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어렸다
첫 직장은 L 사였다. 이공계 전공자로서 얼마간의 신입 사원 교육을 받고는 자연스럽게 지방 소재 한 공장의 '생산기술팀'에 발령받았다. 이 팀의 임무는 증설 중인 공장 셋업이었다. 채 지어져 있지도 않은 건물에 먼지 가득한 사무실이 우리 팀 자리였다. 건설 현장이니 당연히 안전모에 안전화를 신고 출퇴근했고 끼니는 함바 식당에서 해결했다. 공장에 근무하는 직원만 얻어 입을 수 있다는 공장 점퍼는 덤이었다.
내가 속한 팀의 팀장은 20년 정도의 경력이 있는 '부장님'이었고, 파트장은 10년 차 남짓의 과장님, 그리고 내 사수는 입사 3년 차 H 기사님이었다. 아직 직급이 사원인 직원들을 기사라 불렀는데, 덕분에 나도 깜 기사로 불렸다. 그 당시 부장님은 함부로 접근 조차 할 수 없는 존재였던 거로 기억한다. 말을 제대로 섞어 본건 한두 번에 불과했다. 약간은 냉소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분으로 강한 아우라가 있는 분이었다. 내가 속한 파트를 맡는 과장님은 그래도 조금은 더 자주 얼굴을 보는 존재였는데, 뭐가 그렇게 바쁜지 자리에 잘 계시지 않았다. 가끔 얼굴을 보면 '깜 기사~ 밥은 먹었나?' 하는 말씀을 하실 뿐, 5분 넘게 대화를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주로 매일 마주치는 사람은 H 기사님으로 2달 정도는 거의 붙어 다니며 일을 배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H 기사님과는 대화가 잘 통했다. 어떻게 보면 내 눈높이에 맞추어 이야기를 했던 게 아닌 가 싶을 정도다. 게다가 일에 대한 열정도 컸다. 너무 회사가 가고 싶어 일요일에 잠을 제대로 못 주무실 정도라 했으니, 그 열정의 크기를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일이 너무 재미있고, 회사를 너무 가고 싶어 할 수 있을까?
이 분과 2~3달 정도 일했을까, H 기사님은 설비 증설에 전념하기 위해 다른 업무로 빠졌고, 나는 나와 동갑인, 그러나 입사는 조금 빠른 L 기사 밑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L 기사는 나이는 같지만 알고 보니 같은 대학 출신, 그러나 재수를 해서 나보다는 학번은 아래였다. 어쩌다 보니 다른 부서에 있던 동갑내기 선배 기사와 함께 말을 트고 지내는 친구가 되었다. 점심도 늘 같이 먹고, 담배도 같이 피우고, 커피도 같이 마시는 사이가 됐고, 피차 외지 생활을 하는 터라 자주 저녁도 같이 먹는 사이가 됐다.
너무 둘이 붙어 다녔는지, 분명 L 기사가 선임인데 나와 친구로 지내는 게 보기 안 좋았는지 새로 부임한 팀장은 나를 다른 파트로 발령을 내버렸다. 이제 일을 조금 배웠으니 설비 증설이 필요한 한 파트를 맡아서 해보라는 거였다. 그런데 경력 6개월에 불과한 나를 팀장은 C 공장으로 홀로 파견을 보냈다. C 공장에서 같은 일을 맡고 있는 선배 기사를 통해 일을 배우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선배 기사는 나를 신경 쓰지 않았고, 내가 속한 팀의 팀장이나 파트장 역시 멀리 떨어져 있는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일하는 것도 일하지 않는 상태로 몇 달을 보내고 나니 내 의지와 관계없이 내가 진행하려 했던 설비 증설이 물 건너갔다. 이제는 어떤 일이 내게 떨어질까 궁금해하며 H 기사님과 같이 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파트장에게 전화가 왔다. '서울 근무 기회가 있는데 해 보겠는가?'
이쯤에서 공장에서 근무한 1년 남짓한 시간을 쭉 돌이켜 보면, 그 당시 내가 속한 사업부가 막 성장하는 곳이라 그랬는지는 몰라도, 인사 관리 측면에서는 체계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거 같다. 하기사, 대졸 직원의 80% 이상이 대리 이하였고, 그나마 초창기에 사업부를 세팅하던 사람들 모두 타 사업부에서 전보를 온 사람들이라 그랬을지 모른다. 누구를 챙겨주고 케어할 여유가 없이 모두가 다 자기 살기 바쁜 사업부였던 셈이다.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건, 내 첫 사수였던 H 기사님과 더 일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분과 함께 1년이라도 같이 일할 수 있었더라면 내가 회사를 바라보는 시각과 자세가 많이 달라졌을 것 같다. 경력 3년 차에 불과한, 대리도 아니고 과장도 아닌 사원인 H기사가 수십억 짜리 설비를 검증하고 시험 생산까지 하는 일을 해낸 걸,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 H 기사는 사기 캐릭터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 분 옆에서 일을 더 배우지 못한 게 그래서 좀 많이 아쉽다. 너무 당연히 이 분은 특진 몇 번을 거듭하여 몇 년 전 40대 중반 나이에 임원이 되었다.
또 한 가지, 내가 하고 싶은 걸 이야기 못한 것도 아쉽다. 20년 전 대기업에서 사원이 본인이 원하는 걸 이야기한다는 건 쉬운 일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내가 속한 사업부는 막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일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은 꽤 유연한 조직이었다. 팀장이나 파트장이 아닌 사원급은 사실 어느 자리에 가도 이상하지 않다. 내가 직무를 바꿔 영업을 하겠다고 했다면 문제가 되었을지 몰라도 생산 관련 업무 중 어느 한쪽을 찍어 보내달라고 하는 게 그리 무리한 요구는 아니었을 공산이 크다. 그런 걸 보면 그때는 참 소심했고 어렸다 싶다. 내가 원하는 걸 어떻게 표현할지도 몰랐고, 회사가 어떻게 받아들여줄지 가늠하지 못했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 중 두 명, H 기사와 L 기사는 아직도 연락하는 사이로 남았다. 그 간 몇 번 보지는 못했지만, 첫 직장, 첫 발령지에서 시간을 같이 보냈던 사람들이라 짧은 시간 함께 했음에도 아직 애정이 깊다. 아마, 그때 내가 뭘 원하는지 뭘 잘하는지 지금처럼 잘 알았다면, 이 두 분과 더 좋은 시간을 보냈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내가 더 좋은 사람일 때, 그리고 더 유능한 사람일 때 더 나은 인연, 더 좋은 인연을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