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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Jul 09. 2024

예쁘게 잘 살겠습니다

수건 앞에서

 낡은 수건을 버리고 새 수건을 사려다가 기저기에서 받아놓고 쓰지 않 수건 몇 장을 꺼냈다. 물용 문구가 찍힌 기념 타월들언제 어디서 받았는지 기억이 지 않는다.

 'ㅁㅁ지점 창립 00년 기념'처럼 단도직입적인 설명이 있다면 좋을 텐데 내가 받은 기념타월들은 어쩐지  내성적이다.

 첫돌축하 메시지와 함께 수건에 적힌 아기이름도 요즘 흔한 '민준'이나 '서아' 집 아이인지 도통 몰라 미안해서, 행복한 사람으로 잘 크라고 속삭인다.


 한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을 때는 념타월 따위 쓰지 않고 같은 색의 수건들을 사 실장을 채웠다. 이제는 수건을 사는 대신 묵혀 둔 공짜 수건을 쓴다.

 새 수건은 사용 전에 먼저 세탁을 해야 한다. 하얀 수건 하나를 골라 봉에 거는데 수놓은 글귀가 눈에 띄었다.


  - 예쁘게 잘 살겠습니다


 결혼 답례품으로 받은 가 보다. 요즘은 수건 답례품을 잘하지 않으니 몇 년 전에 결혼해서 이미 아기가 있는 친척이거나 남편 회사 직원일 지도 모른다.

 아니면 어머니가 받아서 주신 것일지도.

 

 저기요, 이 글귀대로 예쁘게 잘 살고 있나요? 가장 아름다운 순간의 그대가 준 수건을 이제야 쓰네요.





 '결혼식에서 비싼 밥 주지 말고 적당한 축의금으로 진정한 축하의 의미를 살리자'는 주장이 인터넷에 떠돌았다. 수많은 공감을 받는 그 글에는 축하와 축의금의 가치가 전도된 현대 결혼 문화의 면을 생생히 고발하는 체험형 댓글이 무성하게 달려 있었다.


 청첩을 받은 사람은 예식장 밥값을 기준으로 축의금을 고민하게 된다. 축의금 액수 결정에 친구, 직장동료 같은 '인간관계'보다 '식장 밥값'의 힘이 커졌다.

 축의금을 얼마 해 놓고 동반인까지 데려와 밥을 먹은 빌런(?)을 성토하는 사람을 심심찮게 볼 수 있고, 예식장 밥이 얼마라니까 돈만 내고 밥은  안 먹어야겠다는 사람도 흔하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토요일 점심에 좀 멀리 가는 결혼식에 초대받았다. 아무도 아는 사람 없이 혼자 가기는 좀 그렇고, 아예 안 가기도 좀 그래서 축하의 뜻을 담은 축의금과 함께 인사를 하고 오기로 했다. 그래서 봄나들이 삼아 남편과 함께 결혼식에 다녀왔다.

 내가 준비한 축의금은 일 인분 밥값에 약간 더한 금액이라서 둘이 밥을 먹기엔 '좀 그랬다'. 그렇다고 두 배의 축의금을 내면서 예식장 점심을 먹기에도 '좀 그랬다'.

 알고 보면, 행복한 결혼식에 초대받고서 여러 가지 '좀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 나뿐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소심한 내 상황에 위로가 되었다.   


 호텔 예식이라도 되면 하객 한 사람의 식대는 20만 원을 훌쩍 넘기기도 한다. 부부 두 명이 하객으로 갔을 때 칭찬은 못 받아도 최소한 밥값은 했다 떳떳하게 밥을 먹으려면 40만 원 이상을 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누가 봐도 비싼 예식에 반드시 가야 하는 입장이 아니고 적절한 축의금을 계좌로 보내기만 해도 되는 관계라면 송금하는 쪽이 피차 깔끔할 수도 있다.

 만약에 주최 측에서 식대 신경 쓰지 말고 꼭 와서 축하해 달라고 신신당부한다면, 자비로운 스테이크가 주는 기쁨으로 축하의 마음은 두세 배 커질 것이다.


 그러고 보니 '국수 언제 먹게 해 줄 거?'라는 관용적인 표현은 여든넷이신 시아버님이 명절날 20대 손주들을 앉혀놓고 떠보실 때 외엔 들어본 적이 없네.





 부부란 그저 예쁘게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최고인데 요즘 신혼부부는 따져야 할 것이 너무 많아 머리가 아플지도 모르겠다.


야외예식 준비중...꽃값만 천만원이라고

 

 예전에 남편이 이런 말을 했다. 딸들이 결혼할 때는 축의금 받지 않고 신부 아버지가 직접 잔치국수와 수육을 만들어 사람들을 대접하면 어떻겠냐고.

 그 대답으로 나는


 -원빈 이나영이냐.


라고 핀잔을 줬지만 뭐, 해 볼만하다. 일단 당사자들과 사돈 관계자들의 동의를 얻는다면 전혀 불가능한 미션은 아니다.


 그리고 남편의 소망을 실현한다면 '딸 결혼식에 하객들에게 직접 만든 잔치국수와 수육을 무료로 제공한 아버지'로서 유퀴즈에 출연할 수 있을 것이다,

 

 백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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