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5. 신랄한 연대

by 이명선

다섯 번째 수업은 개론반 동기들이 쓴 네 장 줄거리의 첫 합평 시간이었다. 한 주에 대여섯 명 정도로 순번을 정했고 미리 네이버카페에 글을 올리면 각자 읽어보고 수업 시간에 선생님과 함께 의견을 나누는 방식이다.

나도 1주 차 발표 예정 동기들의 글을 출력해서 읽고 '좋았던 점'과 '대안이 있는 단점'을 정리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다른 사람의 글에 대한 감상을 말할 때는 하나라도 좋은 점을 먼저 말하고 그다음에 단점으로 느낀 점을 말하되 반드시 대안을 제시하라고 하셨다. 대안 없는 지적질은 아무 쓸데없다고.



거절당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자

머리를 쥐어짜며 힘들게 얽어낸 글을 내보이고 다른 사람의 평가를 받는 일은 두렵다. 마찬가지로 그런 수고를 담은 글인 것을 아니까 내가 뭐라고 첨언을 하는 것도 미안하다. 그러나 합평은 글쓴이가 미처 보지 못한 구멍이나 못생긴 부분을 다른 사람으로 인해 발견하게 되고 혼자서는 얻을 수 없는 힌트를 건진다는 장점이 크다.


합평은 다 함께 한 작품을 평가하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작업이다. 당연히 작자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글에 대한 평가이며 건설적인 의견을 모으고 나누는 기회이다. 모든 피드백을 다 반영할 필요도 없다. 나와 다른 생각을 확인하고 선별해서 나만의 방식으로 반영하면 된다.

나도 글쓰기 모임은 해 본 적이 없어서 합평이 실제로 어떤 기분을 주는지 몰랐다. 내가 쓴 글이 아닌데도 다른 사람들의 신랄한 평가를 들으려니 얼굴이 붉어지는 듯했다. 다다음주에 나는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내 안에서 그런 고뇌가 한창일 때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 누군가에게 거절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거절을 불쾌하게 생각하지 말자!


선생님은 우리가 보고 있던 작품의 주인공의 태도에 대해 말한 것이었지만 나에게 하는 말처럼 정신이 들었다. 내 글을 누군가가 읽고 같이 고민해서 의견을 주는 건 고마운 일이지 두렵거나 기분 상할 일이 아니다!



작품이 아닌 작가를 뽑는다

작가 지망생 모두의 목표라 할 공모전 당선은 끝이 아니고 시작이다. 당선의 의미는, 이제 드라마를 쓰는 자격을 얻는 운전면허증 같은 거라고 하셨다. 공모전은 작품을 찾는 것이 아니고 작가를 찾으려고 펼치는 판이라는 말이다. 단막극 몇 편을 건지려고 공모전을 여는 것이 아니고 시리즈물을 쓸 수 있는 시각과 능력을 가진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마련하는 것이다.

그 힘든 공모전 당선 후 사라지는 작가들이 생각보다 많다고 한다.

현재로서는 성급하게 작품 한두 개를 만들 생각 대신 누구도 흔들 수 없는 내 실력을 키우는 것이 먼저라고 했다. 이 말은 정말 형광노랑펜으로 하이라이트 칠을 하고 별을 그릴 만했다.

지식과 고민의 인풋을 채우고 쓰는 연습을 하면서 항상 이야깃거리나 캐릭터를 수집해 놓는 일이 지금 해야 할 일이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지정 주제로만 네 장 줄거리를 쓰라고 하셨다. 자유 주제로 대본을 써 보라고 한 건 마치 음표와 음계를 모르는 사람에게 작곡을 시킨 거나 같은 노릇이었다고 말이다. 나도 '장녀와 엄마의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었는데 그건 접고 고전소설 중 하나를 골라 각색해야 한다.


<해님 달님>의 남매를 사교육에 방치된 아이들로 할까? <우렁각시>의 우렁이를 미모의 가사도우미로 할까?

정말이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괴로움'이 이런 거구나 싶은 게, 겨우 드라마 개론반 수업 5주 차인데 매일 관자놀이에 두통이 연하게 베이스로 깔려있다.

내가 떠올리는 것은 죄다 너무 뻔한 이야기거나 너무 괴상한 이야기 같고 드라마꺼리가 안 되는 시답잖은 갈등 아니면 오바스러운 사건 같아서, 어떤 때 우르르 달리듯 써졌다가 뒷걸음질로 다시 지워지는 문장들을 따라 의욕도 왔다 갔다 한다. 드라마 수업을 시작한 후로 머릿속이 뒤죽박죽 쓰레기집 같다.

나는 과연 두 주 후에 어떤 이야기를 써낼까?

나의 신랄한 연대로부터 얼마나 두드려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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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자리에 앉았던 웹소설 작가님이 준 초코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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