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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돈댁 가방이 샤넬이면 어쩌라고
내가 샤넬이 없지, 품위가 없냐
by
이명선
Jun 13. 2023
가까운 친구들 그룹에서 명품 붐이 인 적이 있다.
값비싼
공을 쏘아 올린 것은 새 자격증을 따고 취업해서 루이비통을 매고 나타난 M언니였다. 꼭 하나 갖고 싶던
백을 내돈내산 했다고 뿌듯해하는 그녀를 모두들 한마음으로 축하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에 전업주부인 다른 동생이, 남편에게서 선물 받았다며 루이비통을 한 번에 두 개나 인증했다. 하나를 예약하고 가지러 갔다가 그 자리에서 어찌어찌 하나 더 샀다는 것이다.
그때는
그룹의 내면에서 작은 소요가 감지되었다.
M언니의 '명품 내돈내산'은 전업주부인 우리들에게 솔직히 불가능의 영역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진심 어린 축하로 끝날 '남의 일'이었다.
그러나 '남편에게서 받은
루이뷔통'은
달랐다. 그건
나
도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지 않나 싶으면서
'나는 왜 루이뷔통 못 받아?' 하는 근본적 의문이 드는 게 당연했다.
- 내가 애들 학원비만 아꼈어도 애 하나당 샤넬 하나씩, 두 개는 샀을 걸.
늘 맞는 말을 하는 언니가 또 한 번 명언을 남겼다.
비비드한 스트랩이 포인트인 백-친구 L 소장품
나는 아직까지는 명품 가방이 필요하다고 느낀 적이 없다.
내 가방 중에서 가장 비싼 것은 30만 원 대의 닥스 호보백으로 아웃렛 매장에서 구입했다.
그러나 요즈음 나이가 차오르는 두 딸을 보면 아무래도 '상견례 자리' 같은 데를 상상하게 되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명품 가방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
상견례 유경험 친구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녀들은 약속한 듯이 상견례날에는 단아한 원피스를 입고 제법 비싼 루이비통(또!)을 들었다고 했다.
역시 상견례에는
최소 루이비통 정도는 갖추어야 하나 보다.
현대의 예비부부들은 양가 어른들의 노후준비가 되어 있는지도 중시한다는데, 내가 첫인사 자리에 들고나가는 멋진 가방은 '우리도 어렵지는 않게 사니까 걱정 마시라'는 뜻을 넌지시 전해주는 역할도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평생에 하나 살 거 '샤넬' 정도는 사야겠다.
말 나온 김에 내 마음에 드는
적당한 크기와 디자인의 샤넬 백 가격이 현재 얼마에 형성돼 있나 찾아보았다.
- 네에?
이것은 우리 동네 역세권 원룸의 월세 보증금 수준이 아닌가.
샤넬은 깔끔히 포기한다.
그래서 다들 루이비통 매장에서 만나는가 보다.
아니, 그런데 사돈댁 가방이 샤넬이면 어쩔 거고 닥스면 어쩔 건데.
샤넬 가진 사돈댁이 내 자식을 더 예뻐해 주는 것도 아니고 나한테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미래에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딸 상견례에 샤넬이든 루이비통이든 좋은
가방을 들고 가야 되겠다는 생각부터 한 나 자신을 반성한다.
가왕 조용필 아저씨는 일찍이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헤매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눈 덮인 킬리만자로 정상에서 굶어 죽는 표범이 되고 싶다'라고 노래했다.
그래, 나도 '샤넬을 든 하이에나'가 아니라 '닥스를 든 표범'이 되어야겠다.
- 그런데 표범도 샤넬을 들 수 있지 않나요?
허를 찌르는 좋은 질문이다.
그렇지만
내
남은 인생 중에 표범이 되기도 힘든데 추가로 샤넬까지 장만하기는 참으로 어렵다는 건 인정해 주었으면 좋겠다.
어떤 명품 백을 살 지는
좀 더 도를 닦은 후에
생각하기로 하자.
알몸 그대로도 우아한 표범의 얼룩무늬에 어울리는 가방을 분명히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들 상견례에 들고 갈 샤넬이 이미 있는 친구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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