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장이 훤해졌다

라고 쓰고 싶었지만

by 이명선

내 친구 하나는, 집에 있는 이불이라고는 가족들의 침대 위에 있는 거위털 이불 하나씩뿐이라 이불장이 따로 필요 없다고 했었다. 좋은 구스다운 이불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는데 털 이불이 여름에 시원하다니 써 보질 않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불장이 없다는 말만으로도 단출하고 좋다.


우리는 가족 수대로 계절별 이불과 침대 패드가 있다. 도톰한 솜통에 커버를 워 쓰는 겨울용 이불, 솜을 얇게 깔고 빈 봄가을용 차렵이불 그리고 원한 원단으로 널리 알려진 인견 이불이다.

침대 패드도 계절에 따라 극세사 패드와 면누빔 패드 그리고 인견 패드를 바꿔 사용한다. 물론 베개 커버도 여러 장 있다.

여름 열대야에 거실에서 에어컨을 켜고 잘 때 쓰는 패밀리 사이즈의 접이식 매트리스와 커버도 있다.

이러니 내가 케어해야 할 침구류의 가짓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


나도 친구네처럼 싹 다 버리고 거위솜털 이불 하나씩만 쓸까 생각했지만, 애먼 거위가 무슨 죄인가 싶고 멀쩡한 이불까지 버리기도 아까워서 정리만 하기로 했다.




우리 안방의 붙박이장은 세 부분으로 돼 있다. 그중 가운데 장롱이 아무것도 없이 위아래를 나누고 봉만 달려 있어서 이불장으로 쓴다.


이불장 위칸에 이불을 두데 아래에는 겨울용을 접어두었고 여름용은 곧 꺼내 쓸 수 있게 위쪽에 두었다. 계절에 맞게 바로 꺼내야 하는 종류를 위쪽에 놓는 것이다.

각기 이즈가 다른 이불들을 최대한 같은 너비로 접어 보기에 좋고 또 많이 들어간다.

겨울 이불들이 두껍다 보니 이불 몇 채가 공간을 독차지한다.



위에 달린 봉은 이불을 눌러서 잡아주는 기능도 한다

시중에는 이불 전용 파우치도 팔지만, 파우치를 사용하면 이불을 넣고 뺄 때마다 일이 더 생기는 데다 보관하면서 환기도 덜 될 것 같아 쓰지 않는다.

딸들이 오랫동안 잘 쓰던 차렵이불 두 채를 이참에 버릴까 한참 생각했다. 지금은 일 년에 몇 번 안 쓰는데 굳이 그게 없어도 다른 이불로 커버가 가능하다.

버리려고 한 쪽에 빼 두도 계속 고민했다.

그랬다가 건조기 이불 털기 코스로 한 번씩 더 케어해서 그냥 올려두었다.

어릴 때 산 이불이라 어린이스런 무늬는 있지만 해어진 데도 없이 말짱해서 아까웠다.

넣을 곳이 없는 것도 아니니 이번 정리에선 놔둔다.

위에 생뚱맞게 놓은 투명 정리함은 원래 냉장고 트레이인데 용도 변경하여 베개 커버 보관용으로 쓴다.


냉장고용 트레이 세트로 산 바구니


이불을 계절에 맞게 정리하면서 낡은 패드를 하나 버렸지만 원체 구성원이 많아서 이불장 안이 꽉 찬다.

이불개수 자체를 줄이지 않는 한 정리정돈만으로 이불장이 훤해질 수는 없나 보다.




이불장의 아랫칸은 28인치 캐리어와 수납 박스에 제철 아닌 옷과 잡다한 물건들을 고 있다.

초록 박스에는 무릎 담요들과 캠핑용 침낭 두 개, 특수 용도 베개 등을 고 바로 꺼낼 수 있게 했다. 목침, 대나무 베개, 목베개를 가끔 쓸 때가 있어서 한 곳에 찾기 쉽게 모았다.


위쪽에 달린 봉은 지금은 비어 있지만 겨울에 머플러를 쭉 걸기에 딱 좋다.

붙박이장 가운데에 이렇게 유용 가능한 공간이 있으면 급히 뭔가를 치워야 할 때나 잠시 보관할 때 여기에 감출 수 있다.



캐리어를 쓰려면 안에 든 옷들을 다 꺼내야 하겠지만 쓸 일이 거의 없다


리는 이불은 재활용함에서 받아 주는 품목과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넣어서 내놓는 것, 대형 폐기물 스티커를 붙어 배출하는 것으로 나뉘는데 동네마다 다르다.

우리 아파트에 있는 의류 수거함에는 '이불, 베개, 방석 수거가 안 되니 일반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리라'는 안내문이 붙여져 있다.

오늘 정리에서는 겉면이 해진 침대 패드를 쓰레기봉투에 넣어서 버렸다.


동절기에 깨끗한 헌 이불을 받는 유기견 센터도 있지만 솜이불은 안 된다.

개들이 이불을 뜯어 와 입에 들어가거나 주변이 난장판이 되면 일이 커지기 때문 것이다.



가족 구성원이 많으면 반드시 필요한 것들만 챙긴다 해도 종속되는 살림살이가 많을 수밖에 없다. 우리도 딸들의 이불이 각자의 거처에 가 있는 덕에 이 정도로 이불장 정리를 끝낼 수 있었다.

'하나를 들이면 하나를 내보내라'는 미니멀 계의 경구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시행착오 끝에 탄생했는지 짐작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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