씨들도 젊은 시절 좋아했던 노래들을 부르는 동안은 10대인 자신, 20대인 자신과 함께였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 현재가 아무리 행복해도 가끔은 청춘의 그 가버린 날들이 그리워진다. 우리는 늙어가는 게 아니라 익어간다거나, 늙음은 내 탓이 아니라거나 하는 말도 진정한 위안이 되지는 못 한다.

 그런데 젊음은 상대적인 개념이라서 70대인 부모님은 또 50대에게 '아무튼 요즘 젊은것들은 말야'라고 하시기 마련이다.    

 

 그러니 그대가 오늘 몇 살이든지 현재를 더 행복하게 보내자.

 2030년에는 2022년이 또 그리워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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