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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Jun 23. 2024

밥 잘 주는 예쁜 일터

(한 끼 식사는 15분 이상 천천히)

 아는 분의 카페로 가끔 일을 하러 간 지 4개월이 되었다. 점장님이 볼 일이 생기거나 매니저님이 휴가일 때 연락을 하시는데, 날짜가 정해진 게 아니다 보나도 마침 아무 일이 없어야 거래가 성사된다. 보통 한 달에 서너 번 가는 정도.

 어디 가서 부업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나는 점심 러시타임에 불려 가는데 일도 재미있지만 손님들이 몰려와서 호드득 떨구고 가는 이야기를 주워듣는 것이 즐겁다.

 20평 되는 카페는 주로 대기업의 협력업체와 여러 부문의 중소기업이 밀집한 산업단지의 전철역 앞에 있다. 고객의 95퍼센트가 인근에서 근무하는 직장인들이다.

 처음 그곳에 간 게 초봄이었고 이제는 완연한 여름이 되었으니 가끔 가는 내게도 익숙한 얼굴들이 다. 가게에 들어서면서 눈인사로 아는 체를 해 주는, 우리 딸 또래 고객생겼다.


 커피를 앞에 놓고 나누는 젊은이들의 고민은 비슷하다. 20대 중반인 우리 딸들의 고민과도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하고 싶지만 하기 힘든 연애와 결혼, 출산 문제, 월급을 쪼개서 하는 주식과 투자로 인한 고민, 늘 뜨거운 부동산 이야기 그리고 길에서 만나면 세  대쯤 때려주고 싶은 정치인들 이야기 등이다.

 

 천상 오지라퍼답게 가끔은 불쑥 참견하고 싶지만 마음속 응원만 보내고 집으로 온다.


흔치 않은 생강라떼가 있다

  



 

 거일하러 가는 즐거움 중 하나는 바로 옆 식당에 가서 먹는 점심에 있다. 회사나 빌딩의 구내식당은 아니고,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한식당인데 한 끼에 6500원(월 계약이나 식권 대량 구입은 할인)에 맘대로 먹을 수 있다.

 카페 사장님이 미리 밥값을 달아놓으셔서 나는 들어가면서 인사만 하면 식판을 획득하는 '안면인식 출입자'다.

 사장님은 하루 세 시간만 일하러 가도 밥을 먹고 오라고 떠민다. 처음에는 세 시간 일하러 가서 30분 동안 밥을 먹고 오는 게 고맙지만 미안했는데 지금은 미안한 마음 대신 순수하게 고맙고 신나게 먹는다. 그리고 근무하는 동안 즐겁게 열심히 내 가게처럼 일한다.  

 

 오후에 딱히 할일이 없으면 약속된 근무 시간이 지나도 뭔가 더 할 게 있나 꿈지럭거거나, 앉아서 다른 분들과 수다를 떨다가 오기도 한다.


 한식뷔페의 식판 예

 

 그야말로 밥 잘 주는 예쁜 일터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그 집 음식은 왜 그리 다 맛있는지. 밥도 쌀밥, 잡곡밥 두 가지에 샐러드와 과일 후식도 항상 넉넉히 준비돼 있다. 반찬은 국과 김치를 제외하고도 여섯 가지가 넘는데 간이 짜지 않고 식재료도 좋고 메뉴 선정과 조리에서 정성이 느껴진다.

 요즘은 밖에서 사 먹는 밥값이 너무 비싸서 회사 복지 중에 밥 먹여주는 복지최고라는데 맞는 말이다.

 제는 카페 사장님에게서 '하이!' 하 카톡이 오면 일하러 올 수 있냐는 용건임을 알아채고 식판 가득 먹을 생각부터 든다.


 우리 집 직장인 남편과 큰딸은 이미 회사 내 식당에서 맛있는 밥을 먹고 있고, 7월부터 출근할 신입사원 막내딸 시 세끼를 회사가 먹여 준다니 모두들 이런 먹을 복이.

 

큰딸 회사 구내식당 밥 예

 



 

 내가 결혼 전에 다니던 회사도 식당을 운영했는데 점심시간이면 식당 앞부터 시작된 줄이 계단을 타고 늘어져 있었다.

 회사 식당은 우리가 식판을 들고 지나가면 배식해 주시는 분들이 차례로 반찬을 떠 주시는 시스템이었다.

 요즘 구내식당들처럼 그때도 초복, 중복 같은 날엔 특식으로 삼계탕이 나왔. 일부러 차별하려고 한  아니겠지만 남자 직원에겐 한 마리, 여자 직원에겐 반 마리를 주었다. 보통, 여자보다는 남자들이 많이 먹긴 하지만 평소 식단도 아니고 손바닥 만한 영계가 나오는 급식 삼계탕에서조차 작은 걸 받는 게 억울했다.

 나는 혼자 투덜대는 대신 배식해 주시는 여사님들에게 '저는  먹으니 많이 주세요'라 말했다. 그다음부터 여사님은 창틀 아래로 말없이 쓱 쳐다보고는 내 식판에 한 마리를 척 올려 주었다.


 직원에게 밥을 주는 회사를 칭찬한다. 회사 밥이 먹기 싫을 때는 나가서 먹더라도 기본적으로 회사에서 끼니를 해결할 수 있으면 든든하다.


 휴대폰에서 가족톡 알림이 폭주했다. 회사에서 밥을 먹는 큰딸이 '배식 트레이 하나를 못 보고 구운 버섯을 먹었다'고 진노했다.  

 우리는 밥 먹으러 회사에 가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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