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공정함 세상의 공정함

북 트레일러/우리들이 랜선 독서수업/서해문집

by 김병섭


교사와 학생이 오프라인에서, 학교에서 만나야 하는 아주 강력한 이유, 그것은 '평가'였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공정함' 때문이었다. 학생들의 역량을 평가할 때 공정함을 확보하기 위해서 우리는 학생들을 학교에 불러와야 했다. 2020년 1학기에 있었던 혼돈을 거쳐 2학기에 정확하게 내려온 공문이기도 했다. 국, 영, 수, 과, 사 교과에서 과제형 수행평가는 금지되었다. 학생들이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해 낸 것인지 교사의 직접 확인이 불가능한 평가는 금지되었다. 교사가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요원으로서, 공정한 기준에 의해 자신이 직접 관찰하고 경험한 것만을 평가에 기록할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외부 도움의 가능성을 일체 배제하고 온전히 학생 개인만이 참여하는 환경 안에서 교사가 직접 관찰할 수 있는 평가 장소가 필요했다.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학교였다.


안타깝고 아까웠다. 화가 나기도 했다. 학생들이 개인 시간을 동원하여 기꺼이 자신의 잠을 줄여가며 열정을 다해 만들어온 작품들은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 그렇게 개인의 시간을 동원한 학생들의 작품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그런 작품을 만나는 일은 내게 교사로 누릴 수 있는 지극한 즐거움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제 그것을 할 수 없었다. 공정함 때문이었다. 지금도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달랠 수가 없다. 하지만 받아들여야 했다. 결국은 나 역시 동의되었기 때문이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의 공정함은 학교를 존재하게 하는 근원 중 하나였다.


2020년 전염병의 시대, 비대면의 시대, 언택트의 시대에도, 최소한의 안전만 확보된다면 다른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당장 진행해야 할 학교의 가장 큰 역할은 평가였다. 올 해를 겪으며, 그것도 학년부장으로 학교의 행정에 깊이 관여하며 깨달은 것은 학생을 학교에 부르는 가장 강력한 힘은 '공정함'이라는 것이다. 학교의 공정함을 유지하기 위해 아주 많은 사람들이 아주 많은 규정과 아주 많은 의사결정과 아주 많은 시스템을 갖추어 애쓰고 있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학교의 공정함이 바라는 목표는 더 원대했다. 학교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공정함을 체험하게 하고, 이를 통해 학생과 학부모 그러니까 시민들에게, 공정함에 대한 열망과 감수성을 더 북돋우려 하고 있었다. 내가 짐작한 것보다도 훨씬 더 크게, 학교의 공정함은 세상의 공정함에 크게 기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이렇게 생생하게 알고 있는 것도 아니었던 학교의 역할들. 그래, 그랬구나. 그래, 그렇지. 그래, 그렇다면, 그렇다치고... 나는 어찌할까? 온라인 수업이 오프라인의 평가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동료선생님들과 다시 모여 의논했다. 이런저런 논의가 오갔다. 각자의 경험을 다 꺼내어 이리저리 맞추어 보았다. 당장 기록해야 할 평가가 쌓여 있었다. 대체 어떻게 해야 온라인의 배움이 오프라인의 평가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을까? 학생의 배움이 공정한 평가에 이어지면서도 학생의 즐거움을 훼손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것도 모둠수업은 할 수 없고, 한줄로 앉아서 마스크를 쓰고, 서로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홀로 활동해야 하는, 이 삭막한 방역지침을 지키면서도 즐거울 수 있는 수행평가가 정말 가능할까?


다시, 질문을 만들고 답을 쓰게 하자. 동료선생님들과 결론을 내렸다. 학생들에게 8개의 질문-대답 만들기 수행평가를 진행하기로 했다. OX 2개, 단답형 2개, 선택형 2개, 서술형 2개로 학생들은 A4 1장짜리 학습지에 총 8개의 문법 질문을 만든다. 음운의 변동 단원의 문법수업에서 배운 것 중에 자신이 좋아하고 재밌었던 것을 바탕으로 만든다. 8개의 질문에는 8개의 해답과 8개의 해설도 있어야 한다. 교과서의 어느 페이지 몇 번째 줄에 자신이 만든 문제의 출처가 있는 지 A4 2페지의 학습지에 직접 손으로 써야 한다. 최대한 어려운 문제를 내 달라고 했다. 시험에 나오면 본인도 못맞출 만큼 최대한 어려운 문제. 최대한 꼼꼼하고 정확하게 치밀하게 문제를 내 달라고 했다. 학생들이 만든 문제 중에 정말 어려운 문제, 내가 풀기에도 정말 어려운 문제를 시험에 내겠다고 했다. 당연히 문제를 만드는 동안에는 모든 도움을 다 받을 수 있다. 교과서와 학습지를 볼 수 있고 교사에게 질문도 가능하다. 방역기준이 없던 때라면 모둠별로 열정적인 토론도 허용했겠지만 그럴 수 없어 안타까웠다. 생존은 배움에 우선한다. 당연하다. 나 역시 동의한다. 방역지침을 지키는 한계 안에서 최대한 배움과 공정함이 공존하는 평가를 진행하고 싶었다. 그런데 아직 아쉬웠다. 학생들이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여지가 너무 없었다. 고민 끝에 여기에 한 가지 수행평가를 더 추가했다.


대중가요 음운 변동 분석하기. 학생들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대중가요를 추천 받았다. 그렇게 받은 대중가요의 가사를 검색했다. 동료선생님들과 함께 음운의 변동이 최소 12개 이상이 드러나는 가사를 찾았다.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꽤 많은 곡들의 가사에는 음운의 변동이 나타나는 낱말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때에야 짐작했다. 아... 작사가들이 가수의 발성을 위해 정확하게 발음하기가 쉽지 않은 음운변동의 낱말들은 잘 쓰지 않는구나. 그런 중에도 5곡이 선정되었다. 그 중 대표곡은 하현우의 돌덩이. 당시 가장 인기 있던 드라마 이태원 클라스의 메인 테마곡이었다. 돌덩이라는 제목부터 된소리현상의 낱말이었고, 거침없고 격한 발음을 선호하는 롹음악이었던만큼 음운 변동이 나타나는 낱말들이 많았다. 교사가 평가 시작 전에 임의로 5곡의 가사들을 1번에서 5번에 배치한 후 학생들에게 1번부터 5번까지 번호를 선택하게 하고, 번호에 따라 가사가 적힌 학습지를 나눠 줄 예정이었다. 우리가 먼저 재밌었다. 이것도 우리에게는 중요했다. 학생들에게도 즐거워야 하지만, 교사인 우리들에게도 먼저 즐거운 것이었으면 했다. 이 수행평가는 우리에게 정말 그랬다. 다행이었다. 그래서 더 기대되었다. 그러나 그 전에 할 일이 있었다.


8개 질문-대답 만들기 수행평가를 시작하기 전에 학생들에게 예고했다. 다음 시간에는 대중가요 음운변동 분석하기 수행평가를 진행할 것이다. 유의할 것은 다음시간에 진행될 수행평가는 교과서도 볼 수 없고, 참고서도 볼 수 없고, 친구에게 물어보는 것은 당연히 안되며, 교사에게 질문할 수도 없다. 오로지 개인이 개인의 힘만으로 개인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다만, 오늘 진행할 8개 질문-대답 만들기 수행평가를 할 때는 교과서도, 참고서도, 질문도 모두 가능하다. 그러하니 부디, 오늘 음운의 변동에 관한 8개 질문-대답 만들기 수행평가에 참여하면서 깊이 공부할 것. 최대한 자주 읽고 최대한 많이 묻고 최대한 어려움에 도전할 것. 그것이 내일의 수행평가에도, 그리고 곧 있을 지필평가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말하며, 부디 정말 그렇게 되기를 기원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3322935&start=slayer

http://www.yes24.com/Product/Goods/102165869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021 물꼬방여름연수 <교사가 지치지 않는 독서교육>