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가족과 함께 5월 말 아이들 여름 방학에 맞춰 한국에 방문을 한다. 이 시기가 싱가포르 사는 사람으로서 한국 방문하기 굉장히 좋다. 이때 한국 날씨가 춥지 않아 봄/가을 옷을 챙길 필요가 없는 데다, 덥다고는 하지만 싱가포르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따듯한 정도의 날씨라 쾌적하다. 게다가 한국은 방학 전이라 어디에 가든 사람이 덜 붐비는 장점도 있다. 이번에는 시간을 내어 순천, 여수, 강진 그리고 담양을 여행을 했고, 그 외에는 본가와 처가를 오가며 시간을 보냈다. 이번 방문에서 느낀 점 몇 가지를 남겨본다.
1. 한국에서 아이들 식성이 좋아졌다. 여수에서 찾아간 백반집에서 일이다. 네이버 평점이 무척 좋은 집을 검색해 갔는데, 6시가 조금 지난 시각에 우리가 마지막 팀이었다. 이유는 밥이 다 떨어져서. 느낌이 좋았다. 차려진 밥상은 생선구이와 갈치조림 그리고 7~8가지 반찬이 깔렸다. 반찬 하나하나도 다 좋았지만, 가장 맛이 있었던 건 밥. 정말 오랜만에 밥맛이 좋은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괜히 평점이 높은 게 아니었다. 보통 우리 가족 4명이 식사를 하러 가면 밥 3 공기면 족하다. 와이프랑 서은이가 그리 많이 먹지 않기 때문인데, 이 날은 7 공기를 먹었다. 새연이가 2 공기 반이나 먹었고, 서은이도 1 공기를 다 비웠다. 서은이는 생선이 맛있었던지 우리가 주문한 생선을 싹싹 발라먹고도 옆팀에서 오늘 잡은 고기라며 건네준 것까지 싹싹 발라 먹었다. 이때뿐이 아니다. 본가를 가던 처가를 가던 아님 다른 식당을 가던 아이들이 싱가포르에서보단 더 잘 먹었다. 아무래도 싱가포르에 비해 선선한 날씨 때문에 아이들 입맛이 더 도는 게 아닌가 싶다.
2. 어디를 가나 여행하기 좋아졌다. 우리 부부가 국내 여행에도 진심이었던 신혼 초, 2000년대만 해도 한국에서 여행을 가면 숙소가 마땅치 않은 경우가 꽤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닌 듯하다. 여수에서 묶었던 오션 뷰 숙소, 강진에서 묶었던 한옥 펜션, 담양에서 묶었던 산속 펜션 모두 인테리어는 고급스러웠고 묶기 편했다. 볼거리도 많아졌다. 어딜 가던 맛있는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이쁜 카페와 맛집이 있었고, 예전부터 유명했던 관광명소들은 예전에 비해 조금씩이라도 업그레이드되어 돌아보기가 좋았다. 예전보다 모든 게 가격이 오른 건 덤. 주말이면 숙박비는 4인 가족 기준 40만 원은 기본이 되었고, 강진에서 들른, 테이블 몇 개 되지 않는 노포의 국밥도 이제는 1만 원 가까이 되었다.
3. 차는 여전히 많이 밀리고 사람이 많다. 그럼에도 예전과는 다른 게 느껴진다. 예전에는 저녁 늦게 까지 차가 미어터지던 도산대로는 저녁 8시만 되어도 한산하다. 예전 같으면 시끌 법석했을 금요일 밤 종로 골목은 저녁 9시가 지나니 조용하다.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호주처럼 저녁 6시만 되면 백화점과 쇼핑몰이 문 닫을 날이 올 것만 같다. 물론 예외는 있었다. 명동은 다시 몰려온 관광객 때문에 저녁 늦게까지 사람이 많았다. 게다가 유명하다는 명동 맛집은 각국에서 몰려온 관광객으로 가득 차 내게는 무척 생경한 모습을 안겨주었다. 거기에 영어는 기본, 중국어, 태국어, 거기에 베트남어까지 다양한 외국어가 들렸다.
4. 오랜만에 친구끼리 라운드를 했다. 내 모습에서는 낯선 ‘관록’을 친구들 모습에서 봤다. 이제 곧 50세가 될 꽉 찬 40대가 머리에 흰머리가 없는 것도 이상한 일. 이 흰머리뿐 아니라 친구들의 표정과 태도에서 여유를 봤고, 이를 통해 나 자신의 나이 역시 실감했다. 다들 어딘가에서 소위 ‘한 자리씩’ 하고 있는 친구들과 처음 만났던 그날이 훌쩍 30년이 넘었다고 생각하니 그제야 긴 세월과 친구들의 흰머리가 연결이 되었다. 이제 10년만 더 지나면 많은 친구들이 은퇴를 할게 될 거라 생각하니 세월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5. 내게 주어진 세월도 이렇게 지났는데, 부모님이 노인이 되신 건 당연한 일. 싱가포르로 떠날 무렵만 해도 두 분 70대 중반으로, 연세에 비해서 젊어 보이셔서 부모님이라 생각했지 노인이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일단 이제는 거동이 불편해지셨다. 댁을 벗어나 어디 가시는 걸 부담스러워하신다. 80 되신 아버지는 운전이 매우 서툴러 사고가 걱정되고, 어머니는 무릎이 좋지 않으셔서 그 기운 좋던 어머니 모습 대신 앉았다 일어날 때마다 아이고를 입에 달고 사신다. 이번 여행 마지막으로 뵙고 엘리베이터에서 인사를 하는데 흰머리가 성성한 부모님 모습을 보니 눈물이 터져 나왔다. 부모님의 늙음 때문만은 아닐 거다. 같이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이 아닌가 싶다.
2021년부터 벌써 4번째 한국으로 긴 여행을 떠났다. 매번 좋았지만, 이번에는 조금 색달랐던 것 같다. 가족, 친구, 그리고 환경 등 내 안팎으로 많은 변화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한국 여행도 기대가 된다. 내년에는 아마 한국에서 겨울 한 달을 살 지 않을까 싶다. 그때 만날 변화와 좋은 인연을 기대하며 글을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