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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 언니

by 이명선

내 옆을 지나는 엄마와 아이의 대화가 들린 순간, 나는 기억의 서랍 구석에 쏟아 놓고 쓰지 않는 색색 클립들처럼 까맣게 잊고 있던 이름 하나를 끄집어냈다.


-엄마, 어른들은 영어로 된 책도 다 읽을 수 있지?


아이는 엄마에게 천진하게 묻고 있었다.


-언니는 여기 써 있는 거 다 무슨 말인지 알아요?


정숙 언니가 가방에서 꺼내 놓은 연습장을 보고 질문하던 나는 국민학교 6학년이었다.




1980년대에는 중학교에 올라가서야 학교 정규 수업에 영어 과목이 있었다.

최소한 알파벳은 떼고 가야 한다며 중학 입학을 앞둔 우리들은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란 줄 빨간 줄이 그어진 영어 노트를 사서 알파벳 쓰기를 연습했다.

중학교 1학년의 첫 영어교과서는 I am Tom. I am a boy로 시작했다. 비록 중1 때 처음 am, are, is 하고 선생님을 따라 읽으며 be 동사를 배웠지만 그로부터 5년 후에 치르는 대입학력고사의 영어 시험 수준은 지금 수능 영어시험 못지않았다.


나는 6학년 때 이웃에 살던 고등학생 언니에게 영어 과외를 했다. 우리 집에서 몇 집 건너에 살던 반 친구의 큰언니였다.

그 무렵 나는 그 친구를 한창 부러워했다. 예쁘장하고 나와 달리 말수가 적고 몸가짐조차 조용조용한 친구는 글씨도 잘 썼고 늘 어른스러웠다. 무엇보다 나에게는 하나도 없는 '언니'가 두 명이나 있었다.

특히 큰언니인 정숙 언니는 우리 시에서 공부 잘하는 여학생들이 다니던 A 여고 학생이었다. 여느 여자애들처럼 나도 그 학교에 가고 싶었고 어른들도 공부 열심히 해서 고등학교는 꼭 거기로 가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가끔 보는 정숙 언니는 반듯한 하얀 칼라가 달린 교복을 입었는데 단정하게 양갈래로 땋아 내린 머리에는 내 머리처럼 갈갈이 흩날리고 얼굴에 달라붙는 잔머리카락도 없었다. 친구네 언니였지만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대하기가 좀 어려웠고 언니도 우리에게 자상하게 군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언니가 '놀다 가라'라고 말하고 지나칠 때 내 얼굴에 끼치던 서슬까지 이색적으로 느꼈던 건 아마 막 소녀가 되려는 열세 살이 미지의 열여덟 살 소녀에게 가지는 호기심 때문이었을 거다.

언니는 공부를 잘했고 사범대에 진학해서 교사가 될 거라고 했다.


어느 날 엄마가 이제부터 몇 명이 함께 정숙 언니에게 영어 과외를 할 거라고 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 영어를 배울 텐데 뒤떨어지면 안 된다는 취지였다. 나는 정숙 언니에게서 영어를 배운다는 사실에 들떴다. 영어라는 것 역시 미지의 언어였다.

과외 장소는 또 다른 친구네 집(이웃들은 개 많은 집이라 불렀다)이었다. 그래 봤자 우리 집에서 개 많은 집이나 정숙 언니네 집까지는 7,80미터 반경 안이었다.


나는 첫 수업에서 정숙 언니에게 그렇게 물었다. 언니가 꺼내 놓은 스프링 연습장 표지에 단풍잎이 우거진 숲 그림이 있고 그 위에 손바닥 만한 크기로 영어들이 주르륵 쓰여 있었다.


가을풍경 그림에 영문 에세이가 적힌 표지를 가진 스프링 노트가 원목 책상 위에 표지가 보이게 덮여져 자연스럽게 놓여있다..jpg 이 정도로 좋은 노트는 아니었다만 - AI이미지


- 언니는 여기 써 있는 거 다 알아요?


언니는 웃으면서, 아는 것도 있고 모르는 것도 있다고 말했다. 나는 조금 실망했던 것 같다.

어쩌다가 고등학생인 정숙 언니에게서 과외 수업을 받게 된 건지, 우리들은 얼마나 오래 수업을 했던 건지, 엄마가 수업료로 얼마를 낸 건지는 모른다.

훗날 나의 중학교 1학년 담임이 깡마른 남자 영어 선생님이었는데 엄마는 그 점도 매우 마음에 들어 했고, 엄마의 바람대로 나는 (영어) 공부를 좋아하고 곧잘 하는 학생이 되었다.

중학교에 올라가고 얼마 후에 우리 집은 다른 동네로 이사했다.




내가 고등학교 선택을 고민할 무렵에는 우리 시에 최초의 남녀공학 고등학교가 새로 생겼고 나는 정숙 언니가 다니던 역사 깊은 여고 대신 신설 학교로 진학했다.

정숙 언니의 막내 동생이었던 친구와 같은 고등학교에서 다시 만났지만 예전처럼 지내지 못했다. 내가 이사를 하고 각자 다른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멀어졌고 고등학생이 되어 조우한 우리는 어색했다. 그 애의 어른스러운 표정은 냉정하게 보였다.


몇 년 전에 다른 친구에게서 정숙 언니의 근황을 들은 것은 뜻밖이었다. 언니는 최근까지 초등학교 교장으로 있다가 정년 퇴직했다고 한다. 역시 언니는 꿈을 이뤘구나.

'언니가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고 교장 선생님으로 퇴직해서 잘 살고 있다'는 한 개의 이어진문장은 우리를 통과해서 멀리 흘러간 40년의 세월을 압축해서 표현한다.

정숙 언니는 자기가 고등학생 때 한 무리의 동네 국민학교 여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던 사실을 까맣게 잊었을 수도 있고, 나처럼 우연한 계기로 한 번쯤은 떠올렸을 수도 있다.


정숙 언니와는 달리 나는 고등학생 때 되고 싶었던 사람이 되지 못했다. 나는 몇 번씩 꿈이 바뀌었고 수많은 장래희망 중 한 번도 되고 싶다고 써 본 적이 없는 '평범한 주부'로 살고 있다.


정숙 언니를 계기로 잊고 살던 추억의 이름들을 휘적휘적 건져올려 본다. 잠이 쉬이 들지 않는 중년의 밤에 천장을 보고 누워서 하기에 딱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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