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간 이어진 네 장 줄거리 합평이 끝났다.
다음 수업부터 각자 쓴 단막극 대본을 제출하고 대본 합평을 시작한다. 나는 원래 순서보다 한 주 당겨 첫 번째 조가 되었다.
조 편성에도 사연이 있다.
첫 수업 때 결성된 우리 조 인원이 적어서 줄거리부터 시작된 합평을 위해 다른 조와 합쳤다. 그렇게 되니 이번에는 일곱 명이 되었다. 지난번 네 장 줄거리 합평 때 겪어보니 일곱 명은 정해진 수업 시간 중에 충분한 피드백을 받기가 빠듯했다.
게다가 대본은 페이지만 해도 예닐곱 배는 많다. 마침 첫 조의 인원이 넷 뿐이라 여유가 있다고 지원자를 받는다길래 손을 들었다. 다른 동기들에 비해 물리적 시간이 많은 내가 조금만 바짝 준비하면 우리 조도 숨통이 트이고 나 역시 7명보다는 5명이 있는 조에서 선생님 의견을 더 들을 수 있으니 서로 좋다는 판단이었다.
며칠 전 나는 첫 번째 단막극 대본 25장의 초고를 완성했다.
그러니까 내 눈앞에 놓여 있던 찰흙 덩어리를 주물러서 이게 사람 모양인지 스펀지밥에 나오는 집게리아의 뚱이인지 알아볼 수는 없지만, 퉁퉁한 별 모양 비슷하게 만들어 세우기는 했다는 뜻이다.
합평에 제출하라는 대본의 길이가 미니멈 25장이었고 그 커트라인을 겨우겨우 맞췄다.
대본을 쓰기 직전에 인터넷에서 우연히 본 문장이 있다.
- 끝까지 쓴 대본은 수정할 수 있지만 쓰다 만 대본은 누구도 수정할 수 없다
그 말을 염두에 두고 무조건, 밤을 새워서라도 25장 이상을 써서 마감 내에 제출을 하자! 다짐했다.
대본을 pdf파일로 바꿔 놓고 원래 순서인 동기들이 먼저 업로드하기를 기다렸다. 업로드 순서가 곧 합평 순서가 되고, 순서가 먼저일수록 피드백을 받기가 여유롭다. 첫 조에 나중에 낀 내가 순서를 홀딱 채가는 건 실례 같아서 나는 마지막에 내려고 했다.
그러나 자정까지가 마감인데 밤 열 시가 넘도록 한 명이 대본을 올리지 않았다. 누가 언제 숙제를 낼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서 나는 조금 더 기다려 보다가 네 번째 순서로 제출하고 데스크탑을 껐다.
다음날 아침에 보니 남아 있던 동기는 밤 11시 30분에 업로드를 했다. 좀만 더 기다려 볼 걸 하는 후회는 하지 않아도 되었다.
선생님은 시퀀스에 대해 알고 쓰느냐 모르고 쓰느냐가 큰 차이를 보인다고 했다.
씬은 하나의 장소, 하나의 시간에서 생기는 일이고 시퀀스는 하나의 목표 아래 묶인 씬들의 단위이다. 씬 한 개 이상이 모여서 시퀀스가 된다. 하나의 시퀀스는 핵심을 가진다.
나는 크게 다섯 개의 시퀀스를 산정하고 썼는데 다 쓴 초고에서는 나에게도 윤곽이 잘 보이지 않는다.
수정 작업은 초고 쓰기보다 몇 배로 공을 들여야 한다니까 남은 과제들은 미래의 나에게 맡기기로 한다.
동기들이 올려준 피드백 내용을 대본 앞에 잘 적어두었다. 내가 미처 떠올리지 못한 경로와 발견하지 못하고 넘어간 '빠진 코'를 동기들에게서 거저로 받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