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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뱅이 유감

골뱅이 추가 금지

by 이명선

나는 골뱅이 소면을 좋아하고 맛있게 만든다. 골뱅이와 갖은 재료를 매콤 달콤하게 무치고 삶은 소면을 곁들이면 한 끼 식사로 딱이다.

운동을 마치고 집에 왔는데 어쩌다 보니 남편은 올 시간이 다 되었고 저녁거리가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얼른 골뱅이를 한 캔 꺼내고 냉장고에 있는 웬만한 채소는 다 조금씩 썰고 국수를 삶아 골뱅이 소면을 했다. 면이 익는 동안 재료를 준비하면 10분도 안 걸린다.

오늘 골뱅이 무쳤으니까 마실 거 사와,라는 문자는 굳이 안 해도 된다. 안 사 오는 날이 이상한 날이다.


보통 골뱅이 요리에는 영국에서 수입하는 유럽산 골뱅이로 만든 '통조림'을 쓴다. 골뱅이를 음식으로 해 먹는 나라가 거의 없어서 우리나라는 세계 골뱅이의 90퍼센트 이상을 소비한다고 한다.

소비자의 인식에서는 유동과 동원 두 기업 쌍벽을 이루는 가운데 한성, 사조, 펭귄 같은 식품회사 몇 곳이 시장의 공급망을 형성한다.

골뱅이 통조림을 살 때 그게 그건 줄 알고 '큰구슬골뱅이'라 쓰여 있는 것을 집으면 안 된다. 일반적으로 '자연산 골뱅이'라고 표기된 것과는 모양과 식감이 다른 종류라서 우리에게 익숙한 맛과 모양의 골뱅이 무침을 만들 수 없다.


골뱅이 통조림이 너무 비싸졌다. 마트 자체 할인이나 이벤트가 없이는 400g 캔 하나가 만 원을 육박한다. 그나마 순수한 골뱅이 무게는 예전보다 더 줄어서 고형량이 150g 정도다. 골뱅이를 담가놓은 조미액이 더 많다는 뜻이다.

그래서 골뱅이 무침을 할 때 다른 재료를 풍성하게 넣어야 그나마 집어먹을 게 있다.

보통 양배추, 양파, 대파가 가장 많고 상추, 당근, 오이, 파프리카 그리고 진미채도 애용된다. 부드럽고 쫄깃한 진미채도 비싼 재료다 보니 진미채가 들어간 골뱅이 무침은 탑티어라 할 수 있다.

나는 양배추, 양파, 매운고추는 기본으로 넣고 배추나 무가 있으면 채를 썰어 함께 넣는데 시원하고 아삭해서 맛있다.

양념장도 중요하다. 골뱅이 무침을 파는 식당이든 집에서 만드는 주부든 자기만의 킥이 있다.

고춧가루, 고추장, 식초를 넣고도 초고추장을 조금 넣으면 반복되는 것 같아도 맛이 다르다. 사람에 따라 매실청이라든가 굴소스, 레몬즙이 슬쩍 거들기도 한다.

이번에는 집에 파인애플 통조림이 있길래 그것도 넣어 보았다. 매콤한 가운데 살짝 새콤하게 씹히는 것도 괜찮았다. 하긴 사과나 배를 넣기도 하니까.

골뱅이와 소면만으로 양이 모자라서 이것저것 썰어 넣는 거지만 결국에는 채소를 함께 먹는 장점이 있어서 오히려 좋다.


골뱅이 무침에 곁들이는 국수로는 식감이 좋은 중면을 썼는데 최근에 쌀소면으로 바꿨다. 밀가루는 글루텐 이슈가 있는 데다 점점 소화 기능에 부담스럽다.

쌀 소면은 수입 쌀 93퍼센트에 감자전분이 들어간 제품, 국산 쌀이 97퍼센트 들어간 상품 등이 있다. 쌀가루에다 약간의 감자전분을 섞어 뽑은 쌀 소면은 밀가루 면에 비해 소화 부담이 없고 식감도 좋다. 나는 집에서 국수를 할 때는 쌀 소면을 사용한다.



내가 '골뱅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은 건 고등학생 때였다. 그때 티브이에서 하던 개그프로에서 술 취한 역할을 하느라 코에 빨간 분장을 한 개그맨이 거의 매회마다 '여기 골뱅이 추가요!'라 외쳤다. 그러면 관객들이 막 웃었다.

웃음 포인트가 뭔지 모르는 나는 엄마에게 골뱅이가 뭐냐고 물었었다.

그 후에 성인이 되어 호프집(맥주집)에 가면서 골뱅이 무침을 실제로 보게 됐다.

골뱅이는 그때나 지금이나 저렴한 안주는 아니다. 그리고 주점마다 무치는 방식이 다르다. 비빔 양념에 고추장 맛이 강한 곳도 있고 파절이 같이 가늘게 썬 대파를 가득 덮은 곳도 있다. 수제 튀김 메뉴와 함께 골뱅이 무침을 팔아서 유명해진 식당도 있다.

주재료인 골뱅이 통조림은 동네 마트에서도 흔하게 살 수 있지만 여전히 골뱅이 무침은 안주라고 여겨져서 집에서 굳이 만들어 먹지 않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비빔면에 골뱅이를 섞은 골빔면이란 신조어가 나오자 골빔면용 골뱅이도 출시됐다. 사 본 적은 없지만 비빔면에 간단히 털어 넣도록 소포장으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인스턴트 비빔면과 골뱅이를 함께 먹으면 단백질이 보충되니 덤이다.

급하게 골뱅이 소면을 해 먹은 지 얼마 안 된 주말 점심에 또 딱히 먹을 만한 게 없어서 비빔면 두 개에 골뱅이 한 캔을 넣어 먹었다.

낮술이 허용되는 주말에는 이런 점심도 괜찮다.

어느 주말 점심에 한 골빔면


남편도 다행히 골뱅이를 좋아해서 가격이 괜찮은 골뱅이 통조림을 보면 사 오곤 한다.

여분의 식품을 보관한 서랍을 열어 보니 골뱅이 통조림이 두 개 남았다. 일 년 열두 달 이벤트 기간이 아닌 적이 없는 우리 동네 중형 마트들이 경쟁적으로 세일을 할 때 눈여겨봐야겠다.

한 번에 여러 개를 산다면 온라인 주문이 오프라인보다 싸다. 그리고 쿠팡을 찾아보니 가성비로는 대용량의 업소용 골뱅이도 있다.


이제 골뱅이 값이 너무 올라서 '골뱅이 추가'를 맘대로 할 수는 없는 게 유감이지만 의외로 골뱅이 무침은 맑은 날과 흐린 날, 낮이나 밤, 한여름이나 한겨울 그리고 맥주나 소주 혹은 막걸리와도 잘 어울리는 뭉실한 매력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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