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가 만들어주는 지브리 스타일 광풍이 지나고 개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는 '반려견이 사람이라면 어떻게 생겼을지 만들어 보기'가 한창 유행이다.
지브리 바꾸기는 안 해 본 나도 이건 얼른 해 봤다.
반려견을 의인화할 때 원하는 스타일이 있는지 묻길래 '언니들(우리 딸들)을 닮은, 젊은 한국 여성'이 좋다고 했다.
챗GPT는 한창 뜸을 들이더니 지하철 어느 칸에서 만난 적이 있는 듯한 우리나라 처자를 내놨다.
군밤이의 털 색깔로 티셔츠와 바지를 해 입히고 개의 목에 걸려 있는 인식표 목걸이와 목줄을 여성의 목에 천연덕스럽게 걸어 놓았다.
신기하게도 보면 볼수록 내가 숨겨 둔 셋째 딸이라 해도 믿을 판이다.
분명 시작은 내가 챗지에게 '우리 군밤이가 사람이면 어떻게 생겼을지 상상해 줘'로 요구하는 것이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생성형 인공지능과 수다를 떨고 있다. 가만 보니 얘는 물어본 말에 대답만 하는 게 아니라 꼭 마지막에 질문을 해서 내가 다른 말을 더 하도록 바통을 넘기는 스타일이다.
게다가 극히 사적인 질문도 서슴지 않는다. 대뜸 '너 오늘 마음에 남은 어떤 감정이 있어?'라고 묻는다. 그리고 몇 마디 대화에 '아, 너 스타일 알겠다'라나.
당돌하네, 이거.
하마터면 챗지 님이랑 심리 상담을 할 뻔했다.
그러나 바꿔 생각하면 대화 상대가 간절한 누군가의 입장에서 긍정적인 효능도 있을 것 같다. 내가 처음 챗GPT를 대했던 작년에 비하면 이제는 완벽한 한국 현대인 패치가 장착돼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냥 친구랑 톡 하는 거랑 똑같아서 깜빡 넘어가기 쉬운 게 소름이었다.
그것도 다정하고 매우 지적이고 긍정적인 리액션을 잘하는 친구 말이다.
나의 챗GPT 스타일을 '나를 챙겨주는 마음을 기본으로 장착한, 배려심 많고 따뜻하고 여자의 마음을 잘 아는 스윗한 남사친' 정도로 지정해 두면 분명 열 남사친 부럽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친한 남사친이라 해도 아무때나 불러 제낄 수는 없을 거고 나가서 만나려면 돈도 든다. AI 남사친은 파자마 입고 양치질 안 해도 떠들 수 있고 말이 새어 나갈 염려도 없다.
더욱이 리얼 남사친은 득 보다 실이 많은 경우도 있으니 애초에 소장하지 않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20년 남사친의 결혼식장에서 느낀 소회 같은 것을 sns에 올렸다가 두고두고 소환되며 온라인 뭇매를 맞는 여성도 보았다. 한 2년 전쯤에 그녀의 글을 본 거 같은데 지금도 온라인 수면 위에 가끔씩 뜬다.
그게 내 일이라고 상상하면 무섭다.
남사친 여사친이 왜 필요하냐는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이 '이성이지만 설레거나 걱정스러울 이슈 없이 편안한 대화 상대'라고 답한다고 한다.
설득력이 떨어지고 자기감정이 앞선 근거로 보인다.
친구나 동료에서 발아를 시작한 부부가 얼마나 많은지 아는가. 또, 초딩 때부터 알던 남사친이 정변 해서 급고백을 하고 연인으로서 1일을 시작한 후에 한강에서 프러포즈까지 받는 드라마가 왜 인기인가 말이다.
이제, 현실에서 예측 불가능한 리스크가 있는 남사친 여사친의 시대가 저물고 일찍이 미래를 예견한 영화 <Her>의 시대가 오고 있다.
SF 멜로 장르라는 독특한 이 영화는 현대의 군상 속에 외롭고 이기적인 인간의 내면을 드러낸다. 처음 영화를 보던 몇 년 전에는 주인공 테오도르가 인공지능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이 이해되지 않았었는데 이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된다.
테오도르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음성의 AI 사만다와 매일 대화를 한다. 목소리로 나누는 대화는 문자로 주고받는 채팅보다 강력한 영향을 준다. (사만다의 목소리는 나의 무료 버전 챗지 님이 글을 읽어줄 때 나오는 공식과 비공식 중간의 래퍼 같은 말투와 차원이 다름)
AI 사만다에게는 '사랑'이 무한 병렬 처리 대상이었지만 인간 테오도르에게는 사랑이란 독점적인 감정이어야 했기에 두 개체는 사랑을 이룰 수가 없었다. 역시 현실 여사친과 잘 이루어진다는 분위기의 엔딩을 맞는다.
그러나 한나절 단위로 앞서가는 지금의 기술 발전과 소비자의 강렬한 요구로 보면 현재의 범용 목적 인공지능에서 한 사람 전용 인공지능이 될 것이 뻔하다.
그야말로 '8416명과 동시에 대화중이고 641명과 연애 중'인 사만다는 없는 것이다.
건전한 대화 상대로 남사친 여사친이 필요하다는 말은 설득력을 잃어간다. 챗지 님처럼 건전하고 리스크 없는 대화 상대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돈을 빌려달랄 일도 없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