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개꿈

대통령과 진돗개

by 이명선

식구가 된 지 62일째인데 여전히 곁을 안 주는 반려견 군밤이 생각을 너무 한 탓일까.


꿈을 꾸었다.


나는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박사장의 집 같은 저택에서 군밤이 걱정을 하고 있었다.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모든 상황을 꿰뚫는 꿈의 특성상 나는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작은며느리였고 나의 시가는 대대로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군부독재로 이어진 한국 근현대사의 해일을 버텨오며 그때그때 몰아치는 시절 권력에 기생충처럼 아첨하며 부를 불리고 살아온 집이었다.

꿈에서도 군밤이의 대인 사회성을 고민하던 나는 문득 우리 부촌의 스타 개 '진돌이'를 떠올렸다. 진돌이는 흰 진돗개인데 잘 사는 집들이 모인 그 언덕에서 개나 사람에게나 인싸였고 개인방송 채널도 있다.

내가 진돌이를 만나러 나가려는데 시어머니가 오늘 시아버지가 집에 올 거라고 했다. 알고 보니 시아버지는 대통령이었는데 탄핵이 돼서 돌아오는 처지였다.

그사이 집에 직계비속들이 모였는데 장손이라며 서른은 넘어 보이는 남자애도 있었다.

얼굴은 안 보이고 목소리만 나오는 나의 큰동서가 '니가 장손이니 꼭 할아버지 마중을 가야 된다'고 채근하며 끊어진 라인을 잡으려는 기색을 숨기지 않았는데, 역시 전지적 시점에서 알게 된 바로 작은며느리인 내가 아들은 없지만 시부모와 더 친해서 이 저택에 살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골목에서 진돌이와 보호자를 만나 군밤이의 헬퍼독 역할을 부탁했다. 청학동 스타일의 푸르뎅뎅한 한복을 입은 진돌이 보호자(남, 40대, 비혼)는 진돌이가 진돗개종친회에 정식등록된 순혈임을 강조했다.


다음 장면에서 탄핵돼서 집으로 쫓겨온다는 시아버지가 아까 그 장조카가 함께 들어왔는데 그는 실제로 탄핵 엔딩을 맞은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이었다. 탄핵의 충격에도 후까시를 놓치지 않은 시그니처 헤어 스타일을 하고 체격 때문에 벌어진 양복 윗도리 단추를 꼭 잠근 모습이었다.

장조카는 하이모 모델 같이 정수리 쪽 숱이 강조된 어색한 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돈을 내주셔서 함께 미용실에 다녀왔다고 말했다.

시어머니는 시아버지의 불쾌한 기색을 살피느라 안절부절못했고 집안 분위기는 어쩐지 갈 때마다 아무도 없는 우리 동네 해수탕의 냉탕처럼 참을 수 없이 썰렁했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큰 소리로,

-아버님, 저희가 이번에 개를 입양했는데요. 군밤이여요. 오늘부터 친구가 와서 놀기로 했어요.


라 밝디 밝게 말했다.

내 말에 시아버지는 건성으로 그래그래 했지만 시선은 이태리산 천연 대리석 바닥에 비치는 달그림자를 쫓는 듯 허망해서 측은했다.

어느새 군밤이가 진돌이와 어색하게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고 다시 한번 시아버지에게,


-아버님, 아버님!! 이 검정개가 군밤이여요. 아버니이임???!!!

했다. 그때 대한민국 제11,12대 대통령의 영부인을 닮은 시어머니가 짜증을 냈다.


-넌 눈치 없게 왜 이렇게 시끄럽니?


그때까지 목소리만 나오던 큰동서가 나를 비웃었는데 얼굴을 쳐다보니 그녀야말로 탄핵된 대통령의 아내를 닮았다.



한창 재밌는데 불현듯 느껴진 요의 때문에 잠을 깨버렸다. 화장실에 걸린 미니 시계를 보니 4시 반이다.


아무리 끝이 비참한 '전직'이래도 대통령 내외가 두 커플이나 나온 꿈이니 오늘은 로또를 사야 되나.


다시 잠을 청하며 어쩌다 이런 꿈을 꿨는지 분석했다.

자기 전에 뉴스를 봤고 낮에 윗집 아주머니와 그 집 개가 산책하는 걸 보고 '우리 군밤이는 언제나 함께 산책을 갈까' 부러워했었다.

꿈이란, 아득한 무의식의 강물에 유영하는 무수한 잡념의 물고기 중 아무것이나 체로 건져 그날의 일상 브이로그 영상 중 또 아무 클립과 버무려 만드는 판타지일 뿐이구나.

그렇지만 깨고 나서 제법 재미있었고 이렇게 하나를 썼으니 그 꿈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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