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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화단의 생태계 보고

by 이명선

며칠 전부터 새소리에 잠을 깬다. 아침 5시가 조금 넘으면 낯선 새소리가 단지 안에 가득하다.

까치 소리를 깍깍, 참새 소리를 짹짹짹으로 표현한다면 이 소리는 '빽'과 '쨕(짝 아니고)'의 중간이다. 빽빽- 빼-백 하는 소리를 높은 스타카토로 내다가 갑자기 옥타브를 낮춰 쨕쨕쨕쨕- 한다. 한창 요란하게 울다가 부리 안으로 쮁!하며 뭉개기도 하고 가끔은 삐익 삐익하며 먼 데 친구를 부르듯 긴 휘파람도 부는 녀석이 누구인지 궁금하다.


이번이 이 집에서 맞는 여섯 번째 여름이다. 원래도 나던 새소리를 이제야 인지한 건지, 올여름 들어 처음 우리 동네에 데뷔한 새가 있는 건지 알 수 없다.

음성 녹화를 했다. 실제보다 새소리가 잘 잡히지 않고 부스럭거리는 내 주변 서슬이 더 크게 들려서 여러 번 다시 했다.

편하게 챗지피티에게 물어보려 녹음한 건데 챗지피티에는 음성 파일이나 영상은 업로드가 안 되었다.


그래서 '멀린'이라는 어플을 깔았다. 멀린은 미국 코넬대학교의 조류학 연구소에서 만든 새 식별 앱이다. 시작 화면에 '소리로 동정하기', '사진으로 동정하기'라는 한글 메뉴가 떴다.

'동정(同定)'이라는 말은 '생물 분류학상의 소속이나 명칭을 바르게 정하다'라는 뜻이라 한다.

앱에 새의 사진이나 녹음 파일을 업로드하거나, 앱이 자동으로 묻는 다섯 가지 질문(발견 장소, 일시, 새의 크기, 새의 깃털 색깔, 행동)에 관찰 정보를 넣으면 새를 찾아준다.

내 위치를 허용하면 이 지역에 산다고 학계에 보고된 새들의 리스트와 소리도 들려준다.

새의 소리는 '노랫소리(song)'와 '울음소리(call)'의 두 가지로 제공된다. 짐작하다시피 노래는 번식기의 구애가 목적이라서 주로 수컷이 내는 소리이고, 울음은 새들의 일상에서 각종 의사소통용으로 쓴다는 차이가 있다. (장범준 노래에서 '날으는 새들도 모두 사랑 노랠 부르는데'라고 했지만 '모두'가 아닌 '수컷'이다!)


나는 녹음한 소리를 넣고 기다렸다.

몇 초의 분석 후 멀린은 '59퍼센트의 확률로 Brown-eared Bulbul'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찾아보니 '직박구리'란다. 직박구리가 어떻게 생겼나 했더니 어디서 본 듯 낯이 좀 익다. 직박구리는 일 년 내내 우리나라와 일본 전역에서 볼 수 있다니 우리는 어디에선가 분명 만난 적이 있는 사이다. 앱에서 직박구리의 울음소리를 재생했다. 내가 찾는 그 소리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멀린 앱 분석 화면




새들은 일찍도 일어난다. 직박구리(로 추정된다는 녀석)가 한창 시끄럽게 울고 나면 여태 참고 있던 까치가 내 차례란 듯이 깍깍거린다. 까치가 깍깍대는 동안에 직박구리는 잠시 멈칫한다.

그러다 금방 갖은 새들의 소리가 경쟁하듯 퍼져서 인간은 더 누워있을 수가 없다. 알람이어야 맘대로 끄든지 하지, 마치 '우리도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빨리 일어나라'고 재촉하는 것 같다.

바로 옆에 왕복 10차선 도로가 있는 아파트라 해도 콘트리트 단지가 품은 작은 숲길에는 부지런하다고 티를 내야만 직성인 새들이 하루를 시작하느라 분주하다.

나는 (코넬대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에 사는 새라면 그래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 잘 알지 않을까 싶어 새소리를 전문으로 올리는 유튜브 채널을 찾아봤다.


- 소리로 맞춰보기, 한국의 새 35종! 당신은 몇 종류의 새를 알고 있습니까?


라며 독자의 호기심과 도전 정신을 자극하는 썸네일을 눌렀다. 새소리를 듣고 새를 맞추는 영상이니까 소리가 먼저 나오고 잠시 생각한 겨를을 준 뒤 소리의 당사자인 새의 사진이 나온다.

비둘기, 까치, 까마귀 말고는 아침에 들은 소리와 비슷한 게 너무 많다. 그르륵하는 소리를 목 안에서 먼저 굴리고 소리를 내뱉는 새와 탁성을 내는 새들은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알겠는데 시작부터 빽! 하고 고음을 내는 애들은, 미안한데 다들 직박구리와 비슷하게 들린다.

그런데 새소리가 뭔가 방울 소리와 비슷하다 생각한 문제의 정답은 역시 방울새였다. 방울새에게 '방울새'라는 이름을 붙인 조상님들의 센스가 귀엽다.



장마가 시작된 첫날, 밤사이 비가 많이 내렸다. 어두운 빗속에서도 새는 열심히 울었다.

쟤네 둥지는 괜찮을까? 바람이 저렇게 나무를 쥐고 흔드는데 새알이나 새끼들은 무사할까? 그래도 자연의 섭리는 위대하니까 라면 냄비만 한 새 둥지라 해도 방수와 배수 시설이 고안돼 있겠지?


지난번에 만난 시아주버님이 새 모이를 주는 재미에 빠졌다고 했다. 아주버님은 아파트 고층에 사는데 발코니에다 새들이 앉아 먹을 수 있게 먹이통을 설치하고 견과류를 놓았다. 새들은 처음 며칠 동안 망만 보고 날아갔다고 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여러 종류의 새들이 와서 먹기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싸우지도 않고 줄을 섰다가 차례차례 먹고 간단다.

그리고 새들도 입맛을 안다며 아주버님은 제일 비싼 마카다미아 가장 먼저 품절된다며 웃었다.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하는 아주버님을 보고 나는 '앗, 이제 늙으셨네'라 생각했는데 아이고, 내가 새 걱정을 하고 있다.


비가 그친 오후에 귀를 기울여 보니 아이들 노는 소리와 오토바이 소음 틈으로 그 새의 소리가 들린다. 새는 늘 부지런히 울고 있었는데 낮에는 다른 것들에 묻혀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길고양이가 먹이사슬의 정점인 줄 알았던 도심의 아파트에서 너구리 가족이 심심찮게 목격된다. 며칠 전에 이웃 아파트에서 너구리가 새끼를 낳았더라는 소문을 들었는데 마침 큰딸이 집 주변에서 너구리 가족을 봤다고 사진을 보내왔다. 나는 예전에 살던 아파트 근처에서 오소리를 몇 번 본 적이 있다.

우리 눈엔 귀여운 그들도 새들에게는 두려운 포식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부디 올여름 장마와 무더위가 거칠지 않기를 바란다. 늦잠을 즐기는 나 같은 사람이나, 야무진 엄마 직박구리와 막 세상에 난 새끼 너구리 같은 집 밖의 동물에게도 수월한 계절이었으면!


큰딸이 찍은 도심의 너구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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