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을 했다.
그동안 우리는 다툰 일이 거의 없다. 갈등의 여지가 생길 때마다 남편이 물러서 준 덕이 크다.
그런데 이번에는 예상 밖이었다.
잘잘못을 가리지 않고 나를 감싸주던 지금까지와 달리 남편은 곧바로 강하게 응수했다.
상대가 옆구리를 가격할 줄 알았는데 얼굴을 호되게 맞은 기분이랄까.
남편은 그동안 참았다는 듯 신혼 때부터의 일들을 추보식으로 꺼내며 연타를 날렸다. 늘 아내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양보했는데 아직도 이런 일로 자신을 몰아세우는 게 힘들다고 했다.
부부싸움의 이유에 대해서라면 타인들의 구미가 당길 만큼 자극적인 단어가 있지만, 여기서는 그저 '가치관의 차이'라고 하자.
(이런 게 더 짜증 나는 법이다. '가치관의 차이'라니! 정치인들이 기본으로 쓰는 '자유민주주의 수호'라는 명분만큼이나 의뭉스럽다)
남편의 낯선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어디 가서 말로는 지지 않는 나도 온몸의 전의를 상실했다.
집에 있기가 싫었다. 휴대폰 하나만 주머니에 넣고 밖으로 나왔다.
때마침 눈이 펄펄 내리고 있었다.
전국에 한파주의보가 내린 날이었다. 아무거나 집어 입은 옷이 후드가 달린 긴 패딩이라서 다행이었다.
어디 가서 울고 싶은데 마땅한 장소가 없었다. 공원은 너무 춥고 카페는 안 된다.
나는 갑자기 세상 불행한 여자가 됐다.
눈은 왜 이리 쏟아지는지, 가슴은 왜 이리 답답한지.
거기다 더해 고질병인 허리는 하필 지금 아프기 시작하는 건지.
좀 걸으려고 10차선 도로 하나를 건넜지만 춥고 허리가 아팠다. 정말이지 카페 외에는 갈 데가 없었다.
나는 누가 봐도 우울한 모습으로 카페에 들어섰을 것이다. 눈 내리는 풍경이 훤히 보이는 창가 자리에 앉아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천천히 마셨다.
사람들이 있어서 역시 울기는 글렀다.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기로 했다.
남편은 연애 시절을 포함해 30년이 넘도록 더없이 좋은 사람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나는 가끔 내 맘대로 상상하고 속단해서 다그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나도 그런 점을 인정하니까 남편에게 공감이 되다가도 차갑던 얼굴이 떠오르면 화가 나기를 반복했다.
오늘 안에 그칠까 싶게 내리고 쌓이는 눈을 보며 두 시간쯤 앉아있다가 근처에 있는 성당으로 갔다. 성당에 나가지 않은 게 30년도 넘는데 이럴 때는 제 발로 찾아가게 된다.
그러고 보니 마음껏 흐느껴 울기에는 성당이 딱 좋은 장소라는 것을 깨달았다.
울고 싶을 때는 울어야 한다. 일단 울다 보면, 내가 이렇게 울 일인가 싶으면서 저절로 차분해진다.
나는 눈물을 닦고 일어섰다.
집으로 가는 길에 눈을 뒤집어쓴 남자들을 볼 때마다 '혹시 나를 찾으러 나온 남편인가?' 했지만 그건 드라마 속에나 있는 장면이었다.
남편에게 미안한 점과 내가 속상했던 부분을 솔직하게 말하고 나도 앞으로는 이렇게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함과 동시에 남편이 나를 위해 지켜주길 바라는 내용을 당부했다.
내가 없는 사이에 여러 생각을 했을 남편도 동의했다.
우리는 평소처럼 저녁을 같이 해서 먹고 나란히 누워 잠을 잤다.
이것이 두 주 전의 일이다.
서먹서먹하던 마음은 회복되었고 나는 그때의 약속을 잘 지키고 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들 한다. 아무리 칼질을 해도 베이지 않는 물처럼 싸우고 나면 다시 아문다는 뜻이다. 그러나 부부 중 한 사람의 마음에 겨울이 와서 살얼음이라도 끼었다면 물도 깨진다.
부부가 팔순이 되어도 손을 잡고 산책을 계속하려면 행여 서로의 마음 가장자리부터 얼기 시작하지는 않는지 꾸준한 동파 관리를 해야 한다.
어쩌면 우리의 결혼 생활이란, 일단 시작한 게임이 끝날 때까지는 바로 위아랫 칸에 이혼숙려캠프가 포진해 있고 결혼지옥으로 빠지는 낭떠러지가 곳곳에 도사린 뱀주사위 판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