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으로 승진하기

임원이 되고 싶다면 임원처럼 일해라

by 정대표

20년 가까이 직장 생활하면서 직급은 사원, 대리, 과장, 차장, 부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사까지 6개를 거쳐왔지만, 실제 승진과 타이틀이 동시에 올라 간 건 과장 승진 때가 유일하다. D사로 이직하면서 대리가 되었기에 승진이 없었고, 차장, 부장, 이사 모두 Job Band가 먼저 오르고 직급은 나중에 올랐기 때문에 승진 기분이 나지는 않았다. 내가 다녔던 외국계 회사 모두, Job Band 혹은 Pay Grade로 불리는 직급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는 Job Band나 Pay Grade가 높을수록 소위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고, 부장/이사와 같은 한국식 직급은 Job Band나 Pay Grade와 대략적으로 매칭을 해두고, 상황에 따라 혹은 필요에 따라 부여하는 식이다. 따라서 나 같은 경우 차장에서 부장으로 한국 직급이 바뀔 때, 혹은 부장 승진 때 내가 속했던 Pay Grade는 이미 차~부장에 해당하기 때문에 승진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그럼에도 한국 정서 상 ‘부장’이라는 단어가 주는 상징성 때문인지 동료들은 부장 승진을 많이 축하해줬다.


예전에도 밝혔듯이, 나는 앞으로 더 승진을 위해 노력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기로에 서있다. 내가 10년만 먼저 태어난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사급인 지금 상무를 목표로 일에 매진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임원만 되면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확률이 무척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친척 어른의 경우 부장 때까지는 그야말로 전셋집을 전전하시다 임원을 달고 얼마 있지 않아 강남에 집을 장만하셨고, 대기업 부사장까지 승진하셔서 임원만 십수 년을 하신 덕에 노후 걱정은 없는 재산을 모으셨다고 들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어떤가? 대기업의 경우 임원이 되기 위해 치러야 할 치열한 경쟁을 둘째 치고, 급변하는 경제 환경 덕에 실력만 가지고 실적을 장담할 수는 없기에 임원이 임시직원의 줄임말이란 이야기가 농담이 아니게 되었다. 임원이 되는 영광을 누리더라도 몇 년 못가 잘리기라도 하면 직장 생활을 40대 후반 혹은 50대 초반에 마무리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따라서 꼭 임원을 위해 노력하기보다 부장급으로 은퇴하는 것도 나쁜 생각은 아닌 시대가 됐다.


언제든 짐 쌀 준비를 해야 하는 대기업의 임원과 달리 외국계 기업의 경우 임원급이라도 정년퇴직하는 경우도 꽤 많다. 대기업 임원은 정직원에서 계약직으로 신분이 전환되지만, 외국계 기업의 경우 정직원과 다를 게 없는 지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임원이 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하는 건 마찬가지이긴 하다. 내가 속한 APAC 마케팅에는 매니저급 직원만 30명 정도 있는데, 그중 임원급, 디렉터는 불과 3명이다. 임원이 되려면 대략 10:1의 경쟁을 뚫어야 하는 셈이다. 예전 직장들도 마찬가지였다. 임원급이 되려면 최소 같은 직급 10명 정도와는 경쟁을 해야 했다.


이렇게 외국계 회사에서 임원으로 승진한다고 연봉이 훌쩍 뛰는 것도 아니다. 직전 연봉의 20~30% 정도 더 받는 게 일반적이다. (물론 회사마다 다르며, 규모 있는 외국계 회사 지사장급은 연봉만 수억 원 받는 경우도 있다) 회사에 따라 차를 주기도 하고, 방을 내어주기도 하지만, 그것도 요즘은 일부 회사에서나 볼 수 있다. 반면에 책임은 국내 대기업 임원 못지않게 부쩍 늘고 업무량도 늘기 마련이다. 국내뿐 아니라 본사나 지역 헤드쿼터와 커뮤니케이션할 일이 늘면서 낮밤을 가리지 않고 콘퍼런스 콜을 하는 경우도 생긴다. 외국계 회사는 대부분 임원이 된다 해서 실무를 손에서 놓고 결정만 하지는 않는다. 주요 의사 결정을 하면서도 실무를 하는 경우가 많아 업무량이 많이 늘어 난다. 내 위 매니저만 보아도 그렇다. 나는 꽤 여유가 있는 스케줄인 반면에 상무급인 내 매니저는 거의 매일 콘퍼런스 콜로 일정이 빡빡하다. 빡빡한 스케줄 사이사이 실무 역시 같이 하기 때문에 그는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쉴 새 없이 바쁘다.


그럼에도 승진을 원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회사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임원 자리가 비었다고 가정하면, 회사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이미 그 자리를 해본 사람을 데려오거나 임원 바로 밑에 사람 중 하나를 승진시킬 수 있다. 전자가 후자보다 리스크가 적다. 하지만 그렇게만 운영해서는 사내 인재 육성이 불가능하니 후자도 종종 선택한다. 이때, 회사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리스크를 가능한 줄이는 일이다. 따라서 승진을 시켜 더 큰 일을 맡길 때, 가장 리스크가 적을만한 사람을 올리는 게 합리적이다. 따라서 개인의 입장에서는 임원이 되고 싶다면, 임원처럼 일하고 있으면 된다. 그런 직원이 있다면 회사는 리스크를 적게 안고 그 자리를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받는 것보다 더 일하는 게 손해일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승진한 자리에서 얻을 수 있는 경험을 더 가치 있게 여긴다면, 단기적으로는 손해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이익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지만, 이건 개인의 선택이 되어야 한다. 회사 급여로는 90세, 운이 나쁘면(?) 100세까지 이어질 내 노후를 감당할 수 없다. 회사일에 매달리기보다 알뜰하게 재테크하고, 개인적인 생활을 누리면서 은퇴 이후 준비를 철저히 하는 게 더 좋은 선택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무조건 받는 것보다 더 일하라는 뜻은 아니다. 임원 승진을 원한다면, 내가 받는 것보다는 더 일하는 게 임원 승진 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뜻에 불과하다. 그리고 임원이 된다고 해서 대단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직장을 떠나서는 임원도 그냥 일반 직원도 그냥 모두 남자 사람 혹은 여자 사람이다. 모두가 될 수도, 될 필요도 없는 임원 자리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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