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남편이 만든 가구로 채운 집

by 이명선

남편이 6개월간의 목공학교 과정을 무사히 마쳤다. 지난 2월부터 7월 말까지 주 5일 9시부터 6시까지 진행된 강도 높은 커리큘럼이었다.

매일 저녁을 먹으면서 남편은 그날 학교에서 무엇을 했는지 이야기했다. 처음 며칠은 하루 종일 대패질을 하거나 톱질만 하고 왔다. 복싱을 배우러 가면 한 달은 줄넘기만 시킨다고 들었는데 딱 그런 것이다.

나는 1년 정도 한문 서예를 배운 적이 있는데 거의 한 달은 가로획 세로획만 짧고 길게 그은 기억이 난다.

화선지에 먹물로 줄을 긋는 게 지루해서 몸을 배배 꼬던 나와 달리, 남편은 다른 생각 없이 하루 종일 대패질을 하는 게 재미있다고 했다.

머릿속으로 그린 가구의 형상을 구체적 수치로 구현하여 설계도면을 만든다. 적당한 목재를 고르는 일도 중요하다. 그런 다음 가구의 형태를 완전하게 하는 여러 가지 짜맞춤 기법을 활용해서 마침내 하나의 가구를 완성하는 것이다.


남편은 못이나 나사 같은 피스 없이 오로지 나무끼리 결속해서 동그란 스툴 하나, 2인용 벤치 하나, 반려견 침대 하나, 전통미를 살린 사방탁자 하나와 약장 하나, 사이드테이블 하나 그리고 협탁 하나를 만들었다. 그중 레트로 스타일의 사방탁자는 학교에 자료로 기증했고 두 명이 공동작업한 약장은 같이 한 동료에게 양보하고 나머지 가구들을 집으로 가져왔다.

사방탁자와 약장은 나도 수료기념 도록에서만 봤는데 사방이 트인 사방탁자는 달항아리나 영어원서 같은 것을 장식품(?)으로 두기에 좋아 보였다. 점의 개수로 번호를 매긴 조그만 사각형 서랍이 조르륵 달린 약장은 꽤나 귀엽고 실용적인 제품이었다.

도록에 실린 사방탁자와 약장 모습


집에 들어온 가구들에게 제자리를 잡아주었다.

6인용 식탁에 원래 쓰던 기성품 벤치 대신 남편이 만든 벤치를 놓았다. 나는 이 벤치가 무척 맘에 든다. 손으로 쓸어 보면 차갑거나 거칠지 않고 온순하다. 벤치는 상판과 다리를 내가 좋아하는 간살로 만들었는데 중간중간 짙은 색의 나무를 조화롭게 넣어서 포인트가 됐다. 다만 상판이 단단해서 원형 방석을 놓고 앉는다.

무더위를 피해 실내로 피서 중인 화분들은 사이드테이블에 올려놓았고 협탁은 중문 앞에 두고 외출할 때 필요한 것들을 보관하는 중이다.

군밤이가 자는 방석을 올려놓을 용도로 만든 반려견 침대는 남편이 무척 공을 들인 작품이다. 과연 우리 조심씨가 좋아할까 살짝 걱정했는데 냄새를 몇 번 맡더니 훌쩍 올라가 편히 누웠다.

며칠간 지켜보니 롱다리의 군밤이에게는 바닥에 깔린 요처럼 낮은 방석보다는 살짝 높아진 침대가 오르고 내리기에 편해 보인다.

무슨 왕좌 같은 군밤이 침대



다음 주부터 남편은 우드카빙을 집중적으로 배우러 간다.

우드카빙은 기계를 이용하지 않고 다양한 날의 칼과 끌로 사람이 직접 나무를 파고 깎아서 장식품과 용품을 만드는 일인데 예능 프로에서 유명인들이 우드카빙을 하는 장면이 여러 차례 나오면서 최근 인기 있는 취미 활동이 되었다. 카빙 작업용으로 준비된 나무(블랭크 목재)를 직접 깎고 다듬어서 그릇이나 식기를 만드는 원데이 클래스가 많고 커플 반지 같은 것을 만드는 반나절 데이트용 클래스도 있다.

이번 수업은 주 1회 2개월짜리라 시간의 부담이 적지만 우드카빙을 하는 영상을 보면 작업자가 손과 팔의 소근육을 많이 쓴다. 목공학교를 다닐 때도 손에 파스를 붙이고 다녔는데 너무 열심히 하지 말고 대충 즐겁게 했으면 좋겠다.


20년 전에 남편이 취미로 목공을 시작하고 만들었던 수납장은 여전히 계절 옷을 보관하며 잘 쓰고 있다. 순수한 원목가구는 내구성이 좋아 오래 쓸 수 있고, 해체해서 그 목재를 활용하면 완전히 다른 가구로 만들 수도 있다.


옛날에는 딸이 태어나면 오동나무를 심었다가 시집갈 때 옷장을 짜 주었다는데 남편도 이담에 딸들이 결혼할 때 호두나무 정도 되는 고급 목재로다가 예쁜 가구 하나는 만들어줄 수 있겠다.



서랍을 움직이는 레일도 나무로 된 협탁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