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달걀을 굴리며
사랑니 발치 수술을 한 지 사흘이 지났다.
사랑니를 뺀 사람들이 흔히들 증언하듯 입을 벌릴 수 없다든지 씹지 못한다든지 하는 불편도 없고 통증도 거의 없지만 한쪽 얼굴에 심한 붓기와 멍이 남았다.
퇴원한 날 오후부터 슬슬 부어오르던 징후는 멍을 내포하고 있었다. 내 사랑니가 수년 동안 잇몸 안에서 낭종을 품고 매복하던 것처럼 말이다.
아침저녁으로 사실은 한 시간에 한 번은 거울을 들여다보고 휴대폰으로 얼굴을 찍어 확대해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전신마취 수술 후에 전체적으로 얼굴이 부었지만 사랑니를 뺀 한쪽 턱이 더 늘어져서 비대칭이 되었다. 거기에 불그스름하면서도 동시에 푸르스름한 멍이 들어서 내가 봐도 너무나 못 생겼다.
첫 48시간은 혈관을 따라 붓기와 멍이 확장되는 것을 막기 위해 냉찜질을 해야 한다. 얼음팩을 바꿔가며 냉찜질을 했다. 이러다가 동상 입는 거 아니냐 싶게 살갗이 무감각해져야 찜질팩을 내려놓았다.
얼음팩은 처음에 대면 차갑지만 몇 초만 흐르면 오히려 뜨겁게 느껴져 델 것 같다.
수술 당일보다 다음날 얼굴이 더 많이 부었다. 아침에 일어나 얼굴을 보고 경악했다.
이미 깊고 얕은 주름이 형성되고 콜라겐 장벽도 무너져 탄력 없는 피부인데 제멋대로 부어서 늘어지니 너무 늙어 보였다. 게다가 나는 약간 네모 얼굴이어서 절망적으로 본다면 센과 치히로의 유바바 같기도 했다.
다행히 멍이 더 퍼지지는 않고 한 곳으로 모였고 옅은 녹색부터 진한 보라색까지 그라데이션 되었다. 그나마 부지런한 냉찜질 덕에 팔자주름 근처에서 방어선을 구축했다.
이튿날 냉찜질을 했다. 그리고 팩트 체크도 하지 않고 내 맘대로 얼굴 리프팅 밴드도 착용했다. 내 얼굴이 이렇게 붓고 쳐진 게 처음이라 이 모습이 고착될 것 같은 두려움이 들어서다.
너무나 우울한 두 번째 날이 지나고 온찜질의 시간이 다가왔다.
멍은 첫 48시간 동안은 방벽 세우기용 냉찜질을 하고 그다음부터는 혈관을 확장해서 혈류가 원활하도록 돕고 멍이 빠르게 스며들게 하기 위해 온찜질을 해야 한다.
이때부터는 달걀 마사지도 효과적인데 달걀 자체가 멍을 없애는 데 좋아서가 아니고 매끈하고 둥근 모양의 도구로 멍을 풀어서 흡수되도록 하는 원리다.
멍든 피부에 달걀을 굴리면 살짝 시큰거린다. 멍이 들지 않은 뺨과 비교해 보면 확실히 다른 통증이 있다.
멍든 부분은 턱과 뺨에 걸쳐있어서 공교롭게도 대차게 뺨을 맞은 사람처럼 보인다.
어제 군밤이 산책을 나갈 때 마스크를 했는데 누군가가 내 마스크 아래 멍 자국을 봤다면, 지금 같이 개산책하는 아저씨에게 맞고 사는 아줌마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런 말을 하니 작은딸이 '사람들은 그냥 무슨 시술한 줄 알 거야'라고 위로한다.
나는 피부과 시술을 해 보지 않아서 시술을 하면 멍이 든다는 일이 바로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넘어지거나 맞아서 든 원초적인 멍만 친근하다.
'사람들은 자기가 아는 만큼 본다'는 사실을 깨달은 일화가 있다.
어릴 적 남편의 사주에 '칼'이 있다고 했단다. 우리 시아버님이 경찰이셨는데 시어머니는 그 말을 듣고 '막내아들도 경찰을 시켜야 하나'라고 생각하셨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칼이라면 정육점 사장이지!'라 생각했다.
그 후에 내가, 공부를 꽤 잘하는 아들을 둔 친구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우리 남편의 사주에는 칼이 있더라고 했더니 그녀는,
- 어머, 그럼 의대에 보냈어야지!
라 하는 것이었다.
'칼'을 쓰는 직업은, 경찰도 정육점 사장도 의사도 된다. 그러나 펜은 칼보다 강하고 사람의 혀는 칼보다 날카롭다는 말처럼 일차원적 금속의 의미를 넘어서 작가, 교사, 언론인, 종교인, 상담사까지 뭐든 호환될 수 있다.
상상력도 아는 만큼 커진다.
길에서 스쳐 지나는 남에게 뺨 맞은 얼굴로 보이든 시술한 얼굴로 보이든 상관없지만 기왕이면 별일 없는 얼굴로 보이는 게 좋다.
평소에 거울 앞에서 얼굴을 위와 옆으로 당기며, 팔자주름이 진하다는 둥 눈밑 지방이 문제라는 둥 하던 것들이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그저 멍이 사라지고 부은 턱이 원래의 네모 모양만 되어도 소원이 없는 나는 하루종일 달걀을 굴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