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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방향으로
바다는 늘 거기에 있으므로
by
이명선
Oct 2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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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두어 살인 애들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알던 엄마들과 강릉 나들이를 했다. 우리
는 초등학교 앞에 있는 아파트에 살면서 초등학교 옆 중학교로 다 같이 올라갔고 고등학교는 다른 데로 다녔다.
정작 아이들끼리는 연락하지도 않는데 엄마들끼리 마음이 맞아 여태 사이좋게 지낸다. 아이들이 엄마 따라 친구가 되는 건 초등학교 1학년때뿐이다.
왕언니 한 명은 사정상 못 가고 넷이서 ktx를 타고 하루 나들이를 나섰
다
. 긴 세월의 인연인데도 먼 곳까지 놀러 가는 게 처음이었다.
서울역은 평일 오전에도 혼잡했다.
우리는 커피를 마시며 대합실에 잠깐 앉아 있었다. 막 여행을 시작하려는 기차역은 어디든 비슷하게 설렘과 흥분을 준다. 그 기대감 끝판왕
공간은 아무래도 공항이지만 말이다.
둘씩 짝지어 앉아 서울역을 출발했다.
서울역에서
강릉
역
까지
는
두 시간
. 두 시간 후면 우리는 바다 방향으로 걷고 있을 것이다.
오늘 날씨가 쾌청하다는 기상예보에 더욱 기분이 좋았다.
바다가 없는 도시에서 평생을 사는 사람들에게 바다는 특별한 존재다. 최소한 일 년에 한 번씩은 보고 싶다. 낭만의 일조를 자랑하는 서해에겐 미안하지만 그래도 바다는 동해 아니면 남해
를 보고 싶다.
나는 작년 10월에 강릉에 와서 1박 하면서 일출을 보았다. 딱 일 년 만에 다시 강릉에 온 것이다.
우리가 사는 도시보다 바다를 두른 강릉이 훨씬 따뜻했다. 햇살도 뜨거워서 한낮에는 반팔을 입어도 좋았을 뻔했다. 얄팍한 패딩 재킷은 거의 들고 다녔다.
해변에는 바다를 보러 온 사람들이 적당히 간격을 두고 앉아 있었다. 바다 주변에서는 세상의 소리가 노이즈 캔슬링 헤드셋을 통해 들리는 것 같다. 파도와 바람, 갈매기 소리가
먼저 들리고 사람의
소리들은 한 겹
바깥에 머무른다. 이번에도 똑같이 느꼈다.
멀리에 있는 누군가를 부르려면 도시에서보다 더 크
고 길게 힘껏 불러야 할 것 같다.
문득, 바닷가에서 결혼식을 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객들이 앉은 의자 다리가 모래사장에 푹푹 빠져 기우뚱거리면 웃음이 터지고 신랑신부는 모래 위에 펼친 버진로드를 꽤나 힘들게 걸어야 할 테니 '결혼 생활이 이렇게 힘든 거구나'를 몸으로
실감하는 것이다.
지자체에서 해변가 결혼 행사를 허락해 줄는지 모르지만 이런 결혼식이라면 '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을
'
거고 결혼식은 평생 한 번이 제일 좋다는 교훈을 모두에게
직접적으로 전달한다.
우리는 동행의 존재를 잠시 잊고 각자 취향껏 바다와 대면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 언니는 강릉이 처음이라며 안목 해변의 이쪽에서 저쪽까지를 쭉 걸어갔다 왔고 이 해변을 네댓 번째 방문한 나는 올 때마다 살짝씩 다른 기분이 뭔지 분석하면서 잔잔한 파도를 바라보았다.
나무 그네 위에서
저녁 기차를 예매한 우리는 짧았던 강릉의 마지막 일정으로 바다가 훤히 보이는 수제버거집 발코니 자리에 앉았다. 이른 저녁
으로 버거와 샐러드, 강릉 맥주를 먹고 다시 기차역으로 가야 한다.
지난 세월 동안 우리들이
함께 보낸 시간과 공유한 이야기의 총량을 숫자로 계산하면 지구 몇 바퀴쯤으로
많을 텐데 색다른 곳에 와서 마주 앉으니 또 다른
속 깊은 이야기들이 나온다.
이제는 자랑스럽고 좋은 이야기들 뿐 아니라 걱정거리나
조금은 부끄러운 감정들도 나
눈
다. 학교 때 친구들과는 또 다른 정감의 동네 친구이다.
결혼 후에 처음 살게 된 낯선 동네에서 아이들이 같은 학교에 다닌 인연으로 만난 우리는 여러 지역에서 태어나 자랐다. 제각기 다른 10대, 20대의 경험과 기억을 가진 여자들이 어른이 된 후 만나서 만들어가는 우정은 '평생 친구'가 되기에 충분히 단단하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한숨 자고 싶었지만 뒷자리 승객들이 너무 시끄러워서 불가능했다. 무슨 쇼핑백과 보따리를 그렇게 계속 부스럭거리고 트로트 노래 전화벨은 울리고 두 사람은 깔깔거리며 뭐가 그리 좋은지.
기차 예절도 없나 인상을 찌푸리다가 문득, 저 언니들도 오늘 강릉 나들이가 무척 즐겁고 행복했나 보다, 그래서 그 여운이 아직 남았나 보다 하고 눈을 감았다.
오늘 갔던 바다 방향의 산책길을 마음에 담고 집으로 돌아간다.
올해가 두 달 남았다.
담에 만날 때까지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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