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든 이직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면 자기개발을 한 게 아니다’라는 요지의 영상을 친구가 내게 보냈다. 친구는 그 영상에서 하는 이야기가 맞는 거 같은데, 그렇다면 본인은 어떻게 무엇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냐고 내게 물었다. 참고로 이 친구는 이직을 해본 적이 없이 한 직장을 15년 넘게 다닌 친구다. 친구 이야기를 듣고 언제든 이직할 수 있는 상태가 되기 위해 난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이직을 결심한 상황을 생각해 봤다. 내 직장 생활을 돌이켜 보면 난 늘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려고 노력했다. 사업 개발을 해보고 싶어 이직을 했고, 또 B2B 세일즈 경험이 하고 싶어 이직을 했다. 내게는 이런 이직 경험이 내가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고, 싫어하고, 못하는지에 대해 답을 하는 과정이었다.
이런 노력 끝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까지는 알게 됐는데, 내가 왜 그런 사람이 되었는지, 그 모티베이션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최근에야 내 모티베이션에 대해 조금 더 확실히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경제적 여유’였다. 돈을 조금이라도 더 주는 회사로 옮겨 다녔다는 뜻은 아니다. 적어도 내가 하는 일과 급여 수준을 비교하고 적어도 시장 가격보다 높은 수준의 급여를 받으려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최근 투자에 대해 더 많은 신경을 쓰고 공부를 하는 것도 그 이유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지금의 생활수준을 유지하는 문제다. 때문에 생활수준의 하락을 용인하면서 내 꿈을 위해 뛰어들 모티베이션은 내게 없다. 내 자유분방한 성향 상 사업이 답이라고 생각한 지는 오래됐지만, 그걸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생활수준이 떨어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현 직장에 머물면서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만들고, 투자를 통해 은퇴 후 생활수준 하락을 최소화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경제적 여유가 내게 중요했던 건 부모님, 특히 어머니 영향이 크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꽤 여유가 있는 집에서 자랐다고 한다. 어머니가 어릴 적, 1950년대, 육회를 배불리 먹을 수 있었던 가정 형편이었다고 들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어머니 형제들은 고학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 이후 집안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넉넉하지는 못한 가정 형편에 어머니는 힘들어하셨고, 그런 걸 보고 자란 난, ‘우리 부모님보다는 더 여유롭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이미 어릴 적 각인이 된 게 아닌가 싶다. 이 때문에 난 독립을 하면서 특히 집에 대한 집착이 강해졌다. 빨리 집을 장만하고 싶었고 내가 살던 집보다는 넓은 집에 살고 싶었다.
물론 경제적 여유를 누리는 것만 내 모티베이션에 전부는 아니다. 누구나 가질 법한, 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일을 찾고 그 일을 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이런 일이 주로 잘하고 좋아하는 일이다. 하지만 난 지금 세일즈를 하는 게 맞는 사람인데 마케팅 리서치 일을 하고 있다.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한, 적어도 향후 1~2년 안에는 내 일이 바뀌기 어렵다. 이 지역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을 세일즈 자리를 내어 주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 회사엔 세일즈 자리가 싱가포르에는 없다. 물론, 다른 회사 세일즈 담당자로는 갈 수 있겠지만, 경력을 손해 보고, 특히 급여에 손해를 보고 갈 만큼 절실하지는 않다. 다행인 건 지금은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더라도, 얼마큼 내가 만족스럽지 않은지 안다는 점이다. 설사 계속 이 일을 하게 되더라도 내가 어떻게 해야 이 일을 나름 만족스럽게 하면서 ‘은퇴’를 할 수 있을지도 알고 있다.
그 친구 이야기로 돌아오면, 이직을 잘할 수 있어야 자기개발이 된 건지는 논란의 여지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만족스럽게 직장 생활, 혹은 경제적 활동을 하려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또 왜 내가 그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내게 딱 맞는 꿈의 직장 혹은 꿈의 직업이 아니더라도 지금 나처럼 어느 정도’ 만족을 하며 지낼 수 있다. 적어도 내가 일정 부분 대가를 치르고 내가 원하는 또 다른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이해 없이 직장과 직업을 고르고, 그 상태로 오랜 기간이 지나버리면 이도 저도 하지 못하는 너무 괴로운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너무 진부할지 모르겠으나, 내가 이직을 하던, 자기개발을 하던, 그 출발은 늘 ‘나를 아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