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과 홍콩에 다녀왔다.
나는 스물네 살 때 첫 해외여행을 홍콩으로 갔고 다른 가족들은 첫 방문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홍콩을 다녀온 때는 영국령이던 브리티시 홍콩이었고 홍콩영화의 인기가 할리우드 뺨치던 90년대 초반이었으니 현재의 홍콩은 나도 처음이다.
반려견은 우리를 떠나면서 가족 여행의 기회를 선물해 주었다. 온 가족이 해외로 여행을 다녀온 것은 딸들이 초등학교 1,3학년때인 15년 전이다. 지극히 사교성이 없는 개와 함께 사는 동안에는 뿔뿔이 흩어져 여행을 다녔다. 반드시 한 사람(주로 남편)은 개와 함께 집에 있었다.
각기 다른 업종의 근로소득자 세 명이 휴가를 맞추는 선작업까지 하고서야 십수 년만의 가족여행을 할 수 있었다.
탐나는 물건이 가득한 멋진 쇼핑몰과 빌딩이 있다는 것은 비슷하지만, 그 나라의 대도시가 주는 정서는 다르다.
홍콩은 홍콩만의 느낌이 있다. 풀어서 말하자면, 같이 진열하기는 좀 그렇게 서로 다르고 어울리지도 않는 취향의 장난감과 수집품들이 한데 섞여 있는 수납함이라고나 할까?
좁은 평지부터 높은 산 위까지 용적률이 무제한인가 싶은 건물들이 밀집한 홍콩은 반반의 얼굴을 가진 아수라 백작같이 양면적이다.
세상 화려한 마천루 바로 옆에는 외벽에 전깃줄이 엉키고 쓰레기가 쌓인 채 다닥다닥 창문이 붙은 낡고 높은 아파트가 있다. 사람이 사는 창문이라면 손바닥만 한 발코니에다 청바지부터 속옷까지 켜켜이 옷걸이에 걸어 놓았다. (전 세계 관광객들이 내 팬티를 보거나 어쩌면 폰으로 찍어도 상관없는 쿨한 분들)
그 보색의 조합이 또 어찌저찌 어울리며 독특하게 보이는 게 홍콩이다. 올려다보며 하늘을 가리는 건물의 웅장함을 느끼다가 아래를 보면, 꾸질꾸질한 사람들의 일상이 바글거리는 반인반수 같다고나 할까.
'홍콩' 하면 연상되던 밤거리의 네온 간판도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네온사인은 유리관으로 일일이 글자를 만들고 그 안에 색을 만드는 여러 종류의 기체를 채우는 방식이라 만들기와 유지하기가 번거롭고 비싸서 LED로 바뀌었다고 한다.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고층건물들은 홍콩 스타일이 뭔지 짐작하게 하는 시티뷰를 만든다. 그런데 건물 사이사이 간격이 숨 막히게 좁아서 그 거리에 오래 머물면 답답할 수도 있다. 이층 버스와 빨간 택시가 다니는 도심의 도로는 좁고 구불거리는 데다 1900년대부터 있던 한 칸짜리 트램을 위한 철길까지 같이 있어서 과거와 현대가 섞인 것처럼 느껴진다.
옛날의 홍콩 여행 때는 중국어를 몰라서 불편했던 기억이 없는데 이제는 중국어를 훨씬 많이 쓴다. 구글 카메라로 찍어도 당황하는 순간이 빈번하다. 다른 비영어권 국가들처럼 공항과 호텔 그리고 큰 식당 정도만 영어가 통하는 것 같다.
낯선 음식에 소심한 나는 딤섬 정도를 빼면 로컬 음식을 즐기지는 못 했지만 예상했던 일이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한 여행은 그 이벤트를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흠뻑 행복했다.
홍콩섬의 어느 길거리에서
가족 여행이지만 각각 하고 싶은 것을 따로 했다.
첫날은 딸들과 우리 부부가 따로 놀다 저녁에 만났고 셋째 날도 아빠와 큰딸, 나와 작은딸 이렇게 둘씩 짝지어 좋아하는 코스로 돌다가 오후에 만났다.
여행에서는 그곳의 자연경관이 주는 감동을 중시하는 남편은 큰딸과 함께 한 트래킹 코스가 가장 좋았다고 한다. 용의 척추라는 별명이 붙은 길의 끝에 서니 사방에 바다가 펼쳐져 무척 인상적이었다는 것이다.
그 시간에 작은딸과 나는 해변 마을에서 맛있는 것을 먹으며 한적한 시간을 보냈다.
활기가 넘치는 사람들과 예쁜 물건으로 가득한 도심도 좋고, 번잡함 대신 바람과 바다 그리고 하늘이 채우는 풍광도 좋다.
사람에게는 양쪽에서 받는 에너지가 다 필요하다.
큰딸이 찍은 드래곤스백 종착지 풍경-태풍이 지나가서 흐린 날씨
일요일에 홍콩을 떠나다가 빌딩 사이사이, 육교 위, 공원 주변 등 틈이 나는 곳마다 돗자리를 깔고 대열을 이루고 모여 있는 사람들을 봤다. 어디에 아이돌이 오나, 아니면 무슨 맛집 웨이팅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주말을 보내는 외국인 가사 관리사들(핼퍼)이라 한다.
홍콩은 보통의 가정에서 육아, 가사노동, 노인 돌봄 등을 위해 입주 근로자를 흔히 쓰는데 근로계약상 주말에는 집(일터)에서 나와 지내야 한다. 그러나 주거비용이 높은 홍콩에서 매 주말을 보내기 위해 돈을 쓸 수가 없으니 도시의 빈 곳에 돗자리를 펴고 그들만의 사회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홍콩의 물가가 비싸긴 참 비쌌다. 그러니 타국에 와서 일하여 가족을 부양하는 근로자의 입장에서는 주말의 숙식에 최대한 돈을 쓰지 않아야 할 것은 당연하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갑자기 맥주가 먹고 싶었다. 기내에서 맥주를 요청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바다 위 11킬로미터 상공을 시속 927킬로미터로 날면서 맥주 한 캔을 마셨다.
홍콩에서 보았던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생각한다. 해안가를 조망하는 고급주택에 살며 형광 색종이 색깔의 슈퍼 카와 백지 같은 요트를 가진 부자들은 어느 나라나 비슷한 모습이고 평범한 나에게는 별다른 감동을 주지 않는다.
닷새 동안 낯선 길에서 스쳐 지나고 눈이 마주쳤던 사람들이 있다. 내 몸 하나 쉴 만큼 좁은 공간을 반려동물과 나눠 사는 현지인들이나 나처럼 며칠의 일상을 떼어 놀러 온 여러 나라의 관광객들을 보면서 나는 다 같이 살아가는 인류의 동지애를 느꼈다.
나의 도시는 다른 이들에게는 행복한 여행지이다. 그저 마트에 가고 운동을 다녀오는 나의 모습은 여행자에게는 낯선 곳의 특별한 모습인 것이다. 내가 홍콩에서 그들을 그렇게 바라봤던 것처럼.
맥주를 마시면서 돌아가서 계속 살아갈 일을 생각했다.
즐겁게 살아야지. 내 곁의 사람과 시간을 최대한 누리면서 내가 가진 것들을 소중히 다루면서 살아야지.
하루하루 착하게 살아야지. 돈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해야지.
그리고 건강한 몸을 유지하며 거죽보다 몸속의 젊음을 추구해야겠다.
비록 뺨이 늘어지고 팔꿈치와 무릎에도 주름이 이글이글하지만 세상에서 온전한 나의 것은 현재의 내 몸과 그 안에 담긴 생각뿐이니 나 자신을 사랑해야겠다.
예뻐야가 아니라 튼튼해야만 다음 여행을 또 떠날 수 있다.
그리고 기내에서 마시는 맥주, 좋았습니다. 아직 안 해 보신 분들은 한번 해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