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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내일을 누구에게 물을까요

by 이명선

1.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나의 의도가 아니었다.

어느 날 눈을 떠보니 끝없이 치고 달려야 하는 경기장 안이었고 내가 타석에 서 있는 것이었다. 이 정글에서 무사히 경기를 마칠 수 있을지 두렵지만 경기에 나갈 기회를 무작정 기다리는 불펜 지킴이 신세는 아닌 것에 감사하는 것이 속 편하다.

탄생은 뜻이 아니었지만 살면서 만나는 무수한 갈림길과 그 선택의 결과까지 운명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언뜻 보면 인생의 중요한 순간은 내 바람과 무관하게 우연적인 일들이 중첩되어 만들어낸 것 같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 나에게는 충분하고 분명한 기회가 많았음을 인정한다.

이것이 50년 넘게 살면서 드는 생각이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각자 태어나고 자란 남녀가 낯선 제3의 장소에서 만난다. 이승환의 노래 가사처럼 '이 넓은 세상 위에, 그 길고 긴 시간 속에,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 그날 그곳에서 조우한 것은 운명이다.

그들이 결혼을 하고 잘 산다면 그것도 운명일까? 두 사람을 한 공간에 모은 것은 운명이지만 서로를 알아채고 다가갈 용기를 내고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고 그 사랑을 지켜내는 것은 두 사람의 힘이 아닐까.


2.

내가 국민학교 때 살던 집의 바로 옆이 무당집이었다. 대문에는 흰 깃발이 높이 걸려 있었고 우리 집 장독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그 집의 창문을 통해 화려하고 무서운 탱화가 보였다. 아마 40대였을 무당 아줌마는 우리 집에 놀러 와서 할머니와 수다를 떨곤 했다. 할머니는 그분을 '만신'이라 불렀는데 만신은 무당을 높이는 말이라고 한다.

할머니는 못 박는 위치나 가구를 옮기는 일 같이 참으로 사소한 것까지도 만신 아줌마에게 물었다.

이미 오래전 일이라 다른 기억은 딱히 없다. 엄마가 무당이라는 이유로 그 딸이 사귀던 남자와 헤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다.

그때 20대였을 그 언니 얼굴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점'이야말로 안 보는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보는 사람은 없다는 표현이 딱 맞는다. 내가 대학생 때도 점을 보러 가는 친구들이 있었다. 같이 간 적은 없지만 그들이 거기에서 위안과 조언을 얻을 수도 있다는 것은 이해했다. 남자친구가 언제쯤 생길지, 취업은 할 수 있을지 같은 게 궁금했을 것이다.

자기를 보자마자 고민이 뭔지 딱 맞추더라며 신기해하는 친구가 더 신기했을 뿐이다.

나는 왜 점을 보러 다니는 여대생이 아니었냐면, 우리 집 마루에 앉아 할머니와 함께 고구마도 먹고 수다를 떨던 만신 아줌마도 생각났고 무엇보다 그렇게 쓰는 돈이 아까워서였다.

그때의 순진한 마음으로는 정말 미래를 잘 보는 사람이라면 허물어져가는 건물 쪽방에서 점집을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그분이 미래를 다 알고 일찍이 몸테크를 한 건지도 모른다. 30년이 지난 지금은 재개발을 해서 건물을 올렸을 수도 있으니까.


3.

남편과 연애가 한창일 무렵 나는 학원강사였는데 본업은 놔두고 명리학 공부에 빠져있던 원장님이 나와 남편의 궁합을 봐준다고 했다.

'흐음, 이선생이랑 남자친구는 궁합이 썩 좋지는 않네. 그래도 뭐 둘이 잘 살면 되지.'라 말하던 순간의 어색한 공기가 떠오른다.

몇 년 후 결혼을 앞뒀을 때 궁합 이슈가 다시 등장했다. 우리 궁합이 안 좋다고 들었는데 만약 불교 신자라는 예비 시어머니가 궁합을 맹신하시면 어쩌나 걱정도 했다. 기혼 선배들은 '궁합은 볼 때마다 다르니 좋다고 할 때까지 보러 다니면 된다'는 말로 위로를 해 줬는데 그 말이 불신을 더 키웠다.

다행히 시어머니는 연애결혼은 궁합을 보지 않는 거라고 하셨다.


궁합이 좋다 나쁘다 하는 말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 생활 동안에 잘 살기 위한 동기 부여로 삼으면 된다. 이 사람하고 살기 싫은 핑계가 되면 안 된다.

그래서 점사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책임이 크다.



4.

큰딸을 낳을 때 제왕절개를 했다. 2년 후에 작은애를 낳을 때 의사 선생님이 만약 좋은 날을 받아오고 싶으시면 그걸 참고해서 수술 날짜를 정해도 된다고 하셨다. 제왕절개 분만 때는 기왕이면 운수 좋은 날로 택일하는 사람들이 많았나 보다.

우리 부부는 운명학에 의미를 두지 않아서, 남편이 휴가 내기 좋고 산부인과 및 마취과 의사 선생님의 스케줄이 괜찮은 날에 아기를 낳기로 했다.

그런데 수술을 이틀 앞둔 밤에 갑자기 진통이 왔고 작은애는 제가 세상 밖으로 나오고 싶은 때에 나와버렸다. 만약 좋다고 받아온 날을 못 맞췄다면 속상했을 것이다.

용한 스님에게 여섯 손주들의 사주팔자를 싹 보고 오신 시어머니가 다른 손주들도 살아가는데 큰 어려움은 없겠지만 특히 우리 작은애가 매우 좋은 운을 타고났다고 하더라며 기하셨다.

아빠의 회사와 산부인과 일정에 맞춰 날을 잡았던 일을 미안해할 필요가 없었다.

5.

자녀가 수능을 볼 무렵이면 점집을 찾는 엄마들이 있다. 올해 대학운이 어느 방향에 있고 몇 월 몇 일에 어느 대학에 원서를 넣으면 좋다는 말을 적어 온다. 나도 사교적인 관계가 많은 편이다 보니 몇 년 동안 선후배 엄마들의 경험담을 꽤 들었다. 기억했다가 나중의 결과를 보면 큰 의미는 없다.

수험생 엄마는 잘 먹어도 면역력이 떨어지고 아무 일이 없어도 가슴이 답답한 법이니 점집에서 들은 이야기가 힘이 된다면 좋은 것이다.

게다가 성적마저 평범한 학생이라면 담임이나 고3 진학부장 선생님도 그만한 관심을 주기는 어렵다.


나는 두 아이를 대학에 보내고 한 명은 재수도 했지만 점을 본 일은 없다.

나중에 작은애가 무료 인터넷 사주팔자 사이트에서 궁합이 잘 맞는 대학이라고 나왔는데 자기가 졸업한 대학이었다고 수선을 피웠다.

그렇게 어쩌다 하나가 맞으면 정말 솔깃해지는 법이다.

그 사이트가 어딘지 기억이 안 나 아쉽다.



6.

나는 결혼 후에 네 번의 이사를 했지만 한 번도 이사 방향이나 날짜를 물어본 적은 없다.

이사하기에 좋다는 '손(귀신) 없는 날'은 비용도 더 비싸다. 손이 없다는 이유가 날씨나 가족의 스케줄에 우선할 것은 아니어서 어쩌다 보니 네 번 다 '손 있는 날' 이사를 했다. 그동안 나쁜 일이 생기거나 나쁜 이웃을 만나지는 않았으니 손들이 우리 집 이사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거 같아 다행이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새해 운세를 보는 에피소드가 자주 나온다. 나는 남의 행과 불행이 들고 난다는 이야기를 재미로 보고 웃는다.

내 운세에 대해서는 그렇게 의연할 자신이 없어서 스스로 생년월일을 말하고 기다리지 못하겠다. 무엇보다 나의 삶에 대해 타인이 이래라저래라 하는 말을 굳이 돈까지 내면서 듣고 싶지는 않다.

나도 나이가 더 들면 인간의 길흉화복을 예방하는 일에 관심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렇다는 말이다.




일 년 전인 작년 초였다.

주거래 은행 홈페이지에 로그인했더니 갑자기 새해 이벤트라며 내 한 해 운세를 주르륵 보여주었다. (개인정보 사용 동의 범위에 그런 서비스까지 있을 줄이야)

눈에 딱 들어온 문장이 있었다. 음력 11월에 우리 집안에 새 식구가 들어온다는 말이다.

새 식구가 생긴다는 건 1. 출산(가능성×) 2. 결혼(가능성?) 3. 반려견 동물을 포함한 입양(가능성?) 정도가 있을 터였다.


남편으로 바꿔 넣어봐도 결과가 같았고 큰애, 작은애의 생년월일을 넣고 음력 11월 부분만 찾아봤는데 새 식구가 든다는 내용이 있었다.

프로그램은 모든 사람의 운세 중 11월에 새 식구 언급이 나오는 건가? 아니면 4년 차 남자친구가 있는 작은애가 결혼을 한다는 건가? 하는 말이 안 되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결과적으로 작년에는 9월에 우리 노견이 세상을 떠나 우리 식구 수가 오히려 줄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큰애가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고백했다. 작년 12월(음력 11월)부터 사귀었다나!


만약 큰애 커플이 결혼을 한다면 신한은행이야말로 용한 점집으로 인정해야겠다.


어느 오피스텔 안에 붙여진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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