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여름 한정 데스크테리어

에어컨 따라 이사

by 이명선

데스크톱은 원래 큰애 방 창문 아래 있었다. 딸들이 독립하고부터는 방 세 개 중 두 개가 비어 있다. 직장과 연애에 바쁜 방 주인들은 가끔 개와 엄빠를 보러 오고 아주 가끔은 자고 간다.

공간 활용을 위해 집안 여기저기에 서 있던 책장을 큰딸의 방에 몰아 두었다. 그 방에 책이 모이고 자연스레 책상을 놓고 데스크톱을 놓은 것이다.

비어있다시피 한 방일지라도 아직은 딸들의 침대를 치우고 아예 옷방으로 쓴다든지, 공부방으로 쓴다든지 하는 과감한 용도 변경을 못 하겠다.

언젠가 애들이 결혼해서 완전히 새 가족과 새 집을 만들면 그때는 할 수 있을 거다.


본격 더위가 시작된 요즘은 거의 종일 에어컨을 튼다. 낮동안에 집에 반려견과 나, 둘만 있더라도 일 년에 석 달만 일하는 에어컨이니 궁상떨지 않고 시원하게 지내려 한다.

큰애 방에는 에어컨이 없어서 더위가 시작되자 방문을 닫아 두고 잘 들어가지 않게 됐다. 데스크톱을 쓰지 않으니 조금씩 재미를 들이던 AI 영상 만들기도 안 하게 되고 글쓰기 연습도 소홀하게 된다.

그래서 하절기 한정으로 데스크톱을 밖으로 꺼내기로 했다.


주방과 거실이 한 뭉텅이인 2 베이 아파트에서 주방 끝부분 원래 식탁을 두게 마련된 자리가 딱 눈에 들었다. 4인용 테이블이나 아일랜드 식탁이 들어가면 딱 맞을 공간인데 우리는 길쭉한 6인용 식탁을 거실에 두고 이 공간은 비워두고 있었다.

책상과 의자, 데스크톱만 옮기면 간단했을 텐데 나는 갑자기 작은애 방에 있는 테이블을 꺼내서 이것저것 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좋은 말로 '데스크테리어'란 거다.


그런데 활용하려던 테이블의 가로가 180센티나 돼서 내가 딱 생각한 곳에 붙이니 옆으로 15센티쯤 튀어나왔다.

미리 재 볼걸 그랬나. 아니지, 재 본다고 다른 수가 있나. 어차피 여기 밖에는 놓을 데가 없다.


아쉽게도 테이블이 공간보다 길다


왼쪽에는 김치냉장고와 냉장고가 나란히 있는데 세탁실 문틀까지 딱 맞게 놓은 거라서 더 밀 수도 없다. 튀어나온 부분을 그냥 두기엔 영 보기가 싫다.

집안을 둘러보다가 구석에 조용히 서 있는 청소기와 눈이 마주쳤다. 툭 튀어나온 부분을 가리기에 딱 맞는 몸집이었다.

구석에 있던 청소기는 갑자기 메인 무대로 끌려 나와 어딘가 어정쩡해 보였지만 쉽게 닿는 자리에 두고 청소를 잘해야겠다.


딱 가려주는군


오늘의 주인공인 모니터와 데스크톱은 테이블 오른쪽에 뒀고 왼쪽의 남는 공간에는 오래된 커피머신과 그라인더를 놨다. 머신과 그라인더는 지금껏 ㄱ자 싱크대의 구석에 살았는데 거기는 전기주전자에다 가끔은 토스터까지 내려와서 자잘한 애들로 복잡한 구역이었다.

이렇게 놓으니 나름대로 홈카페 존이 됐다. 거기에다 후배가 직접 그린 '머그와 케이크가 있는 식탁'을 함께 세워두어 홈카페의 정체성을 드러내게 했다.


테이블 아래 빈 공간에는 매일 쓰는 반려견의 살림을 수납했다.

이번 이동으로 멀티탭이 하나 필요해서 그것만 로켓배송으로 샀다. 예쁜 테이블크로스 같은 걸 깔면 좋겠지만 커피 가루나 물이 떨어지는 곳이니 맨 책상으로 두는 게 관리에 용이하다.


전부 집에 있는 걸로 꾸밈





시원하게 에어컨을 켠 거실에서 반려견은 낮잠을 자고 나는 오랜만에 웹서핑을 했다.

예전에는 에어컨이 거실에만 있어서 열대야가 있는 여름이면 네 식구가 거실에 센스맘 매트리스 패밀리 사이즈를 깔고 다 같이 잤다. 그때 에어컨은 내가 큰애를 임신했던 1998년에 시어머니가 사 주셨던 구형이었어서 밤새 에어컨을 켜면 은근히 전기요금 걱정을 하곤 했다.

요즘은 에어컨은 인버터 방식인데 전기요금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콤프레셔 작동을 보다 효율적으로 조절해 준다고 한다. 그래서 실내온도를 27도쯤으로 설정하고 오래 써도 전기요금이 그렇게 많이는 나오지 않는다.

희망온도를 1도 높여 28도로 하면 요금은 한결 가벼워진다는데 28도는 에어컨을 틀었다고 생색낼 만큼 시원하지는 않다.


무더위에는 사람이나 동물도 힘들지만 식물도 힘들 수 있다. 우리 집 발코니에 있는 화분들 중 더위에 취약한 것들은 곧 실내에 들여서 피서를 해야 한다.


여름 한정 데스크테리어에 이어 플랜테리어를 예고합니다.


일단 이렇게 마무리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