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생활 19년 차, 생각해보면 참 길게도 했다 싶다. 그러다 보니 회사에서 어떤 일, 주로 유쾌하지 않은 일이 생기면, 늘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는지 생각해보곤 한다. 그렇게 곰곰이 생각해보면 예전에 대략 겪었던 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번에 겪은 일도 예전에 한 번쯤 겪었던 일인데, 그런데도, 유쾌하지 않은 일이 생기면 에너지를 많이 쏟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유쾌하지 않은 일은 뭐 이런 것일 거다. 1) 내가 하던 프로젝트 혹은 일이 중간에 윗선의 뜻에 따라 좌초가 된다거나, 2) 내가 추진하려는 프로젝트에서 내가 제외된다거나, 3) 일을 잘 마무리했다고 생각했는데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 일 등등, 더 상세하게 이야기를 하려면 또 할 수도 있겠지만 대략 이 정도가 아닐까 싶다.
최근 몇 년간, 세일즈에서 일할 때는 이런 일이 생기는 일은 거의 없었다. 물론 내가 하던 일을 접고 회사를 떠났던 바가 있긴 하지만, 그 일을 맡아서 하는 동안은 100% 권한이 내게 주어졌다. 그렇게 주어진 100% 권한을 가지고 일했지만, 결과가 (윗선에서 보기에) 좋지 않아 비즈니스를 접었을 뿐이니 나 스스로 최선을 다했다 여겼기 때문에 아쉽지 않았다. 아마 이 경우가 위에 내가 언급한 유쾌하지 않은 일 1번과 3번에 해당하는 일일 것이다. 최근에 맡았던 일에서는 전혀 그런 일이 없었다. 독립성이 충분히 주어졌고, 실적도 좋았다.
하지만, 2번처럼 내가 추진하려는 프로젝트에서 내가 제외되는 일은 정말이지 최악의 경우가 아닌가 싶다. 내가 적임자라 자타가 공인하는 상황에서 이런 상황을 겪는다면 최악 오브 최악이라 봐야 할 것이다. 현재 그런 상황을 겪고 있는데, 다시금 회사는 회사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회사에서는 너무 당연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없다. 주로 시키는 일을 하는 경우가 태반, 그중에 어쩌다 내가 하고 싶은 일도 있는 거란 게 맞는 말일 거다.
현재 싱가포르 조직에는 세일즈 조직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택한 마케팅 잡이지만, 그래도 세일즈와 연관이 커 1년 반 동안은 할 만했다. 쉽게 내가 할 일을 찾았고, 그 누구도 하지 않았던 일이라 내가 주도해서 일을 끝낼 수 있었다. 해가 바뀌면서 내가 하는 일에 대한 관심도가 증가했고, 윗선에서 내려온 일이 마침내 생겼다. 그걸 내가 주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새로 바뀐 매니저가 내게 주도할 권한을 주겠다고 이야기해놓고도 본인이 리드하는 일이 생겼다.
내 자율성과 독립성을 침해하는 것일 뿐 아니라 내 능력에도 챌린지를 받는 것 같이 아주 불쾌하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내게 주어진 일을 하는 곳이 회사란 점을 상기해보면,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매니저가 다시 생각해보니 본인이 리드를 해야만 하겠다고 생각했다면 할 말은 없다. 물론 그런 결정을 미리 내게 이야기하지 못한 건 잘못한 일이라 그 부분은 매니저에게 이야기할 생각이다.
물론 내가 시키는 일만 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이라면, 내 일 하나를 떼 매니저에게 준 셈이니 어차피 똑같은 돈을 받는 월급쟁이 입장에서 아주 좋은 일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난 그런 타입은 아니다. 직장 생활과 개인 생활에 모두 스스로 90점은 줄 수 있는 상황이라 이 상태를 오래 유지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게 불과 얼마 전인데, 앞으로는 직장에서의 내 위치가 바뀌지 않는다면 이런 일이 더 많이 생길 거 같아 이대로만 있을 수 없겠다고 마음을 고쳐먹게 된다. 지금 일은 그냥 나보다 경험도 지식도 한참 부족한 매니저가 리드하는 걸 지켜나 봐야겠다 마음을 먹었다.
나는 내가 스스로 중요하다고 여기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거, 이번 기회를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됐다. 사실 이번 건도 이 일이 위에서 내려왔기 때문에 중요하다 여긴 게 아니라 내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기회라 여겨 그렇다. 내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그런 자리가 어디에 있을까. 회사 안팎에서 찾아보면서 또다시 고민을 시작해야겠다 마음먹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