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의 철학

회사는 남이다

by 정대표

요즘 기업들 분위기가 좋지는 않은가 보다. 한국 대기업인 한 지인의 회사에서 명예퇴직 신청을 받았고, 전 직원의 30% 정도가 신청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한 팀에서 팀원의 95%가 나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금 놀랐다. 그 이유가 다소 신선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서로 눈치를 보는 듯했다 한다. 약간의 시간이 흘러 직급상 허리쯤에 있는 직원 여럿이 명예퇴직 신청을 하자, 처음에는 나갈 생각이 없었던 그들의 상급자들 역시 아랫사람들을 지키지 못해 체면이 서지 않는다며 명예퇴직 신청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모습을 본 젊은 직원은 윗사람들이 우르르 나가는데 혼자 남아 일할 자신이 없어서 또 명예퇴직을 신청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선배가 나가니까, 후배가 나가니까 한 집단이 우르르 명예퇴직을 신청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분들의 결정이고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나라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접근했을 것 같다. 아랫사람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상급자 마인드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명예퇴직 신청을 받는 건 코로나로 어려워진 경영환경 때문인데 누가 누구를 책임진다는 말인가? 더욱이 회사 동료는 친구가 아니다. 선배가 아니다. 그리고 후배도 아니다. 간혹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야 친구가 되기도 하고 선배나 후배가 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회사는 내가 일을 하고 그 대가로 돈을 받아가는 곳이다. ‘우리가 남이가!’ 혹은 ‘주인처럼 일하자’ 말로 직원을 옭아매는 회사도 있지만, 우리는 당연히 남이며 주주가 아닌 이상 직원은 회사의 주인이 아니다. 주인처럼 일하게 하려거든 그만한 대접을 하든가 아니면 유럽의 몇몇 기업처럼 직원 대표를 경영에 참여시킬 일이다.


명예퇴직은 경험한 적은 없지만, 나 역시 내 의사와 관계없이 회사를 두 번이나 떠났다. 한 번은 내가 속한 사업부가 사모펀드에 팔렸고 또 한 번은 내가 맡아하고 있는 사업을 한국에서 철수했다. 회사는 직원의 사정을 봐가며 비즈니스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지 않는다. 내 의견을 물어보고 사업부 매각이나 사업부의 한국 철수 같은 걸 결정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나 역시 회사의 의사나 의도와 관계없이 내 이익에 부합한 결정을 해야 한다. (그렇다고 횡령과 같은 범죄를 저지르라는 이야기는 당연히 아니다) 따라서 지금 내가 현 직장에서 명예퇴직 신청을 받는다면, 철저히 내 상황만을 생각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구차해 보일지 몰라도 어떤 이유를 대서라도 회사에 남을 것이다.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향후 회사가 나아질 가능성도 있으며, 시간이 지나도 회사가 나아지지 않는다면 그때 가서 이직을 하면 될 일이다.


회사에 애정을 가지는 분도 많다. 그리고 그런 애정을 가지고 또 열정을 가지고 회사를 위해서 일하는 것 역시 존중받을 일이다. 나 역시 싱가포르 지사로 옮겨 오면서 조금이지만 회사에 애정이 생겼다. 가능하면 내 발로 회사를 떠나지는 않을 생각이다. 하지만, 내게 더 좋은 기회가 다른 회사에 생긴다면 언제든 고려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들이는 노력에 비해 현재 혹은 미래의 보상이 현격히 낮다면, 언제든 이직 준비를 할 것이다.


나의 직장 생활 철학은 단순하다. 첫째, 회사는 내가 돈을 버는 곳이다. 내가 돈을 받는 만큼, 가능하면 받는 돈보다 조금 더 일하려 한다. 그러면 회사도 이익이고 장기적으로는 나도 이익이다. 가성비 좋은 직원이 될 것이고 회사 안팎에서 찾는 인재가 될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둘째, 회사와 회사 동료는 남이다. 서로의 이익이 맞을 때만 좋게 좋게 지낼 수 있다. 따라서 회사 상황이나 사정 혹은 직장 동료의 상황이나 사정에 맞춰 퇴직 문제처럼 내게 큰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결정할 이유가 없다. 마지막으로, 회사는 떠나면 끝이다. 마음에 맞는 사람끼리 친구나 선후배로 남을 수도 있지만, 회사는 이력서에 한 줄 남는 게 전부다. 회사 사정 봐줄 필요 없다. 내가 없어도 혹은 내가 껌딱지처럼 회사에 붙어 있어도 회사는 굴러간다.


자기 의사에 따라 퇴직을 결정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다른 사람 거취 여부에 맞춰 내 거취를 결정한 건 분명 아쉬운 대목이다. 하지만 이왕 퇴직을 결정했으니 더 나은 직장 혹은 더 나은 기회를 찾을 거라 믿고 또 퇴직하는 분들을 응원한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전화위복이 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퇴직 결정이 잘못된 것이라 하더라도 후회할 일은 아니라 생각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외국계 회사를 가야 할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