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국부터 선진국까지
나는 1970~1979년 사이에 태어났다. 즉, 대한민국이 후진국일 때 태어난 거의 마지막 세대라는 뜻이다. 1970년 일본의 1인당 국민 소득이 2000달러 정도일 때 우리나라는 300달러가 되지 못했고, 1980년 일본이 1만 달러에 육박할 때 우리나라는 2000달러 가까이 되어 중진국 초입에 발을 걸쳤다. 그러던 국민소득이 1990년에는 7000달러로 확실한 중진국이 되었고, 2000년에는 12000달러, 2010년에는 22000달러, 그리고 2020년에는 3만 달러가 훌쩍 넘어 선진국이 됐다. 물론 6.25 전쟁을 직접 겪은 우리 부모님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생생한 전쟁 경험을 부모한테 들을 수 있었던 세대였기에 어른들로부터 ‘고생해봐야 정신 차리지!’라고 야단이라도 맞으면 번쩍 정신이 들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가 은행에 근무하셨기 때문에 분명 평균적으로 보아 어려운 집안 사정이 아니었음에도 어린 시절 단칸방에 살았고, 밤마다 연탄불을 갈아 넣던 부모님 모습이 기억에 있다. 게다가 대도시에 살았음에도 집에서 온수를 쓸 수 있었던 건 초등학교 2학년부터였다. 전반적인 위생 수준도 썩 좋지는 않아서 초등학교 3~4학년 무렵 아이들 사이에 머리카락에 기생하는 벌레인 이가 돌아서 이의 알인 석혜를 간격이 무척 촘촘한 빚으로 머리맡에 신문지를 깔고 머리를 빗고는 했다. 하얀 석혜가 우수수 떨어지는 걸 보면 묘하게 쾌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즉, 먹고는 살았지만, 잘 사는 것과는 거리가 먼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어렴풋이 박정희 대통령 서거 당시 상황 역시 기억한다. 텔레비전에서 하루 종일 조문 방송을 할 뿐 내가 좋아하던 만화 영화는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흑백텔레비전과 컬러텔레비전 전환 시점 역시 기억하는데, 그때 바꾼 컬러텔레비전, 채널을 시계 바퀴처럼 돌려야 하는 리모컨이 없는 걸 10년도 넘게 사용했다. 냉전이 극심했던 1984년, 소위 자유 세계 100개 나라만이 참여한 반쪽짜리 LA올림픽 역시 기억난다. 칼 루이스라는 미국 육상 선수가 4관왕을 했다. 4년 뒤, 냉전의 기운이 점차 옅여 지자 다음 올림픽에는 공산 국가 역시 참여했다. 그게 바로 서울 올림픽이다. 1988년 대한민국은 무려 6개나 금메달을 땄다. 그에 앞서 1987년 직선제를 요구하는 대학생과 시민들의 항쟁 역시 내 기억 속에 있다. 엄청난 최루탄 냄새가 산을 넘어 우리 동네까지 날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항쟁의 참 의미는 대학생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또 나는 전두환/노태우 대통령 시절 학창 시절을 보낸지라 반공교육도 철저히 받았다. 북한 공산당은 늑대로 비유되는 만화 영화를 보면서 자랐고, 초등학교 방학 숙제에는 늘 반공 도서를 읽고 써내는 ‘반공독후감’이 들어있었다. 북한에서 날아오는 전단(삐라)을 주우러 다니기도 했고, 반공표어나 반공 포스터 경진대회는 일상이었다. 고등학교 때에는 제식 훈련이나 총검술을 배우는 교련 수업도 있었다. 대학에 가서도 심심치 않게 최루탄 냄새를 맡기도 했다. 데모에 참여한 적은 없으나, 간혹 데모에 참가하는 친구가 있었고, 데모가 일상이었던 시대를 겪은 선배들이 아직 대학에 남아있었다.
초등학교(그 당시에는 국민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강남 8 학군이 뜨기 시작했다. 5학년쯤 되자 많은 친구들이 강남으로 이사를 가기 시작했다. 나도 어머니를 졸라 중학교 진학과 동시에 강남으로 이사 갔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전세로 강남에 갔다. 무리해서 온 걸 알기 때문에 공부를 꽤 열심히 했다. 학교를 마치고 오면 곧바로 잠을 자 저녁 무렵에 일어나 공부를 하고, 새벽에 잠자리에 다시 들었다. 시험이 끝나는 날이 되어야 친구들과 롯데월드나 씨네하우스에 놀러 갈 뿐 학교와 집을 오가는 단조로운 생활을 이어갔다. 덕분에 성적은 좋았다. 이 때문에 내 기억 속의 중학교는 공부, 공부, 공부였다. 부모님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다.
돌이켜 보면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1970~90년대는 현대사에서 격동의 시기다. 1980년대에 군사독재의 종말을 보나 했으나 다시 군인 출신이 연이어 정권을 잡았다. 김영삼 대통령,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이 되어서야 소위 민주화가 이루어졌다. 경제적으로는 아주 못살던 시절에 태어나 중진국을 넘어 선진국이 되는 걸 지켜봤다. 우리나라에서 개최한 올림픽도 지켜봤다. 우리나라 국력이 여러 측면에서 나날이 커져가는 걸 지켜보았던 셈이다. 이렇게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된 것도 민주국가가 된 것도 다 내 윗세대에서 이룬 일이다. 즉 나는 그 모든 걸 물려받아 그 혜택만을 누리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본인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기 바라는 부모님 덕에 좋은 교육도 받았다.
나는 그래서 참 감사하다. 일종의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는 셈인데, 시대를 잘 만났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나보다 더 나은 가정 형편이어서 그 덕을 많이 본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겠지만, 그래도 나와 같은 세대라면 우리 어릴 적, 소위 라테보다는 지금이 더 낫다는 데는 모두 동의할 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