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축 2 베이의 장점

by 이명선

오늘 마침 새해 모임을 하던 중에 여섯 명 중 나만 구축 2 베이에 살고 있어서 아파트 구조에 대한 이야기를 한창 나누었다.


우리 동네에는 2 베이 구조가 흔하다.

2 베이는 아파트의 전면 발코니에 거실과 방 하나가 접한 형태인데 안방과 거실이 강조된 모습이라고 보면 쉽다. 통상적으로 아파트의 분양부터 입주까지 2년 반 정도가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2000년대 극초반까지 세워진 아파트가 마지막 주자이다.

2 베이는 거실과 주방, 각 방들의 위치가 뚜렷이 분리되어 공간 활용의 여지가 적다. 그래서 올수리를 해도 구조 변경 같이 돈 쓰고 힘 준 티가 나는 인테리어가 힘들다. 앞뒤 발코니를 확장하느냐 안 하느냐 정도로밖에는 다시 태어날 수 없다고 할까.


내가 오래 살았던 복도식 2 베이는 거실과 주방이 하나의 통으로 이어지고 그 경계는 식탁으로 구분되었다.

자연스럽게, 집에 들어오는 사람과 거실에 있는 사람에게 주방이 훤히 드러나는 구조였는데 좋은 점도 나쁜 점도 있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내가 주방에서 일을 할 때도 거실에서 노는 아이들을 한눈에 볼 수 있어서 좋았지만, 거실이 아무리 깨끗해도 주방 정리가 안 되면 집이 어질러져 보이는 단점이 있었다.


5년째 살고 있는 계단식 2 베이는 폐쇄형 주방이다.

더 큰 평형의 구조는 다르지만 25평형이나 32평형 같은 국평의 2 베이는 부엌이 깊은 안쪽에 들어앉고 좁은 창문에 의지해서 환기와 채광을 한다. 다용도실에는 큰 발코니창이 있지만 주방과의 사이에 도어가 있다.

바로 그 '숨은 주방'에 장점이 있다. '엄마는 저기서 음식이나 하셈' 이라 말하는 것 같은 주방에 무슨 장점이 있을까 싶지만 실제로 2 베이에서 주부로 살다 보면 느끼는 좋은 점이 있다.




우리는 주방 창문 아래에 ⌐자 싱크대가 있고 그 앞에 냉장고와 김치냉장고를 세웠다. 덩치가 큰 냉장고의 자리는 거기밖에 없다. 그랬더니 싱크대와 냉장고 사이에 숨은 공간이 만들어졌다.

공간은 붙어 서면 세 사람이 몸을 숨길 만하고 꽤 비밀스러워서 '왕의 수라에 몰래 독을 탈' 수도 있을 같다. 누가 일부러 와서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옷도 갈아입을 수 있다.

우리 집 구조에서는 손님이 주방을 구경하려면 최소한 식탁 자리까지 와서 몸을 기울이거나 까치발을 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니 주인의 눈을 피해서는 할 수 없다.

숨은 주방은 뭔가 늘어놓고 미처 치우지 않은 상태라 해도 눈에 띄지 않는다. 거실만 멀끔하면 꽤 깨끗한 집으로 보인다.


당당히 존재를 드러내는 주방을 품은 3 베이나 4 베이와 다른 점이다.

오픈형 주방은 탁 트여서 넓고 시원한 느낌을 주는 만큼 훤히 바라다 보이기 때문에 주방 주변까지 싹 정리가 되어야 집이 깔끔해 보인다.

지금은 대면형 오픈형 키친이 트렌드다. 개방감이나 건축 효율의 측면도 있지만 가족 구성원 누구든지 주방 업무에 평등하게 참여하는 문화의 영향도 있다고 본다.


KakaoTalk_20251231_095425941.jpg 거실에서 본 2 베이 주방의 예-친구네 집



예전에는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친구네 집이나 이웃집에 자주 드나들었다. 그래서 우리 애들이 어릴 때는 집에서 넋 놓고 있다가 10분 후에 누가 놀러 온다는 소식을 듣는 일도 흔했다.

그럴 때마다 초등학생 두 딸과 나는 거실에 널브러진 것들 중 덩치 큰 것은 안방(안방은 손님이 들어가 보는 일이 거의 없다)으로 빠르게 옮기고 자잘한 것들은 거실장의 서랍에 일단 집어넣었는데 우리는 그걸 '쑤셔 넣기 수납'이라고 부르며 재밌어했다.

지금은 누가 갑자기 올 일도 없고 우리 부부와 과묵한 개 한 마리만 살기 때문에 집안을 늘어놓을 일도 없어서 쑤셔 넣기 수납 기술을 사용하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따로 사는 애들까지 네 식구가 모이는 날이면 우리 부부는 다 같이 먹는 한 끼를 준비하느라 부산하다.

6인용 식탁을 주방에 마련된 식탁 위치가 아닌 거실로 내놓은 덕에 주방과 식탁의 거리는 더 멀어졌다.

나의 해묵은 2 베이 주방은 미니 잔칫상을 차리느라 난리를 쳐 둔 것들을 가만히 가려주며, 가족의 시간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아, 그렇다고 지상에는 배달 오토바이조차 다닐 수 없고 경로당을 '골든 라운지'라고 하는 신축 아파트가 부럽지 않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